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서 구조 도운 부부 "그날의 기억…너무 아파 병원도 못가"
"사고 경위 등 명백히 밝혀졌으면…안전한 대한민국 되길 간절히 바라"
(서울=연합뉴스) 김윤철 기자 = "금쪽같은 누군가의 소중한 딸과 아들이 이렇게 허망하게 떠났다는 게 너무도 마음 아프고, 그저 죄송스럽습니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피해자 구조에 뛰어들었던 직장인 심모(50) 씨는 그로부터 열흘 뒤인 8일 연합뉴스 기자와 통화하며 응어리진 속내를 털어놨다.
심씨는 부인 최모(39) 씨와 함께 사고 당시 쓰러져 있는 이들의 팔다리를 주무르는 등 2시간 가까이 소방대의 구조 활동을 도왔다. 그러다 자정이 지난 시각 기진맥진한 채 길가에 주저앉아 있다가 현장에서 취재 중인 기자를 만나 자신들이 목격한 상황을 다급하게 전했었다.
부부는 '핼러윈 주말 밤'의 분위기를 한껏 즐기려 이태원에 있는 호텔 숙박을 몇 달 전 예약해 놨다. 계획대로 당일인 29일 오후 이태원에 와 호텔 체크인을 하고 태국음식점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이들이 식당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일대는 축제 분위기였다.
하지만 오후 9시 30분께 해밀톤호텔 뒤편의 세계음식문화거리와 사고가 난 골목이 만나는 구간에서 인파에 갇히는 순간을 겪게 되면서 불안감을 느꼈다. 심씨는 "앞으로 가려는 인파와 뒤로 가려는 인파, 클럽 대기 줄 등이 뒤엉켜 5분 동안 옴짝달싹도 못 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부부는 이 골목을 힘겹게 빠져나와 길을 건넌 뒤 상대적으로 인파가 적었던 이태원119안전센터 뒤편 골목을 걸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후 11시께 숙소로 돌아가기 전 중심가를 마지막으로 구경하러 다시 해밀톤호텔 쪽을 찾았다가 믿을 수 없이 처참한 광경을 맞닥뜨리게 됐다.
심씨는 "수십 명이 여기저기 힘없이 누워있고, 한 사람당 시민 6∼8명이 붙어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팔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구급차들이 사이렌 소리를 내며 현장에 진입하려 했는데 불법주차 차량 등으로 길이 온통 막혀 한동안 구급차 진입조차 안 됐다"며 안타까웠던 순간을 돌아봤다.
두 사람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소방대원과 간호사 등이 CPR을 하는 동안 다른 시민들과 함께 사력을 다해 쓰러져 있는 이들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호흡을 도우려면 꽉 끼는 코스튬을 잘라줘야 한다는 말을 듣고 주변에서 가위를 구해와 옷을 자르고 다녔다.
심씨는 "처음에는 다들 온기가 있으셨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온기가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고 했다.
소방대원이 더는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희생자들이 나왔지만, 부부를 비롯한 현장의 시민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놓을 수 없어 구조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다 구급차가 사망자 이송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벗겨진 고인의 구두 한 켤레를 소방대원에게 건넸다. 자정이 다 돼 쌀쌀했는데도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있었다.
부부는 이후 열흘간 충격, 죄책감, 절망이 뒤섞인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심씨는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하다 손을 다쳐 나흘 동안 젓가락질도 하지 못했다. 최씨는 치과 진료가 예약돼 있었지만, 세 번이나 발길을 돌려야 했다. 치과 진료대에 누워 얼굴에 초록색 천을 덮으면 극심한 공포와 함께 그날의 기억이 밀려와 구토 증세가 나타났다.
아픈 마음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심씨는 "희생자와 유가족분들 생각에 밤에 잠이 잘 오지 않는다"며 "심리치료도 생각해봤는데, 오히려 깊은 기억을 꺼내는 게 두려워 병원도 못 찾고 있다"고 토로했다.
심씨는 교통 통제 등 참사 당일의 모든 조건들이 조금씩만 달랐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책임 소재 등의 경위가 명백히 밝혀지길 기다리고 있다"며 "처벌과 대책 마련 등 응분의 조치가 내려져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여러 번 힘줘 말했다.
newsje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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