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과학용어] ②게놈·호우…일본어 번역투가 오해를 키운다
[편집자주] 소부장, 감염병, 재난재해, 기후위기, 환경, 에너지, 원자력 등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과학기술의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사회 안전과 삶의 질을 위한 과학기술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새로운 과학기술 용어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용어가 나오는 속도만큼 대중이 이해하는 속도가 따라오지 못합니다. 용어 이해도에 따라 삶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고 있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과학기술 용어를 주로 사용하는 과학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인식 간극을 좁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공감! 과학용어] 기획을 진행합니다. 첫 순서로 석학들이 회원으로 구성되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함께 ‘한림원 회원들이 선정한 고쳐써야 하는 과학용어’를 3회에 나눠 소개합니다.
"장마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리면서 전국 곳곳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강한 비라는 뜻의 호우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대표적인 과학기술 관련 용어 중 하나다. 과학기술계 석학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원들은 과학기술 용어에 일본어 번역을 그대로 가져오다 보니 의미가 햇갈리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을 내놨다.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려면 '폭우' '대우' 등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동아사이언스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함께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7일까지 '공감대 높이는 과학기술 용어 조사'를 실시했다. 회원들을 대상으로 미디어에 유통되는 과학기술 용어 중 바로 잡아야 하는 용어를 묻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와 대체 용어를 물었다. 총 62명의 회원이 조사에 응했다.
'호우'라는 용어 자체에서 강한 비라는 의미를 바로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일본에서 쓰는 용어를 그대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일제의 잔재다. 이에 2015년 서울시는 일본식 한자어로 된 용어를 순화하겠다며 호우를 '큰비'로 순화해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뇌졸중도 마찬가지 경우다. 뇌졸중은 '뇌가 졸지에 다친다'는 의미로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진 일본식 한자어다. 2003년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위원회에서 이를 '뇌중풍'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미 굳어진 표현인데다 일본과 한국의 영향으로 중국과 대만에서도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이 시도는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게놈'처럼 일본이 영향을 받은 독일식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게놈(genome)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의 뒷부분을 더해 만든 용어로 한 생명체의 특징을 결정짓는 정보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이를 '게놈'으로 발음하는 것은 독일식 발음으로 음차한 결과다. 우리나라에서는 1930년대 독일어에 영향을 받은 일본어를 통해 들어와 지금도 '게놈'으로 표기하고 있다.
비슷한 경우가 화학원소다. 2005년 국가기술표준원은 독일어와 일본어 식으로 사용해 온 화학용어를 국제기준에 맞는 표기법으로 고쳐 KS규격으로 제정한 바 있다. 이에 나트륨(Na)은 소듐, 칼륨(K)은 포타슘, 요오드(I)와 게르마늄(Ge)은 각각 아이오딘과 저마늄으로 표기법이 변경됐다. 이전 표기법은 모두 독일어에 영향을 받은 일본식 표현이 국내에 정착된 경우다.
배출흡수반응(Negative emission thechnology)과 복분해반응 등 일본식 직역 표현이 되려 의미를 이해하는 데 혼동을 준다는 지적도 있었다. 배출흡수반응은 탄소중립을 위해 배출된 탄소를 제거하거나 탄소배출을 방지는 기술이다. 복분해반응은 두 가지 물질이 반응해 새로운 두 물질을 만드는 화학반응을 말한다. 모두 직역하는 데 초점을 두다 보니 의미가 바로 와닿지 않는다며 각각 '네거티브 배출 기술'과 '교환반응'으로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 이 프로그램은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재원으로 운영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성과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영애 기자 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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