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실망한 미국인들 ‘양원분점’ 균형 선택[미국 중간선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는 의회 권력의 든든한 후원을 받기 어렵게 됐다. 고물가로 악화된 경제 상황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불만이 하원의원 선거에서 여당 심판으로 나타났다. 다만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 지위를 지켜낼 가능성이 있어 의회 권력의 균형은 유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CNN방송·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이 집계한 개표 결과를 보면 9일 오전 5시(동부시간) 현재 공화당은 하원에서 197석을 확보했으며, 최종적으로 219~224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됐다. 총 435석 중 과반인 218석을 넘게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172석을 확보했으며, 모두 개표되더라도 218석 문턱은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공화당의 하원 승리는 선거 전부터 예상됐던 바다. 미국 유권자들이 전통적으로 중간선거에서 중시했던 경제 문제가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 크게 불리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은 미국이 겪고 있는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바이든 대통령의 ‘실정’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높아진 범죄율과 불법 이민 문제 등 바이든 정부의 ‘아킬레스건’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는데 이 같은 전술이 먹힌 셈이다.
CNN·NBC·ABC방송 의뢰로 에디슨리서치가 실시한 출구조사를 보면 유권자 32%가 투표에 영향을 미친 최대 이슈로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임신중단(27%), 범죄·총기 정책(각각 12%), 이민문제(10%)가 뒤를 이었다. 특히 10명 중 7명 이상이 현재 미국의 방향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국정운영에 강한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하원 개표 결과를 보면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물가 폭등, 범죄, 불법 이민 등 민생 이슈 대처 능력에서 유권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현직 대통령의 무덤’이라는 역대 중간선거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참패’로만 못 박을 순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투표일 직전까지도 여론조사업체 및 전문가들은 공화당이 하원에서 최소 두 자릿수 의석 이상으로 민주당을 이길 것으로 내다봤다. 뚜껑을 열어보니 민주당은 일부 경합 선거구에서 기존 공화당 몫을 가져옴으로써 패배의 충격을 상쇄했다. 민주당은 하원에서 지긴 했지만 공화당이 압승하는 ‘레드 웨이브’를 차단하면서 나름 선전했다는 데 의미를 둘 것으로 보인다.
상원도 공화당 차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현재의 양분 구도가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요 언론들은 9일 새벽 현재 상원에서 양당이 확보한 의석을 ‘48 대 48’로 보고 있다. 승자가 확정되지 않은 지역의 개표 흐름을 보면 민주당이 수성에 성공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기존에 공화당 몫이었던 최대 격전지 펜실베이니아에서 존 페터먼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고, 다른 경합주 애리조나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앞서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민주당이 애리조나에서 승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했다.
관건은 막판까지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네바다주와 조지아주다. 두 곳에서 어느 당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이번 선거의 최종 승패가 갈리게 된다. 특히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조지아주는 다음달 6일 결선투표를 통해 최종 승자를 가릴 가능성이 커졌다.
결국 미국 유권자들은 하원과 상원 권력을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에게 나줘 줌으로써 절묘한 균형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된다. 공화당이 들고 나온 경제 이슈 못지 않게 임신중단 권리나 민주주의 위협에 대한 유권자들의 경각심이 크다는 방증으로도 보인다. 통상 민주당원이 많이 참여하는 사전투표 인원이 역대 최다인 약 4500만명을 기록한 점은 민주당이 지지층 결집에 일정하게 성공했다는 방증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민주당은 지난해 ‘1·6 의사당 폭동’ 사태 이후 첫 맞이한 전국 단위 선거에서 ‘민주주의 위기론’에 호소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전날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한 ‘마가’(MAGA·트럼프 대선 슬로건) 공화당원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 연방대법원의 지난 6월 판결로 폐기된 임신중단 권리를 재확립하기 위해서도 민주당이 의회 권력을 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하원 1인자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9일 아침 발표한 성명에서 “아직 개표가 진행 중인 여러 지역에서 승부가 팽팽하지만 민주당 하원 의원들과 후보들이 전국적으로 예상을 능가하는 강력한 결과를 거둔 것은 명확하다”고 말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선거 결과가 예상보다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 공화당 중진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확실히 공화당 물결은 아니다. 이건 아주 명확하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공화당이 하원뿐 아니라 상원도 과반수를 차지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진지하게 대우해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공화당이 차지했던 메릴랜드, 매사추세츠를 포함해 21곳, 공화당은 23곳을 확보했다. 민주당은 28년 만에 공화당에 내줄 수 있단 위기감이 고조된 뉴욕 주지사 자리를 지켜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직접 지원 유세를 벌인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당내 영향력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공화당 잠룡으로 분류되는 론 드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20%포인트 차로 상대 후보를 제치며 재선에 성공했다. 플로리다가 대선 본선 승패를 좌우해왔다는 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경쟁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https://www.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211092142005
https://www.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211091525001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윤 대통령 골프 라운딩 논란…“트럼프 외교 준비” 대 “그 시간에 공부를”
- 한동훈 “이재명 당선무효형으로 434억원 내도 민주당 공중분해 안돼”
- “그는 사실상 대통령이 아니다” 1인 시국선언한 장학사…교육청은 “법률 위반 검토”
- 또 아파트 지하주차장 ‘벤츠 전기차 화재’에…주민 수십명 대피
- [단독]“일로 와!” 이주노동자 사적 체포한 극우단체···결국 재판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