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60] 원조 책마을 헤이 온 와이(Hay-on-Wye)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방의 경계에 위치한 ‘헤이 온 와이(Hay-on Wye)’는 인구 1500명의 작은 시골이다. 쇠락해가던 이곳에 변화가 생긴 건 1962년, 옥스퍼드대학교 출신인 리처드 부스(Richard Booth)가 첫 서점을 열면서부터다. 이후 수십 개의 서점이 차례로 개점하면서 ‘책마을’이라는 장르를 탄생시켰고, 올해 환갑을 맞이했다.
인구 60명당 서점이 하나 있다는 이 마을에서 매년 백만권 이상 책이 판매되고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이 마을이 동기가 되어 유럽의 여러 나라와 호주, 미국, 한국의 헤이리 등 세계적으로 50여 개의 책마을이 만들어졌다. 책을 주제로 1988년부터 매년 5월에 열리는 ‘헤이 페스티벌’에는 스티븐 호킹, 빌 클린턴이 참여해 연설한 적도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하지만 모든 책은 헤이 온 와이로 통한다”는 표현처럼 마을에는 영화 서적, 시집, 추리소설, 아동 서적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서점들과 중고 서점, 희귀본 서점들이 있다. 유명한 펭귄출판사의 책만 따로 분류해 놓은 서점도 있다. 서점들의 내부에는 셰익스피어를 비롯하여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스, 버지니아 울프, 애거사 크리스티에 이르기까지 영국이 자랑하는 작가들의 책이 끝도 없이 진열되어 있다.
창가에 전시된 셜록 홈스와 해리 포터 책을 구경하다가 상점 문을 열면 은은하게 풍기는 책 향기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방문객 대부분은 책방을 둘러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다른 곳에서 찾지 못했던 책을 구입하는 데 성공한다. 성(城)의 지하와 거리 곳곳에 무인 책 판매대들도 설치되어 있다. 독서와 함께할 수 있는 찻집, 맛있는 과자가게 등도 있다.
방문객들이 많다 보니 앤티크 상점, 레스토랑과 숙소도 생겼지만, 주인공은 역시 책이다. 책은 보통 ‘스토리’지만, 이렇게 책으로 꾸며진 풍경이 하나의 마법처럼 작용하는 걸 보는 것도 신선하다. 어디서 인증 사진을 찍어도 책이 등장해서 지적인 배경을 만들어 준다. 그야말로 책의 ‘식스 센스’를 느낄 수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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