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두렵다"…수원역 성매매집결지 폐쇄 '그 후'
'자발' 논리 덫으로 범죄자 취급
성 제공자 아닌 '성착취 피해자'
풍선효과 어불성설…이미 만연
구매자 처벌 강화로 '수요 차단'
집결지 폐쇄, 거창한 성과 아냐
"자활 용기 북돋아주는 게 우선"
"한 여성분이 앞니가 다 빠져서 왔어요. 구강성교하려면 이를 빼야 한다는 포주 말에…"
시민단체인 성매매피해 상담소 '오늘'의 유경(활동명) 소장은 첫 사례를 잊지 못한다. 성매매 '늪'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한 여성에 대한 얘기다. 그 기억을 꺼내며 어금니를 악물었다.
해당 여성은 자기 신체에 대한 자유의지마저 상실한 상태였다고 한다. 몸은 물론, 정신마저 누군가에게 지배돼 있었다는 것.
"정신질환을 앓는 여성들이 대부분이죠. 처음엔 10~20대 젊은 여성들에게 선불금도 주고 방도 빌려주면서 업주들이 '미끼'를 던져요. 이걸 근거로 그들만의 규칙을 정해 빚 상환과 또 다른 강압적 성매매를 요구하는 식입니다. 함정을 파놓는 겁니다."
성매매집결지 내 여성들을 가리켜 '자발'이냐 아니냐를 놓고 따지는 논쟁에 대해서도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불법적인 성산업 구조 속에서 의식의 지배, 이른바 가스라이팅에 가까운 강압에 의한 것이지 "결코 그들의 선택이 아니다"라는 의미다.
돈을 쉽게 벌려거나, 게을러서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들은 학력이 중단되고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처지였다. 유 소장은 반복적 성관계를 위해 항생제를 놓는 '주사 이모'가 동원되는가 하면, 성형수술 알선까지 이뤄지며 여성들은 치밀하게 통제됐다고 상담 기록을 더듬었다.
이 같은 성매매 현장의 이면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켜봐온 게 유 소장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폐쇄는 아직 완결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7일 유 소장은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갇혔던 여성들에 대한 인식은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그들은 성매매 제공자가 아닌 엄연한 '성착취 피해자'이다"라고 힘을 줬다.
'피해자'가 되지 못한 女…"수요·알선의 합작품"
이 같은 맥락에서 집결지 폐쇄 후 '여성들이 타 지역에 이동해 풍선효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취재기자의 물음은 우문이 됐다. 질문 자체에 왜곡된 시각이 녹아 있다는 지적이다.
"집결지에 있던 여성들을 피해자로 보지 않고 범죄의 주체로 보는 시선인 거죠. 여성들이 이동을 해서가 아니라, 이미 불법적인 판과 굴레가 곳곳에 기형적으로 스며들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수원 여성의 전화를 시작으로 15년간 성매매업소 여성들과 소통하며 "사연을 들을수록 성착취 구조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거듭 지난날을 되짚었다.
부조리의 근원적 요인으로는 여성을 '타락한 희생양'으로 삼아온 편향된 선입견과 제도를 지목했다. 불법이 근절되지 않은 원인은 사라지지 않는 수요(구매자)와 이를 악용하는 업주들인데, 화살을 여성에게 겨누는 진단은 애초 방향 설정부터가 틀렸다는 얘기다.
"일제 때 만들어진 공창제가 폐지된 이후 미군 기지촌, 유흥산업 활성화 등으로 성매매를 산업화한 배경에는 국가가 있었습니다. 여성 인신매매까지 성행했죠. 그럼에도 '강제의 손길'에 빠져든 업소 여성들만 필요악적 존재로 치부되고 낙인찍혀온 게 현실입니다."
유 소장은 성매매를 '수요자와 알선자들의 합작품'이라고 단호히 규정했다. 일각에서는 여성들이 직업 수단으로 택한 것 아니냐고 몰아간다. 하지만 그는 여성들 대부분의 자산이 '0'이라는 점을 들어 따져 물었다.
"여성의 몸을 이용해 이익을 착취해온 '사건'으로 봐야죠. 계속 폭력을 당하고, 어느 날 사라져도 또 다른 여성으로 채워졌어요. 성관계를 당하는 순간마다 '이건 내 몸이 아니다'라며 스스로 자아를 분리시켜 버텨냈던 겁니다. 손에 쥔 것도 없는데 일터라고요?"
