[유지수의 경세제민]민생·안보 앞에 여야 없다

신하영 2022. 11. 10.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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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수 국민대 전 총장·명예교수] 현재 대한민국은 두 가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경제문제이다. 미국의 중간선거 여론 조사를 보면 경제문제는 아무래도 보수인 공화당이 잘 해결할 것으로 믿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적 경제문제는 외적인 문제가 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발생한 에너지 파동이 문제의 근원인 탓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8월까지의 무역수지적자 중 78%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발생했다.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미국도 마찬가지 형국이다. 보수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 한다고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플레이션은 공포의 시한폭탄이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미국 정부가 금리를 올리니 우리도 원화 약세를 저지하기 위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금리가 오르니 경기에 찬바람이 불고 소위 ‘영끌’ 젊은이들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경기심리가 위축되면서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은행도 경제위축을 걱정하여 대출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기업은 금리가 올라 회사채 발행에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다. 특히 설비 확장이나 공장 신·증설을 하려는 기업은 돈줄이 막히면서 위기를 겪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의 전기차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투자를 시작하고 부품기업도 동반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른바 ‘돈맥경화’가 발생하면서 난감한 상황을 맞고 있다.

또 다른 암초 하나는 북한의 예측 불허한 행동이다. 미국 정부에 따르면 중국의 대만 침공 징후는 아직 감지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다른 국제기구들도 중국이 2~3년 안에 대만을 무력 침공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모두 다행스러운 전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상황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최근 김정은의 행보에선 ‘핵무기 보유 국가’란 점에서 비롯된 과신과 자만을 읽을 수 있다. 아마도 우크라이나에서 보인 미국의 대응을 보며 이전보다 과감해진 것 같다. 미국이 러시아와 같은 핵 보유 국가와는 직접적인 전쟁을 회피하는 것을 보고 북한과도 전쟁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과감성일 것이다.

김정은의 이러한 행보는 우리나라로 보면 매우 위험한 일이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우크라이나 사태에 더해 대만 침공, 북한의 도발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고 가정하면 천조 규모의 국방예산을 가진 미국이라고 해도 대응에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중국이 이런 시나리오를 백 년에 한 번 있을 기회로 여기고 대만 침공을 감행할 수 있어서다.

우리가 이러한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려면 정치권이 상생을 위한 협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에게는 본질적으로 협치를 기대하기 힘들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위기 상황을 잘 그린 ‘다키스트 아워(darkesthour)’라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세계대전이 본격적으로 확전하던 1940년 5월 영국 총리에 오른 윈스턴 처칠은 그의 정적이었던 핼리팩스 백작을 외무장관으로 영입했다. 핼리팩스의 본명은 에드워드 우드(Edward F. L. Wood)다. 영국의 귀족 가문 출신이자 보수당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그는 나치 독일에 대한 온건한 입장에서 히틀러와의 협상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는 말이 협상이지 사실상 프랑스처럼 항복하자는 의미와 같았다. 이미 전세는 기울었고 무고한 젊은이들을 더 이상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그의 주장에는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영국이 당시 그의 의견을 들었다면 나치 정권의 식민지가 되었을 것이다.

위계질서가 약하고 리더의 결정권이 존중되지 않는 조직에서 일해 본 사람이라면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어떤 일을 도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 것이다. 아마도 대학·병원·공기업, 국회의 각종 위원회 등이 이런 조직에 속할 것이다. 많은 시간을 토론과 협상에 투자해야 하며 한 걸음을 진척시키기도 어려울 때가 많다.

혹자는 그래도 서로 토론하고 의견을 절충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위기 상황을 해결하려면 시의성이 관건이다. 때로는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치게 된다. 더욱이 정치인들의 목적은 권력을 잡는 일이라 진정한 의미에서의 협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는 결승전에 출전한 축구팀에게 상대 팀을 이기려 하지 말고 사이좋게 경기하라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협치는 어렵더라도 국익을 위한 협력은 필요하다. 경제·민생·안보·생명보호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현재의 경제위기 요소 중 기업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자금경색이다. 기업에게 자금경색은 사람의 동맥경화처럼 무서운 질병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문제 만큼은 여야 할 것 없이 협조해야 한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마저 정쟁만 일삼는다면 여야 모두 경제를 망친 장본인들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국가 안보 역시 정치권의 상생과 협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한반도에서의 전쟁 위험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발발 전에는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특히 북한처럼 일인 독재국가를 우리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와 달리 권력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라 합리적인 집단지성을 기대할 수 없다.

국가 안보에서는 여야가 하나로 단합해야 전쟁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가 분열할수록 북한의 김정은이 이를 기회로 잘못 여길 수 있다. 오직 국가의 단합과 강력한 국방력만이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2차 대전 당시 영국은 핼리팩스의 잘못된 판단으로 자칫 패전국이 될 뻔했다. 당시 영국은 윈스턴 처칠이라는 희대의 웅변가가 총리를 맡고 있어 의회를 설득해 위기를 기회로 역전시킬 수 있었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에는 윈스턴 처칠과 같은 정치 지도자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가 정쟁·갈등만 일삼는다면 국가안보·민생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야당도 민생·안보문제 만큼은 여당에 협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치권이 민생과 안보를 외면하면 국민에게 주어지는 것은 비극과 고통뿐이다.

신하영 (shy11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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