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동·성평등 외면한 교육과정 개정, 이런 퇴행은 없었다
교육부가 9일 학교 교육의 방향을 결정하는 ‘2022 초·중등 교육과정’을 7년 만에 개정해 행정예고했다.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도입에 맞춰 진로와 적성에 따른 학생들의 과목선택권을 확대하고, 정보교육 시수를 늘려 디지털 격차를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그 내용에서 ‘노동자’와 ‘성평등’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다. 보수 편향에 퇴행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개정안에서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 성취기준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정’으로 바뀌었다. 중학교 역사과목 성취기준에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명시됐다. ‘민주주의’가 인민민주주의를 뜻할 수 있어 ‘자유’를 추가해야 한다는 보수진영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정치적 중립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시민들의 반대는 물론 “민주주의와 관련된 다양한 보편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는 연구진의 뜻까지 무시한 것으로, 의견 수렴 과정 자체도 반민주적이다.
사회과에서는 ‘노동자’라는 용어가 모두 ‘근로자’로 변경됐다.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노동자라는 말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그 인식과 의도가 한심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대신 ‘기업의 자유’를 강조한 것도 마찬가지다. 교육목표에서 노동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은 사라졌는데, 재계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성평등’이라는 용어는 ‘성에 대한 편견’으로 바뀌면서 후퇴했다. ‘사회적 소수자’의 예시로서 ‘성소수자’ 역시 연구진의 동의 없이 삭제됐다. 교육부는 “청소년기에 성 정체성을 혼란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며 기독교 일각의 주장을 수용했음을 인정했다. 다양성 인정이라는 보편적 가치는 실종됐다.
이 교육과정은 12월 말 최종안이 확정·고시되면 2024년 초등학교 1·2학년부터 적용된다. 이명박 정부는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를 밀어붙였다가 시민들의 반발 속에 역사를 퇴행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는 그 전철을 되밟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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