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노인일자리 너머 노인참여소득

기자 2022. 11. 1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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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복지분야 예산안에서 노인일자리 사업을 두고 논란이다. 이 사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공익활동형(공공형)이 올해 61만개에서 내년 55만개로 6만개 줄기 때문이다. 정부는 베이비붐 세대의 다양한 욕구에 맞추어서 공공형을 축소하고 대신 시장형과 사회서비스형에서 일부 늘렸다고 설명하나 벌써부터 동네 노인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공공형에 참여하는 노인들의 평균연령이 77세로 높고 일의 내용도 다른 유형과 구별되는데 정부가 전혀 현실을 모른다고 탄식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현재도 공공형 일자리에 대한 노인의 수요는 높다. 올해 공공형에서 대기하는 노인 수만 거의 10만명이다. 아마도 선정되지 않을 거라 생각하여 지원하지 않은 단념 노인까지 합치면 실제 대기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올해 전체 노인일자리 참여 희망 노인 대비 실제 노인일자리 수를 가리키는 수요충족률이 41.8%에 그친다. 노인일자리를 바라는 노인 10명 중 6명은 기회를 못 얻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전체 노인일자리가 두 배 가까이 늘었건만 수요충족률이 그대로라는 건 갈수록 수요가 많아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앞으로 노인 수가 매년 50만명 안팎으로 느는 점까지 감안하면 노인일자리는 모든 유형에서 확대해 가야 한다.

그런데 종종 공공형에 대해서는 비판의 시선이 있어 왔다. 대표적 사업인 거리·공원 환경개선 사업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은 단순 일자리인데도 예산을 쓰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공공형을 축소하면서 “공익적 가치가 보다 높은 사업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개편”하겠다는 설명도 이러한 연장선에 서 있다.

정말 그럴까? 보건복지부에 의하면 공공형 노인일자리는 “노인이 자기만족과 성취감 향상 및 지역사회 공익증진을 위해 참여하는 봉사활동”이다. 보통 우리가 생업을 벌이는 노동시장 일자리가 전혀 아니다. 노인일자리가 고용률에 계산되어 일자리 성과로 홍보되다보니 기존 잣대를 적용하려는 관성이 작동하는데, 이는 이름만 ‘일자리’일 뿐 한 달 30시간 참여하여 27만원을 받는 지역사회 활동이다.

현행 공공형 사업에서 핵심어를 뽑으라면 참여, 공익, 자기만족, 그리고 소득지원이다. 시장에서 경쟁하며 수익을 내는 ‘경성 일자리’가 아니라 서로 협동하며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연성 일자리’, 더 정확히는 ‘참여 활동’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노인일자리 참여자들은 대기자와 비교하여 우울 수준, 주관적 건강상태가 양호하고 사회적 관계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 매월 소득지원뿐만 아니라 사회적 효과도 상당한 노인 활동이다.

이번 공공형 축소 논란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 사실 지금까지 일자리 창출, 복지 증진 등 노인일자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혼란스러웠다. 양적으로 빠르게 늘지만 이 사업의 의미를 명확하게 정립하려는 논의는 더뎠다. 급기야 많은 대기자와 낮은 수요충족률에서 보듯이 노인들은 공공형 일자리를 더욱 원하지만 오히려 정부는 수를 줄이려는 거꾸로 상황에 이르렀다. 여러 비판에 직면하자 정부는 예산안 국회 심사에서 수정하겠다며 상황을 절충하려 하지만, 올해 85만개의 대규모 사업에 걸맞게, 이제 노인일자리는 기존 인식에서 벗어나 전면 재정립되어야 한다.

더 이상 노인일자리라고 부르지 말자. 이 사업의 핵심은 ‘일자리’가 아니라 ‘지역사회 참여’이다. 2024년에 노인 1000만명 시대에 들어간다. 노동시장에서 일하는 기회도 넓혀야겠지만,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이 공동체에 참여하는 역할체계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이웃 돌봄, 환경 개선, 동네 관리, 경륜 전수 등 ‘기여’ 활동뿐만 아니라 노년학습, 문화·체육동아리, 텃밭 도시농업 등 ‘자기계발·관계망’ 활동까지 포괄할 수 있다. 이러면 현행 노인일자리는 지역공동체를 만들고 자존감과 성취감을 얻는 ‘노인참여소득’이다. 단, 운영체계는 행정이 주관하는 ‘위로부터’가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들이 기획하고 평가하는 ‘아래로부터’ 틀로 전환해 가야 한다. 근래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사회적 경제, 사는 곳에서 돌봄을 받는 지역사회통합돌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도시재생, 자문기구에서 실행기구로 강화된 주민자치회 등 지역주체들이 커가고 있다. 이들이 혁신적으로 동네 맞춤형 노인참여소득을 책임지도록 하자.

최근 국회도 노인일자리 사업 체계화를 위해 법률 제정을 논의하고 있다. 아직 법적 기반조차 미약한 노인일자리 사업을 뒷받침하려는 법제화인데, 이왕 법을 만들 거면 일자리 개념을 넘어서 ‘노인참여소득법’으로 추진하기 바란다. 우리는 곧 초고령사회로 들어가고, 서로 돌보고 의지하는 지역공동체는 더욱 절실하다. 노인참여소득으로 이 둘을 잇자.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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