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수십대가 밟고 가, 시신도 못 봤다”... 오봉역 사고 유족의 호소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소속 30대 직원이 작업 중 기관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현장을 방문한 유족 측이 “사전 예방을 했더라면 참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9일 코레일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8시30분쯤 경기도 의왕시 오봉역에서 2인 1조로 화물열차 연결·분리 작업을 하던 코레일 소속 직원 A(33)씨가 기관차에 치여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8일 자신을 A씨의 여동생이라고 밝힌 네티즌 B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현장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이번 사고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글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현장직이 아닌 사무영업직으로 채용됐다. 하지만 입사 뒤 수송 관련 직무로 발령 났고, 당초 채용됐던 직렬과는 거리가 먼 현장직에 투입됐다. B씨는 “남자라는 이유로 채용된 직렬과 상관없이 현장직으로 투입된 부당한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사고 다음 날 사고 현장을 가게 됐다. 철길 옆은 울창한 담쟁이 덩굴이 뒤덮인 철조망으로 인해 사고가 나도 도망칠 공간도 없었다”며 “CCTV는 보이지도, 설치돼 있지도 않았고 밤에는 불빛조차 환하지 않아 어렴풋이 보이는 시야 속에서 일해야 했다. 유일한 소통 수단인 무전기 또한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전 예방을 했더라면 오빠가 이런 참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B씨는 인력 부족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그 많은 열차를 단 2명이, 그것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직원들이 맡았다고 들었다”며 “숙련자들은 하나같이 일이 힘들다며 빠져나가기 급급했고 (코레일 측은) 어린 신입사원들만 (현장에) 집어넣기 바빴다”고 했다. 또 “오빠는 부족한 인력과 열악한 시설 속에서 일하느라 힘들어 간수치가 나빠진 지 오래였다”며 “매일 크고 높은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올라 발목 염증은 나을 새도 없었다. 열차가 지나가면서 튀긴 자갈들로 인해 여기저기에는 시퍼런 멍이 들었다”고 했다.
사고 당일은 A씨 생일을 얼마 앞둔 날이었다고 한다. B씨는 “‘낳느라 고생한 우리 엄마 선물 사서 부산 온다’며 신나게 통화했던 오빠가 전화 끊은 지 3시간도 안 돼서 싸늘한 주검이 됐다”며 “부모님과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받은 전화 한 통은 지옥이었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 무거운 열차 수십대가 저희 오빠를 밟고 지나갔다고 한다. 시신 상태가 안 좋아 얼굴도 볼 수 없다더라”며 “(코레일 측은) 아직도 조사만 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빈방에서 빈소 아닌 빈소만 지키고 있다”고 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이날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고용노동부와 철도특별사법경찰대가 아직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어 관련 내용을 명확히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긴급 안전조치와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의 명복과 유가족께 조의를 표하며 장례 등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B씨가 제기한 부당 발령 의혹에 대해서는 “사무영업직 내에 A씨가 하던 수송 업무도 같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 회사에서는 역무 업무와 홍보 업무, 수송 업무 모두 사무영업직으로 분류된다”고 했다. 이어 “신입사원을 뽑을 때 현장직을 따로 뽑는 게 아니다”라며 “신입사원들에게도 입사할 때 이 점을 모두 설명한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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