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경고 5번 꼴찌에서 수석까지, 시한부 어머니께 드린 마지막 선물

박유연 기자 입력 2022. 11. 10. 06:02 수정 2022. 11. 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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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취업 분투기] 방황 딛고 대학 다시 가서 공기업 연구원 입사
경제에 위기 신호가 오고 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힘든 고용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취업난을 극복하고 있는 청년들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를 연재합니다.

수차례의 학사경고 끝에 제적, 세상과 단절한 후 몰두한 게임 세계, 도피에 가까웠던 유학 생활. 김강현(29) 씨는 방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20대를 보냈다. 주변에서는 ‘한량’ 또는 ‘철없는 사장 아들’이라고 손가락질했다. 과학자, 사진작가라는 꿈은 닿을 수 없는 것이었다.

패색 짙은 인생을 끊어 내기로 결심한 순간에도 세상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새 출발을 결심한 시점에 사랑하는 어머니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래도 반전을 해냈다. 죽기 살기로 학업에 매진해 2년도 안 되는 시간만에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지능로보틱스연구센터 연구원으로 취업했다. 김강현 씨를 만나 인생 역전 스토리를 들었다.

방황 끝에 진로를 찾는 데 성공한 한국전자기술연구원 지능로보틱스연구센터 연구원 김강현 씨. /더비비드

◇선배들이 몰래 해병대 지원한 이유

대학 입시부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과학자가 꿈이었어요. 생물학이나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싶었죠. 한국해양대 IT공학부와 단국대 신소재공학과, 울산대 첨단소재공학부에 지원했어요. 단국대는 멀다는 이유로 최종 선택지에서 제외하고 나머지 두 곳 중 저울질했는데요. 철강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뜻으로 울산대에 진학했어요. 그게 방황의 시작이 될 줄 꿈에도 몰랐어요.”

그의 표현에 따르면 ‘첫 단추부터 잘못 꿴’ 대학 생활이 시작됐다. “선배들의 권유로 학생회에 들어갔어요. 그 생활이 재미있어서 실험을 빠지고 술을 마시러 간 적이 많아요. 그렇게 수업에 몇 번 빠지고 나니 공부에 흥미를 잃고 말았어요. 1학년 1학기를 학사경고로 마무리했죠. 그 와중에 아버지께서 본가에 자주 안 온다며 기숙사비 지원을 끊어 버리셨어요. 고향인 양산에서 울산으로 통학하게 됐는데, 학교에 더 안 가게 되더군요. 이런 제가 답답했는지 학교 선배들이 저 몰래 해병대에 지원시켜 버렸어요. 가서 정신 좀 차리고 오라면서요.”

(왼쪽부터) 해병대 시절 아버지와 찍은 사진, 군대 선후임들과 함께 찍은 사진. /김강현 씨 제공

전역 후 2016년 복학했다. 이제부터는 진짜 마음을 잡고 공부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한번 놓은 공부를 다시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금속 재료, 재료 공학 같은 전공 책이 너무 재미없었어요. 단 3분의 1 페이지도 못 보겠더라고요. 스스로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공부가 손에 안 잡히니 없던 난독증이 생겼나 생각까지 들더군요. 붕 뜬 마음을 잡아준 건 게임이었어요. 게임에 푹 빠져, 거의 프로게이머 수준까지 게임을 했습니다.”

방황을 참지 못한 아버지가 그를 뉴질랜드로 유학 보냈다. “어학원에 다니면서 일도 할 계획이었는데요. 저를 채용하기로 한 어학원에서 감감무소식인 거예요. 알고 보니 원장이 감옥에 갔대요. 어이가 없었죠. 그래도 비자발급과 당장의 생존을 위해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어학원이나 주변 사람의 컴퓨터나 전자기기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제가 해결해주곤 했습니다. 원어민 강사가 컴퓨터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칭찬했지만, 그땐 예사로 들었어요. 그 시절, 아름다운 뉴질랜드의 풍광에 반해 여행을 다니며 사진과 영상 촬영에 몰두했습니다.”