여성에게 가혹한 법률, 수요자 처벌 '초점'
"수원역 집결지는 쇄락한 곳이라 외국인, 가난한 남성들이 애용하던 곳인데 없애면 성욕을 어디서 푸느냐는 말을 듣고 황당했죠. 성매매를 비범죄화(합법화)한 뉴질랜드 등의 사례를 보면, 성매매를 합법화하면서 오히려 성범죄가 크게 늘었습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실제 영국의 여성단체 '노르딕 모델 나우(Nordic Model Now, NMN)'에 따르면, 뉴질랜드에서는 성매매를 전면 비범죄화한 2003년 이후 2014년까지 강간을 포함한 성범죄가 60%가량이나 늘었다. 합법화와 범죄 발생 간 직접적 상관관계는 후속 증명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성매매를 막는다고 해서 성범죄가 증가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해석은 가능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법제도는 여전히 여성에게만 가혹하다는 게 유 소장의 판단이다. 2000년 군산 성매매집결지 화재 참사를 계기로 2004년 성매매처벌법이 제정되기는 했지만, 피해자인 여성들이 업주나 성 구매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형사처벌 대상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집결지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범죄자가 되는 것'입니다. 구매자는 몇 번 교육받으면 된다는 인식이 만연하고, 여성들은 형사 기소되는 경우가 많아요. 의지와는 무관하게 빠져들었는데도 구제받지 못할까봐 벌벌 떠는 거죠. 자꾸 숨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는 '노르딕 모델'을 제안했다. 성매매 축소를 위해 판매자가 아닌 구매자를 처벌하는 정책 기조다. 이를 채택한 프랑스 한 관계자의 일침에서 유 소장은 해답을 읽었다.
"초청 포럼에서 '성매매가 존재하고 이를 폭력으로 인식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평등을 얘기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수요자에게 초점을 맞춘 처벌이 평등이자 핵심이라는 겁니다."
이를 통해 수요를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성매매 근절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집결지 폐쇄는 시작, 자활 용기 심어야"
그는 수원역 집결지가 60여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폐쇄된 것도 불법을 방관해온 관계 기관들의 인식과 태도의 한계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일례로 지난해 폐쇄 과정의 뒷얘기를 털어놨다.
"주변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예견된 수순이었죠. 또 (집결지 폐쇄 명분이었던) 소방도로정비 과정에서 업소 여성 두 명이 구조요청하고 고발까지 이뤄졌는데, 처음엔 수사조차 안 하더군요. 그러다 전담팀 꾸려지고 경기남부경찰청장 바뀌고 하더니 압수수색하고, 일사천리로 문을 닫게 만들었습니다. 수십 년간, 왜 진즉에 하지 않았던 건지…"
이런 과정에서 집결지가 '자진' 폐쇄된 것처럼 홍보되고 인식되는 데 대해서도 유 소장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자칫 불법을 자행한 포주들에게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포주들이 자진 폐쇄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건 꼬리 자르기죠. 자신들의 범죄수익 몰수추징을 피하려는 꼼수입니다. 영등포 사례처럼 포주들을 공동 고발해 전체 몰수 부과를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다만 관할 지자체인 수원특례시 조례를 통해 자활지원이 되는 데 대해서는 "엄청난 기회이자 진보"라고 높이 평가했다. 시는 수원역 집결지 여성들을 대상으로 생계비와 주거비, 직업훈련비 등을 1년간에 한해 지원하고 있다. 현재까지 66명이 지원을 받았다.
그는 "성매매를 하지 않고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용기를 갖는 계기가 되고 있다"면서 "지자체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국비 분담 비율을 늘려 지원 범위와 기간 등을 늘려주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바랐다.
또 유 소장은 "집결지는 폐쇄됐지만, 삭제되지 않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가 지원활동을 해온 이유는 단 하나,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성매매를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시스템과 인식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집결지 폐쇄의 여정을 백서로 기록하겠다는 다짐이다.
끝으로 그는 "'집창촌'이라는 용어는 창녀라는 혐오와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어 성매매집결지로 표현하는 게 옳다"며 "성매매 이슈가 민감한 만큼, 언론에서도 피해 여성들에 대해 올바르고 따뜻한 시선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러고는 유 소장이 이끄는 오늘 측은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현장을 취재한 기자에게 역으로 물음표를 던지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앞서 CBS 노컷뉴스는 수원역 성매매집결지 폐쇄 국면에서 그 안에 갇힌 여성들 처지와 관련 정책의 한계 등을 연속 보도했다. 폐쇄 후 주변 모텔촌 등의 성매매 실태를 다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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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창주 기자 pc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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