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무한책임은 ‘책임 없음’과 같다

기자 2022. 11. 1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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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년, 금나라 대군이 송나라 수도 개봉을 향해 진격해왔다. 기다리는 구원병은 소식이 없고, 도성을 지키는 군사는 1000여명에 불과했다. 이대로라면 수도의 도성이 함락당하는 사태는 피할 수 없었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당시 도성 교외의 창고에는 대포가 500문이나 보관되어 있었다. 만약 도성으로 가지고 온다면 수비에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가지러 가지 않았다. 관련 부서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겼기 때문이다. 국방부에 해당하는 ‘병부’는 사령부 역할을 맡은 ‘추밀원’이 가져와야 한다고 떠넘기고, 추밀원은 무기를 관리하는 ‘군기감’이 가져와야 한다고 떠넘겼다. 군기감은 대포가 수레에 실려 있으니 수레를 관리하는 ‘가부’가 가져와야 한다고 떠넘기고, 가부는 대포가 창고에 있으니 창고를 관리하는 ‘고부’가 가져와야 한다고 떠넘겼다. 이렇게 서로 떠넘기는 사이, 대포 500문은 교외까지 진격한 금나라 군대의 수중에 고스란히 들어갔다. 수도 개봉은 그 대포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고 말았다. 군사들은 몰살당하고, 황제는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 <선화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정부 각 부처가 소관 업무를 서로 미루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평상시도 아니고 적군의 침입이 목전에 닥친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무기를 가져오는 일조차 서로 떠넘겼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금나라 대군에 포위된 송나라 군사들은 40일이나 농성하며 버텼지만 역부족이었다. 대포만 있었다면, 어느 부서든 책임을 떠맡고 가져왔더라면, 송나라는 멸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송나라는 중국 역대 왕조 중에서도 유난히 관료주의적 성향이 강한 국가다. 군벌의 발호로 몰락한 당나라를 경계 삼아 관료의 자율성을 억제하고 조직 구조와 업무 분장을 법률로 세세히 규정했다. 국가와 같은 거대 조직을 운영하려면 책임과 권한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법률이 자세해도 경계가 애매하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영역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법. 관료제하에서는 설사 의도가 선량해도 책임과 권한을 넘어선 행동은 위법과 월권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복지부동이 최선이다. 이 같은 경직성 탓에 유연한 대응이 어렵다는 점은 관료제의 한계다. 상황이 위급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위급할수록 책임을 기피하며 남에게 떠넘기기에 급급하기 마련이다.

이태원 참사 후 11일이 지났다. 참사를 복기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관계 기관의 초기 대응이 미숙했다는 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참사는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전에 경찰과 구청이 질서 유지에 나섰다면, 지하철 무정차 통과 조치만이라도 내렸다면, 인근에 대기하던 기동대를 투입했다면, 참사 전 쏟아진 위험 신고에 적극 대응했다면, 경찰 지휘부가 신속히 제자리를 찾아 지휘했다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참사라는 말은 틀렸다. 참사 징후는 뚜렷했다. 애써 무시했을 뿐이다.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하던 당시와 달리, 책임을 피하려는 행동은 신속하기 그지없다. 허위 보고, 보고서 삭제, 잇따른 책임 회피성 발언이 그것이다. 경찰과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장관의 발언, 축제가 아니라 ‘현상’이라는 구청장의 궤변, 정부의 책임을 묻는 심각한 자리에서 국무총리가 던진 농담은 실망스럽다 못해 절망적이었다. 여론의 비난을 받고 마지못해 유감을 표명했지만 그런다고 책임을 인정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무한책임’은 ‘책임 없음’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국회에서 벌어지는 책임 공방 역시 곱게 보이지 않는다. 미비한 입법도 이번 참사의 원인 중 하나다. 참사를 정치적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는 약속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참사는 이미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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