◇처참한 실패와 제적, 남은 게 하나도 없었다

김 씨가 여행 가서 직접 찍은 사진이다. (왼쪽부터) 뉴질랜드 남섬 아카로아, 뉴질랜드 테카포 호수에서 마치 쏟아지는 듯한 별들. /김강현 씨 제공

하고 싶은 일에 깊게 몰두하는 성향 덕에 사진 촬영과 영상 편집을 꽤 잘했다. “귀국 후 학교를 자퇴하고 예술대학교 사진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의사를 가족에게 밝혔어요. 강력한 반대의 말만 돌아왔죠. ‘갈 생각이면 호적파고 나가라’는 말에 잠깐이나마 진짜 나갈까 생각을 했어요. 그만큼 답답했던 거죠. 독립할 방까지 알아보던 중, 어머니의 반대로 아버지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학교에도 복학했고요. 그때부터 대인기피증이 올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잘 하는 게 게임밖에 없다는 생각에 부끄러웠고, 돌고 돌아온 곳이 아빠 공장이란 사실에 자괴감이 몰려왔거든요.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사장 아들’이라는 꼬리표에 자신감이 죽었죠.”

설상가상 가진 걸 송두리째 잃어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스마트 공장 자동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공급사에서 제공하는 툴이 우리 공장에 맞지 않아 시작부터 난항이었죠. 간단한 작업도 며칠씩 걸리는 공급사를 보며 답답함을 느꼈어요. 관련 사업 발표를 능숙하게 하는 것을 본 중간 점검자 분이 저더러 공급사 직원인 줄 알았다고, 이쪽에 재능이 있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기분이 좋았죠. 그런데 기쁨은 잠깐이었어요. 학교에 중요한 일정이 있는 날은 회의를 잡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아침 시작한 회의가 저녁 6시에 끝난 적이 있어요. 그날은 시험이 3개 있는 날이었죠. 결국 F학점 3개로 마지막 학사경고를 받고 제적당했습니다. 그리고 1년간 저를 갈아 넣었던 프로젝트는 좌초되고 말았죠. 학교도, 프로젝트도 제게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참담했어요.”

대학교에서 로봇IT과를 전공하던 시절 협동로봇을 만지고 있는 김강현 씨. /김강현 씨 제공

실패에 대한 회의감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능력 개발의 필요성을 통감했다. “경쟁력을 기를 방법을 찾던 중 한 친구의 이야기를 접했어요. 한국폴리텍대학 졸업 후 포스코에 입사했다가 SK로 이직했다는 소식이었죠. 그러던 중 또 다른 친구가 삼성 SDI에 개발자로 입사했다는 근황을 들었어요. 너무 부러웠습니다. 개발자에 관해 알아보니 학력 대신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세계더군요. 지원해야겠다는 마음에 주위에 얘기를 해보았지만 반응이 싸늘했습니다. ‘사장 아들이 뭘 해봤자 사장 아들이지’, ‘그냥 물려받아서 하던 거나 해라’. 자존심이 너무 상했습니다. 오기가 생겨 만류를 뿌리치고 한국폴리텍대학 입학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세 번의 가족상, 공부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던 시절

2021년 한국폴리텍대학 로봇캠퍼스의 로봇IT과에 합격했다. 시작도 전에 고비가 찾아왔다. “입학 전 겨울, 어머니께서 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진학에 대한 주위의 반대가 더 거세졌어요. 그래도 입학을 강행했더니, 입학식 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안 들더라고요.”

취업 후 로봇관제센터에서 로봇을 조작중인 김강현 씨. /김강현 씨 제공

다행히 새 전공은 적성에 맞았다. “책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저는 난독증이 아니었어요. 너무 많은 내용을 썼다고 핀잔을 들을 만큼 중간고사 답안지를 꽉꽉 채웠어요. 전공 서적 내용이 통째로 외워졌거든요. 중간고사를 치른 후 만점을 예상하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그 전화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어요. 사랑하는 한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요.”

가족상을 치르는 와중에도 공부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제출해야 할 리포트가 있었다. “상황을 모르던 조원이 조별 리포트를 작성해야 한다고 연락해왔어요. 그 때부터 홀린 듯 머릿속으로 로봇이 동작하는 게 그려졌어요. 몰입해서 다 쓰고 나니 향이 꺼져 있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나는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구나. 이걸 하지 않으면 미칠지도 모른다. 가장 슬픈 순간에 1분 1초가 너무 소중한 시간임을 깨달았습니다. 평생을 후회하지 않을 선택으로 채워야겠다 결심했어요.”

