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옆집물리학] 때로는 막고 때로는 돕는, 물리학의 간섭
내 일에 간섭하지 마! 무언가를 하려는데 다른 이가 막아설 때 우리가 하는 말이다. 우리 삶에서 간섭은 이처럼 방해나 훼방의 뜻을 가질 때가 많다. 하지만 물리학의 간섭은 이와 달라, 서로 만나 줄어드는 소멸(destructive)간섭도, 만나서 커지는 보강(constructive)간섭도 있다. 물리학의 간섭은 때로는 막고 때로는 돕는다.
빛과 소리를 포함한 모든 파동은 진행하며 서로 간섭한다. 긴 줄의 양 끝을 두 사람이 나눠 잡고 시간을 맞춰 동시에 위아래로 휙 움직이자. 양 끝에서 만들어진 두 파동은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 한가운데에서 만나고, 그곳에서 줄은 위아래로 큰 폭으로 떨린다. 이처럼 결이 맞은 두 파동이 더해져 진폭이 늘어나는 것이 보강간섭이다. 두 파동이 만나 이루는 합성 파동의 진폭이 0이 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줄 끝을 위아래로 휙 움직여 파동을 만드는 바로 그 순간, 다른 쪽 끝을 잡고 있는 사람은 거꾸로 줄을 아래위로 휙 움직여 파동을 만들 때 그렇다. 위아래가 뒤집힌 모습의 두 파동이 진행해 가운데에서 만나면 덧셈이 아닌 뺄셈이 되어 그곳에서 진폭이 0이 되는 소멸간섭이 일어난다. 결이 딱 맞는 둘이 만나면 늘어나지만, 결 맞지 않아 많이 다른 둘이 만나면 거꾸로 줄어든다.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 가운데서 만난 두 파동은 잠깐의 만남과 간섭 후에 제 갈 길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처럼 파동은 만남을 쉬이 잊어, 시간이 지난 둘의 만남은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빛은 입자일까. 파동일까? 한눈팔지 않고 곧게 달려가는 빛의 직진과 빛의 반사는 빛을 입자로 간주한 페르마의 최소시간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또, 매질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빛의 굴절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모래사장 위를 달리다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는 해변 구조요원을 닮아, 이것도 빛을 입자로 보아 설명할 수 있다. 빛의 입자설을 강하게 주장한 사람이 바로 고전역학을 완성한 뉴턴이다. 그의 권위로 빛의 입자설이 힘을 얻고 있던 17세기 말, 빛의 파동설이 등장해 점점 세를 불리게 되었다. 빛이 마치 당구공과 같은 입자라면 둘이 만나 사라질 리 없다. 하지만 두 빛은 서로를 상쇄해 소멸간섭을 보이기도 한다. 소멸간섭은 빛을 입자가 아닌 파동으로 간주해야 이해가 쉽다.
당대의 물리학자들이 빛의 입자설에 고개를 갸웃한 이유는 더 있다. 정말로 빛이 크기가 있는 입자라면, 당신의 얼굴에서 반사해 내 눈으로 진행하는 빛의 입자는 거꾸로 내 얼굴에서 반사해 당신의 눈으로 향하는 빛의 입자와 도중에 부딪쳐 방향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빛이 정말로 크기를 가진 입자라면 우리 둘은 서로를 동시에 또렷이 마주 볼 수 없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소리가 입자의 운동이라면 어떤 일이 생길까? 내 입에서 떠난 소리의 입자가 당신의 입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소리의 입자와 만나면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가 줄어, 동시에 말하는 둘은 서로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게 된다. 소리가 입자의 운동이라면, “밥 먹었니? 오버” “응, 먹었어. 오버”처럼, 한 번에 한 사람만 말할 수 있는 무전기처럼 대화가 이어질 수밖에. 둘이 마주보고 소곤소곤 대화를 연이어 나눌 때 물리학의 파동을 떠올릴 일이다. 소리와 빛은 이처럼 파동으로 존재해, 각각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 두 파동은 두 사람 사이의 공간 어딘가에서 만나 간섭한 후 곧이어 제 갈 길을 계속 이어간다. 서로를 마주 바라보며 함께 속삭일 수 있는 이유는 빛과 소리가 파동이기 때문이다. 정겨운 시선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만남은 각자의 삶에 흔적을 남기지만, 둘의 경이로운 만남은 만남을 쉬이 잊는 파동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물리학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도 간섭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수 있다. 내 생각과 다른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의 목소리도 결국 물리학의 파동임을 떠올릴 일이다. 쇠귀에 경 읽듯, 투명 매질을 통과하는 빛처럼, 흔적 없이 마음을 스쳐지나갈 수도 있지만, 당신의 간곡한 부탁에 내 마음의 결을 맞추면 안 될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막는 간섭도, 돕는 간섭도 있다. 어떤 간섭은 막기도 한다. 끔찍한 재난으로 결 맞아 함께 슬픈 모두의 마음을 돌아보며, 재난을 미리 막을 수 있었던 간섭의 부재에 분노한다. 결 맞은 마음 모아 더 커진 목소리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함께 힘을 모으자.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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