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상인들 “사람들이 무서운 곳으로 여길까 두려워요”
애도기간 지났지만 문 연 곳 적어
“어제 손님 한명도 못받았다
장사 말 꺼내기도 조심스러워요”
가게마다 미리 사둔 식재료 폐기
“이대로 상권도 죽을까봐 걱정”
“사람들이 이태원을 ‘무서운 곳’이라 생각할까 봐, 그게 가장 걱정되네요.”
지난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파출소 뒤쪽 골목의 불 꺼진 술집 안에서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담배를 태우던 사장 강모(58)씨가 말했다. 이 가게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일어난 그 골목길 건너편에 있다. 직선거리로 180여m 떨어져 있다. 강씨는 언제 장사를 다시 시작해야 할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그는 “원래 주말 저녁 하루 1000만원 매출을 올렸는데, 이게 고스란히 사라졌다”면서 “하지만 참사 앞에서 ‘장사’라는 말을 꺼내기도 조심스럽다”고 했다.
강씨의 가게 안 냉장고는 두부와 숙주, 김치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핼러윈 전후 장사를 하려고 넉넉히 주문했다가, 모조리 버리게 됐다고 한다. 강씨는 “겨우 코로나를 넘어서나 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후 열흘이 넘게 지났지만, 이태원 일대 상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하지도 못하고 있다. 본지 기자들이 만난 이태원 상인 10여 명은 참사 당일 주방에서 음식을 조리하기 바빠 현장을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생계에 대한 걱정을 안고 있었다. 참사가 난 골목 주변뿐 아니라, 이태원이라고 불리는 이 일대에서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은 술집이나 일반 음식점, 카페 등 업종이 무엇이든 사실상 같은 처지다. “이번 참사로 이태원이란 공간도 함께 죽은 셈”이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
8일 오후 4시쯤 찾은 이태원파출소 뒤쪽 골목의 한 술집. 어둑한 가게 안에 사장 송석구(68)씨가 홀로 있었다. 그는 최근 식재료 600만원어치를 버렸다고 했다. 이날도 미처 치우지 못한 남은 식재료들을 버렸는데, 25L 폐기물 봉투 두 개가 금세 가득 찼다. 송씨는 “지난 7일 가게 문을 한번 열어봤는데, 손님이 밤늦게까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태원 상인들에게 매년 핼러윈은 최대 대목이자, 크리스마스와 연말로 이어지는 성수기의 물꼬를 트는 중요한 시기였다고 한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서 7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정모(40)씨는 코로나 거리 두기가 풀린 지난 5월 2억원을 들여 가게를 단장하고 장사를 재개했다고 한다. 그는 “코로나만 지나면 점점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이 있었는데, 그 희망이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고 했다.
상인들은 참사 희생자들 앞에서, 막막해진 생계에 대한 고민을 마음속으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서 100여m 떨어진 곳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임모(65)씨는 “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희생된 상황에서 생계가 어려워졌으니 어딘가에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핼러윈을 맞아 평소 주말에 15㎏ 정도 주문하던 홍합을 50㎏ 주문하는 등 평소보다 3배 넘게 식재료를 준비했다가, 참사 이후 모조리 버렸다고 했다.
국가 애도 기간이 지난 5일로 끝났지만, 여전히 문을 열기를 주저하는 상인들이 많다. 이번 달 내내 문을 닫기로 한 상인들도 있다. 9일 오후 6시쯤 찾은 이태원 일대는 여전히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 뒤쪽으로 늘어선 가게 20여 곳 중 절반이 넘는 가게들이 아직 문을 닫고 있었다. 문을 연 가게 7~8곳도 직원들이 가게 안에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손님이 있는 곳은 이 중 1~2곳에 불과했다.
상인들은 여전히 참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기 조심스러워했다. 사고가 발생한 골목의 바로 옆 골목에 있는 음식점 사장 50대 A씨는 “당시 오후 10시 30분쯤 영업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도 골목에 술을 마시는 이들이 많았고, 인파가 워낙 많아 사고가 터진 줄도 몰랐다”며 “가게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그냥 집으로 온 게 너무도 미안하다”고 했다.
가게 문을 연 지 한 달 만에 이번 참사를 겪게 됐다는 술집 사장 한모(30)씨는 “이대로 상권이 무너지는 걸 보면서 상인들이 대체 뭘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일부 상인은 그래도 희망을 걸어보겠다고 했다. 한 상인은 “오래 명맥을 이어온 이태원은 몇 달 뒤 다시 일어설 그럴 힘이 있다고 믿어보려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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