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김치 먹듯 바흐를

김선오 시인·시집’나이트 사커’ 2022. 11. 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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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한상엽

바흐를 좋아한다. 바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나는 조금 유별나게 좋아한다. 가끔은 하루에 열두 시간씩 바흐를 듣는다. 바흐를 한 곡도 듣지 않는 날은 일 년에 열흘도 채 되지 않는다.

바흐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이 김치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만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특히 캐나다 출신의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라면 더욱 뻔한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대표적인 바흐 연주자인 굴드의 연주는 애호가들에게 말 그대로 ‘클래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당연한 것을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굴드의 연주를 좋아하는데, 연주와 함께 녹음된 그의 독특한 허밍을 가장 좋아한다.

클래식 음악은 워낙에 예민해서 음반을 녹음할 때 연주자의 자연스러운 허밍이나 기타 작은 소음들을 제거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음을 제거하면 녹음된 연주 역시 손상을 입기 때문이다. 굴드의 음반 역시 마찬가지다. 가끔은 피아노 소리를 듣는 것인지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인지 헷갈릴 만큼 허밍은 자유분방하고, 피아노 연주를 위해 목소리를 줄일 의향이 조금도 없어 보이는 그가 놀라울 지경이다.

처음 굴드의 바흐를 들었을 때 그의 허밍이 너무나도 거슬려 음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지 애매하게 연주를 방해하는 사람 목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는 그리 아름다운 편도 아니다) 그러나 허밍이 더 이상 군더더기로 들리지 않을 때, 연주와 허밍 사이의 특권적 경계가 무너졌을 때 그 시간 전체가 음악이 되었음을 알았다.

우리의 사고는 많은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도록 설계되어 왔다. 음악과 소음, 좋은 것과 나쁜 것, 내 편과 적. 굴드의 허밍으로부터 내가 배운 것은 사실 모든 것이 하나의 세계 속에 공존하고 있고, 그 안에 존재하는 위계는 내 머릿속의 허상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허밍이 음악의 일부가 될 때 청자인 나는 더 자유롭고 편안해졌다. 이분법적 사고를 잊을 때 이 세계를 살아가는 나 역시 더 자유롭고 편안해질 것이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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