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사건파일]⑲ ‘어금니 아빠’ 사건과 똑 닮은 ‘이태원 참사’… 출동 무전 무시하고 자느라 보고 놓쳐

이학준 기자 2022. 11. 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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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어금니 아빠’ 사건 당시 코드1 출동 지시 있었지만 아무것도 안해
이태원 참사 때도 신속한 보고체계 무너져
법조계 “고의·과실 인정된다면 국가배상 가능”

“관할 경찰서의 여성청소년수사팀 소속 경찰관들이 ‘코드1(최우선 출동 필요)′ 신고 출동 무전을 받고도 출동하겠다고 허위보고한 뒤 출동을 하지 않은 채 사무실에 있었다. 실종신고보다 후순위 업무를 하다가 다음 날 지구대에 가서 약 2분 간 수색상황만 물어보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행위는 ‘112종합상황실 운영 및 신고처리 규칙’ 등 관련 규정을 명백하게 위반하는 위법한 행위에 해당한다.”

이른바 ‘어금니 아빠’ 사건 피해자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1심 판결문 내용이다. 어금니 아빠 사건은 이영학이 2017년 9월 30일 중학생 A양을 집으로 불러들인 뒤 수면제를 먹여 잠들게 하고 수차례 추행하다 이튿날 낮 12시 30분쯤 목을 졸라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건이다.

유족들은 경찰이 실종신고에 제대로 대응했더라면 A양이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2월 이영학이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서울북부지법 법정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조선DB

A양에 대한 실종신고는 A양이 사망하기 약 13시간 15분 전인 2017년 9월 30일 오후 11시 15분에 이뤄졌다. 서울경찰청은 A양 휴대전화의 최종 기지국 위치를 확인한 뒤 이를 관할인 중랑경찰서에 하달했다. 중랑경찰서는 신고 접수 5분 만에 이 사건을 코드1로 분류, 중랑경찰서 여청수사2팀과 관할 지구대에 출동을 지시했다. 코드1이란 ‘최우선 출동’이 필요한 경우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청수사2팀은 움직이지 않았다. 당직을 서던 여청수사2팀 소속 순경은 출동 지시 무전에 ‘알겠다’는 취지로 답했으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함께 당직을 서던 경위는 소파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고, 팀장인 경감은 당직실이 아닌 2층 사무실에 대기하고 있어 무전을 듣지 못했다. 팀장은 당일 자정까지 사무실에서 대기하다 이튿날 오전 6시 7분쯤까지 휴게실에서 잠을 잤다.

코드1 신고에 출동한 것은 지구대뿐이었다. 지구대 경찰관들은 중랑경찰서에 112 타격대 수색 지원을 요청하고 A양 휴대전화의 최종 기지국 위치 주변을 수색했다. 그러나 중랑경찰서 112상황관리관은 당직 팀장에게 제대로 된 인수인계를 하지 않은 채 퇴근했다. 결국 지구대 경찰관과 112 타격대는 수색장소 분할 등 구체적 임무 지시를 받지 못한 채 수색을 벌여야만 했다.

여청수사2팀이 A양 관련 실종신고를 인지한 것은 코드1 출동 지시가 있은 지 6시간 46분 뒤였다. 휴게실에서 잠을 자던 팀장이 2017년 10월 1일 오전 6시 7분쯤 당직일보 보고를 받고 나서야 출동 지시를 알아챈 것이다. 그러나 팀장은 별다른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같은날 오전 7시쯤 출근한 과장에게 “특이사항 없다”고 보고한 뒤 퇴근했다.

A양 관련 사건이 중랑경찰서장에게 보고된 시점은 이미 A양이 살해된 지 이틀이 지난 후였다. 경찰이 원칙대로 출동 지시에 따랐더라면, 인수인계와 보고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살인사건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재판부는 이 같은 경찰의 대응이 위법하다고 판단하고 A양 유족에게 약 1억8924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지구대 경찰관들이 최종 목격지와 목격자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점 ▲A양 가족이 이영학 가족의 존재를 언급했음에도 이를 귀담아 듣지 않은 점 ▲코드1 출동 무전을 받고도 출동하지 않은 점 ▲여청수사2팀장이 당직실에 위치하지 않은 점 ▲형식적인 업무보고를 한 점 등이 112종합상황실 운영 및 신고처리 규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경찰관의 위법행위와 A양의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성립된다고 봤다. 경찰이 실종신고에 제대로 대응했더라면 살인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경찰관들의 위법행위가 없었다면 이영학은 늦어도 A양을 살해하기 전인 10월 1일 오전 무렵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A양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골목./뉴스1

일각에선 어금니 아빠 사건에서의 늑장 대처가 최근 이태원 참사에서도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동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신속한 보고체계마저 무너진 점이 판박이라는 것이다.

실제 경찰은 이태원 참사 약 4시간 전부터 압사 사고를 우려하는 112신고 11건을 접수해 이 중 8건을 코드1과 코드0으로, 나머지 3건은 코드2로 분류했다. 그러나 경찰관이 현장에 출동한 것은 코드2 2건, 코드0 1건 뿐이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참사가 발생한 지 최소 45분이 지났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잠에 들어 경찰청 상황담당관이 보낸 사고 관련 문자와 전화 보고를 확인하지 못했다. 윤 청장은 참사 발생 약 2시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사태를 인지했다.

법조계에선 이태원 참사에서 경찰의 대응이 위법했다는 점 등이 인정된다면 국가배상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상오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국가배상 책임을 물으려면 직무집행과 관련한 고의 또는 과실이 있어야 한다”며 “이태원 참사의 경우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가 문제다. 진상규명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소한 국가 과실을 입증할 수 있다면, 국가배상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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