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안보불감증이라 다행이다”

양승식 기자 2022. 11. 10.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로 온 국민이 충격에 빠져 있던 지난 2일 속초 앞바다에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떨어졌다. 울릉도에는 공습경보도 발령됐다.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은 북방한계선(NLL)을 넘겨 미사일을 쐈다. 하루에 25발 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의 동요는 없었다. 정치권도 차분했다. 70여 년간 겪은 적 없던 도발에도 한국 사회는 놀랍도록 침착했다.

지난 2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의 동해상 탄도미사일 발사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뉴스1

북한의 최근 도발은 여러 의미에서 이전과는 다르다. 북한은 그동안 한국에 대형 사건이 발생하면 내부 분열을 부추기려는 의도로 굳이 도발을 하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북한은 이례적으로 조용했다. 이번엔 달랐다. 김정은은 이태원 참사 와중에도 막무가내식 도발을 감행했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동해에서 훈련을 해도,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한 한미 공군 전투기 수백 대가 훈련을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기존 틀을 깬 도발로 우리 사회를 총체적으로 혼란하게 하려는 의도가 명백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심각한 안보 불감증은 북한의 이런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 북한이 노린 미사일로 인한 사회 혼란은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선 “북한의 도발은 심각해 보인다”면서도 “어쨌든 당장 피해를 입은 건 아니잖나”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국민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안보 불감증은 매한가지였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일주일간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한의 도발을 딱 한 번 언급했다. 국민의힘은 북한 미사일을 규탄하는 메시지를 비교적 많이 냈지만 관성적 수사로만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야는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의결했지만 마치 면피용 숙제를 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군이 보인 모습은 미덥지 못했다. 북한 도발에 맞대응해 전투기로 미사일 3발을 쐈는데, 이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해 쏘려 했던 미사일 대신 다른 것을 발사했다. 충남 보령 대천사격장에서 개최한 ‘2022년 유도탄 사격대회’에서는 대공무기인 천궁이 비행 중 폭발했다. 지난달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에 대응해 쏜 ‘현무-2C’ 탄도미사일은 반대로 날아가 우리 군부대를 덮쳤다. 이쯤 되니 정치권과 군에서는 “국민의 안보 불감증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자조 섞인 얘기까지 나온다.

북한이 의도한 대로 우리 국민이 불안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북한의 의도에 말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민의 안보 불감증을 반겨야 하는 상황은 더욱 씁쓸하다. 이태원 참사 때문에 당장 피해를 입지 않은 북한발 안보 참사는 덜 중요해 보였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북한이 또다시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폭침 같은 도발에 나선다면 그 피해는 돌이킬 수 없다. 그때의 희생자는 전방을 지키는 우리 젊은 장병들이 될 것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