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책임질 시간이다, 선출직은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기자 2022. 11.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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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으로 일한다는 것은 일상이 비상대기이고 시민들의 요구와 청원에 해결 가능한 대안을 고민하는 스트레스로 하루하루가 점철되는 힘든 직업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지난 8년을 구청장으로 일하면서 몇 번의 고비와 위기로 힘에 겹다는 생각도 했었다. 메르스 때는 초기에 비상대책회의와 학부모들과의 연대로 위기를 넘겼지만 1명의 확진자 사망으로 참담하기도 했다. 빗물저류배수시설 준공을 앞두고는 지하터널로 들어간 작업자를 구조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초조하게 현장과 청사를 오가며 애타게 기도한 순간도 있었다. 관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사고는 예고 없이 다가온다. 그때마다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매일 긴장의 연속으로 휴가도 맘 편히 가본 적 없는 일상이었다.

김수영 전 양천구청장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내가 그 지역 구청장이었다면 어찌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들여다보려 해도 이번 참사를 대하는 용산구청장의 처리 방식은 용납하기 어렵다. 준비 안 된 지도자의 무능함을 드러낸 것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뿐만 아니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명시된 지자체의 기본적 의무에 대한 숙지도 없었으니 안타깝게도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보인다.

우선, 핼러윈 축제 대책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부구청장을 대리참석시켰다는 것은 시민안전에 대한 도덕적·법률적 책무마저 버렸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구청장 취임 후 하는 첫 대책회의를 대리참석시키고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법적 책임도 피하기 어려운, 구청장으로서의 기본적인 업무 숙지도 안 된 처사다.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사고가 난 현장 근처에서 살고 있고 그 지역 구의원도 지낸 분이 매년 해왔던 핼러윈 축제의 인파 예측을 못했다는 것을 어찌 믿으라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설령 인파 예측을 못한 관행적인 축제 대책회의라 할지라도 구청장은 대책회의가 우선이지 주민 행사에 축사하러 가는 것이 우선일 수 없다.

두 번째로, 참사 당일 구청장의 행적을 보면 책무를 방기한 것으로 보인다. 지방 갔다가 돌아와 집에 가는 길에 현장을 지나가게 되었고 수많은 인파를 보며 걱정만 했다는 것이다. 지역 국회의원에게 걱정하면서 지켜보겠다는 보고를 하기 전에 관내 경찰서장에게 긴급요청을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구청장은 상황을 지켜보는 자리가 아니라 수습하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자리다. 구청장이 그 지역을 지나기 이전에 이미 경찰서가 아닌 구청 당직실과 서울시 120전화로 그 현장을 보고 우려하는, 나아가 애타게 살려달라는 외침이 전해졌다는 것 아닌가. 더구나 당직실에 있던 직원이 보고를 안 했다고 하는데 그러한 시스템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은 구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책임 또한 구청장에게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참사 이후 용산구청장의 언행은 구청장으로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책임회피에 급급한 모습은 오히려 어리둥절하게 했다.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고 주최자가 없는 현상에 구민의 안전은 책임질 수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숙지하지 못했더라도 기본적으로 주민의 부름으로 지도자가 된 사람이라면 국민의 기본권에 무한책임을 가져야 할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임했어야 한다. 준비 안 된 지도자의 끝을 보는 참담함을 인터뷰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이제 애도하고 슬퍼하며 애끓는 마음으로 추모하는 시간은 지나고 있다. 책임질 시간이다. 현장에 국가는 없었고 진두지휘할 현장 지도자도 없이 우리 미래세대를 잃었고 국민에게는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선출직이라 해서 ‘마음의 책임’으로 피해 갈 길은 없다. 국민의 목소리에 부응하고 소통해야 하는 선출직은 그 책임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김수영 전 양천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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