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돌아온 ‘자유민주주의’
초·중 교과서에 ‘기업 자유’ ‘시장경제’ 명시
文정부때 선임된 연구진들이 87%로 더 늘리려던
근현대사 비율, 전문 연구진 새로 꾸려 줄이기로
교육부가 2025년부터 고교생이 배우게 될 새 한국사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를 다시 넣기로 했다. 초·중학교 사회 교육과정에는 ‘기업의 자유’와 ‘자유경쟁을 기반으로 한 시장경제’ 표현이 명시됐다.
교육부는 9일 이런 내용을 포함한 ‘2022 교육과정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교육부는 지난 8월 정책 연구진이 만든 시안에 대해 국민 의견을 수렴했고 이를 반영해 지난달 2차 수정안을 만들어 공청회를 연 바 있다. 교육부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해 그동안 논란이 됐던 내용을 고쳐 새로 안을 내놓은 것이다. 1·2차 시안이 문재인 정부가 꾸린 정책 연구진 의견이었다면, 이번 행정예고안은 윤석열 정부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꼭 배워야 할 개념과 체계, 용어 등을 담은 것으로, 이 내용에 따라 집필자들이 교과서를 쓰게 된다. 교육부는 우선 고교 한국사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를 명시했다. 당초 공개됐던 연구진의 1차 시안은 ‘6·25 남침’ 서술이 빠지고, ‘자유민주주의’ 대신 ‘민주주의’로 표현돼 있어 논란이 됐다. 이후 연구진은 2차 시안에 ‘6·25 남침’을 포함했지만, ‘민주주의’ 표현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고교 한국사의 ‘대한민국 발전’ 단원의 성취 기준에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을 탐색한다’고 서술, ‘자유민주주의’를 추가했다. 2018년 문재인 정부가 만든 현행 교육과정은 성취 기준에는 모두 ‘민주주의’ 표현을 썼고, 성취 기준 해설에 헌법 전문에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표현만 포함시켰다. 윤석열 정부는 이보다 더 명확하게 성취 기준에 ‘자유민주주의’를 적시한 것이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추가했다.
교육부는 ‘자유민주주의’를 넣은 이유에 대해 “광복 이후 미·소 대립이 본격화되며 한반도에 냉전체제가 고착되었고 대한민국은 미국 등 자유민주 진영의 정치, 경제 제도 등을 기초로 정부를 수립했다”면서 “당시 북한 정권과 대비되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정통성을 확고히 명시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또 2000년 헌법재판소도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헌법의 지향 이념으로 삼고 있다”고 결정했고, 통일교육지원법, 국가보훈기본법, 유엔참전용사법, 국가유공자단체법 등 국가 정체성이나 지향 가치를 다루는 다양한 법률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명시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과정 맥락에 따라 둘 중 적절한 용어를 기술했다”고 설명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관련,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 서술할 땐 ‘자유민주주의’를, 독재 정권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 부분에는 ‘민주주의’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정부가 통상 ‘자유민주주의’나 ‘민주주의’ 중 하나만 사용한 것과 대조된다. 예컨대, 노무현 정부가 만든 2007 개정교육과정은 ‘민주주의’만 사용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2011·2015 개정 교육과정은 ‘자유민주주의’만 사용했다.
교육부는 이번 행정예고안에는 반영하지 않았지만, 행정예고 기간 고교 한국사 교육과정의 근현대사 비율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교육과정 시안에서 근현대사 비율은 87%(총 6개 단원 중 5개)로, 기존 학생들이 배우는 교육과정(75%)보다 더 높아졌다. 이에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가 고조선부터 조선 후기까지 수천년 역사엔 13%만 할애하고 150년에 불과한 근현대사를 87%나 다루면 제대로 역사 교육이 되겠느냐”는 지적이 학계에서 제기된 바 있다. 교육부 오승걸 학교혁신지원실장은 “근현대사 비율을 조정하려면 전문 연구진을 새로 꾸려야 해서 이번 행정예고안에는 반영하지 못했다”면서 “국민 의견 수렴 과정과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된 문제인 만큼 행정예고 기간에 최대한 근현대사 비율을 줄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으로 20일간 교육과정 개정안을 행정예고하면서 다시 한번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만들고 이를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국교위가 심의·의결하면 다시 교육부가 연내에 확정·고시하게 된다. 행정예고와 국교위 심의·의결 과정에서도 ‘자유민주주의’ 등은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해 교원 단체 간 의견이 갈렸다. 한국교총은 “자유민주주의 용어를 명시한 것은 헌법 취지를 존중한 것이고, 성평등 용어를 제외한 것은 사회적 합의가 먼저 필요하다는 국민 인식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반면 전교조는 “자유민주주의를 무리하게 끼워넣어 논란을 만들었고, 성평등·성소수자 같은 용어를 금기시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라며 “기존 교육과정 시안대로 되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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