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이 와인을 여는 날이 특별한 날입니다 [김기정의 와인 이야기]
마일스가 가장 아끼는 와인은 샤토 슈발 블랑(Chatueau Cheval Blanc) 1962년 빈티지입니다. “특별한 날 특별한 와인을 여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와인을 여는 날이 특별한 날이다.” 영화 속 대사입니다. 특별한 날이라고 슈발 블랑을 따는 게 아니고 슈발 블랑을 따는 날이 특별한 날인 겁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아끼고 아끼던 슈발 블랑을 패스트푸드 점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땁니다.
저도 샤토 슈발 블랑을 마셔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초 뉴욕 브루클린에서 열린 보르도 ‘우안’ 와인 시음회에 참석해 1988년 빈티지를 영접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와인은 지롱드 강을 경계로 왼쪽을 좌안(Left Bank), 오른쪽을 우안(Right Bank)이라고 부릅니다. 보르도 좌안 와인은 5대 샤토라 불리는 ‘라투르, 라피트, 무통 로칠드, 마고, 오브리옹’이 유명합니다.
보르도 ‘우안’은 사실 한국 소비자들에는 ‘좌안’에 비해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하지만 보르도 우안이 보르도 좌안보다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평가하는 와인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고재윤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회장(경희대 고황명예교수)은 “보르도 지롱드 강의 우안은 석회질, 진흙, 점토질 토양, 지중해성 기후가 어우러지는 세계적인 와인 산지로 부드러우면서 풀바디한 와인을 맛볼수 있는 보르도의 보석”이라고 말했습니다.
보르도 우안지역인 생떼밀리옹 와인학교에서 공부를 한 이민우 비노테크 대표는 “보르도 좌안의 와이너리들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목화농장 처럼 대규모인 반면 우안의 와이너리들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자영농이 많다”면서 “보르도 우안 와인들이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보르도 좌안에 ‘5대 샤토’라 불리는 특A급 와인이 있다면 보르도 우안에는 지난 10년간 4개 와인이 최고 등급으로 군림했습니다. 지난 2012년 생떼밀리옹 프리미에 그랑크뤼 클라세 A등급(Saint Emilion 1st Grand Cru Classe)을 받은 와인들 입니다. 샤토 오존, 샤토 슈발 블랑, 샤토 파비, 샤토 앤젤뤼스가 주인공입니다. 이날 시음회에선 샤토 슈발 블랑 1988, 샤토 오존 1982, 샤토 파비 1988, 샤토 피작 1986 등 12종류의 보르도 우안 와인을 마셨습니다
보르도 좌안과 우안의 차이는 우선 포도 품종에서 나타납니다. 보르도 좌안 와인들은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로 사용합니다. 반면 우안 와인들은 메를로를 주로 사용합니다.
이권휴 와인나라 대표는 “전 세계 최고급 와인 생산 지역으로 유명한 보르도 우안은 메를로의 우아하고 복합적인 풍미가 주는 즐거움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평가합니다.
또 다른 차이는 ‘등급’ 체계입니다. 보르도 좌안 등급은 1855년 만들어진 이후 큰 변화 없이 지켜지고 있습니다. A급 와인이던 샤토 무통 로칠드가 특A급으로 진출한 게 큰 이변이라면 이변이었습니다. 반면 보르도 우안은 10년 마다 등급심사를 해서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지난 2012년 샤토 파비와 샤토 앤젤뤼스가 생떼밀리옹 최고 등급에 합류합니다. 그 전까지는 샤토 오존과 샤토 슈발 블랑만 클라세 A등급을 받았습니다. 또 10년이 흘러 올해 등급 심사가 이뤄졌습니다. 기존 클라세 A와인 중 샤토 파비만 자리를 지켰고 샤토 피작이 새롭게 클라세 A등급으로 승급됐습니다. 샤토 오존, 샤토 슈발 블랑, 샤토 앤젤뤼스는 심사방법에 문제를 제기하며 참가를 거부했습니다. 샤토 피작은 2012년 평가에서 클라세 등급에서 일반 그랑크뤼 등급으로 떨어지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심사에서 클라세 A등급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셈입니다.
샤토 슈발 블랑은 명품업체 LVMH의 소유입니다. 지난 1998년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샤토 슈발 블랑을 인수했고 와인이야기 1회에 나왔던 샤토 디켐과 함께 LVMH의 자회사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LVMH는 루이비통, 모엣&샹동, 헤네시의 약자입니다.
이야기가 곁길로 빠졌습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봅니다.
주인공 마일스는 ‘피노 누아’ 예찬론자입니다. 피노 누아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끊임없이 보살펴 줘야 하고 인내와 애정을 쏟아야 한다. 또 시간과 공을 들여 돌봐줘야 그 맛과 오묘한 향을 느끼게 해준다”고 답합니다.
반면 마일스는 ‘메를로’를 싫어합니다. “나는 메를로는 마시지 않을 거야!”라고 외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가 아주 특별한 순간에 마시려고 아껴둔 샤토 슈발 블랑은 메를로를 사용해 만든 와인입니다. 마일스는 피노 누아 품종을 사랑했던 만큼 피노 누아로 만드는 부르고뉴 와인을 소장했을 법합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와인은 그가 싫어했던 ‘메를로’로 만든 슈발 블랑이 등장했습니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사이드웨이(Sideways)는 ‘곁길’이란 의미입니다. 한국어로는 의미가 잘 안 와닿는데 ‘삼천포로 빠졌다’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정해진 길이 아닌 곁길로 빠질 때가 있습니다. 영화 사이드웨이를 보며 와인 한 잔 마시고 싶은 날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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