김강현 씨가 로봇 공부를 위해 노력한 흔적들. 노트북에 정리해둔 문서들이다. /김강현 씨 제공

밥 먹고 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공부만 했다.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수준으로 열심히 했다. 학과 수석으로 부모님의 평생 소원이었던 성적 장학금도 받았다. “1학년에만 다섯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모두 성공으로 끝난 건 아니었지만 저마다 의미가 있었죠. 그 중에서도 세번째 프로젝트였던 이동형 로봇 바리스타 프로젝트에 애착이 컸어요. 훗날 사업화도 하고 싶었죠. 이 아이디어로 폴리텍에서 주최·주관하는 벤처창업아이템 경진대회 참가를 준비중이었어요. 발표자는 저였죠.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발표날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결국 저 없이 발표를 진행했고, 입선했어요. 피땀 흘린 노력을 인정받는 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떠나보내야 했어요.”

◇모든 순간을 저울질하며 산 결과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노력의 끈을 놓지 않는 그를 알아본 이가 있었다. 한국폴리텍대학 로봇캠퍼스의 로봇IT과의 박주열 교수와 로봇자동화과의 김현돈 교수였다. “두 분은 제게 어머니, 아버지 같은 존재입니다. 박 교수님은 대학 생활 내내 정신적인 지주가 돼 주셨어요. 김 교수님의 경우 지적장애인 보조 로봇 ‘프로보노’ 프로젝트를 할 때 조언을 구하러 갔다가 연을 맺었는데요. 공부 모임 꾸리는 걸 제안하시더라고요. 세번쯤 스터디를 진행하고 나니 다섯 명이었던 인원 중 저만 남아 있었습니다. 방학 전후로 머신러닝, 딥러닝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는데요. 그만큼 혹독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에서 로봇 통합 관제 시스템을 개발 중인 김강현 씨. /김강현 씨 제공

기회는 불시에 찾아왔다. “한국전자기술연구원에서 연구원을 채용 중이라는 교수님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릴 적 꿈이 과학자라서 그런 걸까요. ‘연구원’이라는 세 글자에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교수님께서 정식 지원 전에 어떤 곳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며, 저를 소개할 자료를 하나 만들어 오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그동안 공부했던 모든 것을 담아 영상으로 제작했습니다.”

영상을 한국전자기술연구원 관계자에게 보여줬다. 결과는 입사 제의였다. “제 프로젝트 중에서도 교내 유튜브 영상 경진대회에서 1등을 수상했던 ‘드로잉 로봇’에 큰 관심을 보였어요. 로봇도 섬세한 예술작업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진행한 프로젝트였죠. 관계자 분은 여러 대의 협동 로봇을 파이썬만으로 동작하도록 프로그래밍한 점과 다양한 툴을 사용할 줄 안다는 점을 높게 사셨어요. 로봇 업계에선 프로그래밍 툴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능력을 중요시하거든요. 이후 정식 면접을 거쳐 지난 8월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취업했습니다.”

현재 지능로보틱스연구센터에서 RM(로봇 마스터·Robot Master)으로 근무 중이다. “현재 로봇 통합 관제 시스템을 개발 중입니다. 인공지능에 로봇을 접목해 로봇이 보다 많은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죠. 일하면서 로봇캠퍼스에서 배운 것들이 얼마나 실무형이었는지 몸소 느끼고 있습니다. 학교 과제로 했던 것 중에 의미 없는 게 없었어요. 처음 프로그래밍을 배운 제가 2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이곳에서 일하고 일하고 있다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실제로 전문대생으로서 공기업 연구원으로 취업한 것은 이례적이라 들었습니다.”

전문대생으로서 공기업 연구원으로 취업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한다. /더비비드

그에게 로봇이란 도구가 아닌 신체의 일부 같은 존재다. “로봇을 어떻게 개발하고 학습 시키냐에 따라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생산 현장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아파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력을 쌓아서 로봇의 생산성으로 사람을 이롭게 하는 세상을 앞당기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갈 길이 멀어요. 연구원에 있는 동안 석박사 과정까지 수료하고 싶어요. 로봇으로 끝을 보려 합니다.”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매 순간을 저울질 하라’고 조언했다. “어머니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단 걸 알았을 때, 모든 순간을 가치있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선택지들의 기회비용을 비교하며 ‘후회하지 않을 일’을 선택했어요. 지금까지 제가 한 판단에 대해서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세요. 그리고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세요. 저는 일찍 IT 전공을 할 기회가 있었고, 주변으로부터 컴퓨터를 잘 다룬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긴 시간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경험이야말로 재능과 나의 접점을 찾아주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회는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임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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