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용산구청장, 형사처벌 단정 못해. 구체적 임무 위반 입증돼야”
모두 156명의 사망자와 197명의 부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 관련, 경찰·소방 관계자와 함께 박희영 서울 용산구청장도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박 구청장은 국회에 출석해 언급한 것처럼, 법적 책임이 아닌 '마음의 책임'만 지면 될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치·도의적 책임과는 별개로 박 구청장에게 법적 책임을 지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과 서울시와 용산구 등을 상대로 국가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해석 등이 공존하고 있다.
9일 뉴스1과 경찰과 용산구 등에 따르면 박 구청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경찰에 입건됐다. 박 구청장의 업무상 중대한 과실로 사상자 총 353명(사망 156명, 부상 197명)이 발생했다고 본 것이다.
경찰은 용산구청이 이태원 일대 인파 밀집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 재난 책임 관리기관으로 유관기관에 협조 요청을 했는지, 인파 밀집에 따른 사고 예방 대책을 수립했는지, 사고 발생 전후 각 부서별 공무원이 제대로 된 업무를 수행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현 시점에서는 박 구청장에 대한 형사처벌 가능성을 단정할 수는 없다는게 중론이다. 국가와 지자체에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책임이 있는 것은 맞지만 매뉴얼과 법령 등에 근거한 구체적 임무 위반이 입증돼야 법률적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법적 책임을 물으려면 구체적으로 해야 할 법규상 의무를 위반한 게 수사상으로 드러나야 한다"며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입증하기 상당히 모호하다. 구체적인 자료를 보고 판단하는 것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명쾌하진 않을 것이다. 만일 기소된다고 하더라도 판사에 따라 해석 견해가 달라질 여지도 커 보인다"고 봤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박 구청장이) 공직자로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실제로 현행 법령상 과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김태윤 교수는 "이태원에 사람이 모이는 것을 모니터링하고 사고의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은 구청장의 일이 아니라 경찰서장의 일"이라며 "사고 후 구청 직원들을 내보내 현장에서 대응하는 것도 의료진과 전문적인 구조·구급 요원, 즉 소방서에서 할 일"이라고 정리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자치단체장은 행정적인 조치를 통해 안전 확보를 할 책임은 있겠지만 그것을 안 했다고 곧바로 형사처벌로 연결될 것 같지는 않다"며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위험을 제거하고 생명, 신체상 안전을 직접 제거해야 할 임무는 경찰관에게 부여됐다"고 짚었다.
또 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도 "안전 관리와 관련된 추상적인 책임은 있지만 '어떠한 의무가 있었고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안 했다'는 게 나와야 한다"며 "의무 위반 행위와 사고의 인과관계가 순차적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법조계와 야당을 중심으로 박 구청장에게 직무유기죄 적용은 가능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직무유기 법정형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 이하 자격정지로, 업무상 과실치사상(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보다 형량이 낮다.
재난안전법 제20조 제1항 등에 따르면 용산구청장은 재난상황을 행안부 장관에 보고 의무가 있다. 또 용산구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 조례 제43조에 따르면 구청장은 재난상황을 관계기관 등에 신속하게 전파하고 사전에 구축된 관계기관 등과 협력하게 돼 있는데 이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한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참사 직후 구청장이 마땅히 해야 할 책무를 하지 않고, 아무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죄가 적용될 여지가 있어보인다"고 말했다.
법적 처벌 여부와는 별개로, 선출직 공직자인 박 구청장이 사퇴 결단 등을 통해 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충분히 져야만 한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김태윤 교수는 "지자체장 선거를 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주민소환도 할 수 없지만 이 정도 되면 다른 여러 경로로 정치적 책임을 차곡차곡 물어야 한다"며 "국민 입장에서 가장 납득이 되는 것은 본인이 사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또한 "(박 구청장이) 선출직인 만큼 사법·행정적 책임보다 더 큰 문제는 정치·도의적 책임"이라며 "장관만 보더라도 여태 행정 책임을 못 져서 물러난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정치·도의적 책임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용산구를 상대로 국가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우면산 산사태' 등 사회적 재난 사건을 다뤄 온 김영희 변호사는 "재난안전법에 의해 서울시와 용산구를 공동 피고로 해서 정부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재난안전법 66조의 11이라는 조항은 주최자가 없더라도 (순간 최대 인원이) 1000명을 넘어서는 축제에 대해 위험하다고 보고 법이 안전관리 의무를 부과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재난안전법 4조도 지자체의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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