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물 뒤집어쓴 名畵… 골머리 썩는 미술관
佛 루브르박물관서 시작된 테러
수천억 달하는 명작 줄지어 당해
대중의 즉각적 관심 얻고자 감행
유리로 보호돼 실제 훼손 적지만
“공익 해치는 폭력일뿐” 비판 봇물
케이크, 으깬 감자, 토마토 수프, 가짜 피….
최근 세계적 명화(名畵)에 오물 투척이 이어지고 있다. 모두 1000억원 이상 가치를 지닌 미술사(史) 걸작들로, 추정가 1200억원짜리 반 고흐 ‘해바라기’는 붉은 토마토 수프, 경매 낙찰가 1600억원을 기록한 인상주의 태두 모네의 ‘건초더미’는 희뿌연 감자죽을 얻어맞았다. 6·25전쟁을 주제로 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에 이어 가장 최근인 지난 5일에는 스페인 프라도미술관에 전시된 고야의 그림 두 점이 타깃이 됐다. 모두 극렬 환경운동가들의 소행이었다. 이른바 ‘에코 테러리즘’이다.
◇그림에 왜들 이러십니까
‘모나리자’가 시발점이었다. 지난 5월 노파로 분장한 한 30대 남성이 휠체어를 타고 루브르박물관에 들어와 ‘모나리자’를 향해 케이크 조각을 던졌다. 그러곤 보안요원에 의해 끌려나가며 “지구를 생각하라”고 외쳤다. 아름다운 작품의 오염과 아름다운 지구의 파괴를 연결시킨 것이다. 수많은 매체가 해외 토픽으로 소식을 타전했다. 환경단체가 미술 작품을 볼모로 택한 이유는 이 같은 “대중의 즉각적인 관심”이다. 일반적인 집회·시위로는 끌기 어려운 국제적 이목이 걸작의 명성 덕에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영국 ‘저스트스톱오일’이나 이탈리아 ‘울티마 제네라치오네’ 등 환경단체 회원들은 자신의 손과 머리에 접착제를 발라 그림에 붙이는 기행을 벌이기도 한다. “환경과 인간이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주려는” 퍼포먼스이자, 발언을 끝마칠 때까지 쉽게 끌어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다. 명백한 테러임에도 초고가(價) 작품 손상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도 이 전략의 일부. 대개의 작품이 유리나 액자로 보호되기에 오물은 닦아내면 그뿐이라는 논리다.
◇“수신호하는 관람객 주의”
미술관은 비상이 걸렸다. 스포츠 행사나 공항 등에서 보안을 점검하는 업체의 상담을 받는 곳도 늘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최근 미국 보안 회사 ‘카멜레온 어소시에이트’는 미술관 10여 곳에 가상의 시위대를 파견해 보안 상태를 점검했다. 업체 관계자는 “입장할 때는 혼자였는데 어느새 일행과 합류해 서로 수신호를 주고받는 이들이 요주의 대상”이라며 “CCTV 위치를 확인하려 두리번거리거나 관람 동선을 무시하고 특정 작품에 곧장 직진하는 관람객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정부 당국의 대응도 기민해지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리마 압둘 말라크 문화부 장관의 “경계 강화”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지난달 27일 오르세미술관에서 테러를 꾀하던 환경단체 회원이 저지당했다. 유니폼을 드러내려 상의를 벗다가 덜미가 잡힌 것이다. 애초 고흐 자화상에 풀칠을 시도했으나 가로막히자 방향을 틀어 고갱의 그림으로 돌진했고, 이 역시 제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한국에서는 이 같은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
◇“반 고흐씨, 복수해줄게요”
관심과 더불어 반감도 커지고 있다. 설명은 그럴싸해도 공익에 반하는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일 숄츠 총리는 최근 정책 토론회에서 “솔직히 수프가 묻어있는 예술 작품을 보고 싶지는 않다”며 “환경운동가는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유명 래퍼 릴 나스 엑스는 인스타그램에 “고흐의 복수를 해주겠다”며 본인의 합성 사진 한 장을 올렸다. 미술관 벽에 걸린 토마토 수프(앤디 워홀 그림)를 향해 고흐 ‘해바라기’ 그림을 던지는 사진이었다. ‘해바라기’가 토마토 수프 세례를 당하자, 반대로 역공한 것이다. “이 사진을 미술관에 전시해야 한다” “당신이 진정한 활동가”라는 댓글이 수천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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