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 가상자산 거래소도 '유동성 위기'에 당했다
(지디넷코리아=김윤희 기자)FTX가 며칠 만에 투자자 대거 이탈을 넘어 경쟁사인 바이낸스에 매각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글로벌 금융을 덮친 유동성 위기가 가상자산 업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9일 업계에 따르면 FTX는 글로벌 거래량 1위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에 매각을 추진한다. FTX와 자회사 알라메다리서치 간 재정적 밀접성을 토대로 유동성 위기 가능성이 불거지고, 이번 매각 추진까지 이어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FTX, 매각까지 무슨 일 있었나
지난 6일 창펑 자오 CEO는 바이낸스가 보유한 FTX토큰(FTT) 전량을 매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회사가 보유한 FTX 지분을 정리하면서 21억 달러 규모 바이낸스USD(BUSD)와 FTT를 받았는데, 이를 처분한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를 통해 FTX 자매회사 알라메다리서치의 대차대조표가 알려짐에 따라 이런 결정을 했다.
코인데스크는 알라메다리서치의 자산 146억 달러 중 58억 달러 가량이 FTT로 구성돼 있을 정도로 FTX에 대한 의존도가 강한 점, 이 중 상당량이 담보로 활용된 점, 부채가 74억 달러에 달할 만큼 재정 상황이 위태로운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런 구조에선 FTT 시세 폭락이 나타날 경우 알라메다리서치와 FTX가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FTT를 담보로 대출을 제공한 기관들로 피해가 번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지적을 의식한 투자자들이 자금을 인출하면서 FTT 시세는 급락하기 시작했다. FTX와 알라메다리서치는 문제가 불거진 초기엔 유동성 위기에 문제가 없다고 대응했으나, 25 달러 내외를 오가던 FTT 시세는 9일 현재 4.6 달러 수준으로 내려 앉았다.
그러던 와중 9일 오전 자오 CEO는 FTX가 심각한 유동성 부족에 직면해 도움을 요청했다며, 이를 해결하고자 인수의향서(LOI)를 체결했다고 트위터를 통해 발표했다.
자오 CEO는 이번 사태의 교훈으로 "발행한 토큰을 담보로 활용하지 말고, 가상자산 비즈니스를 한다면 대출과 '효율적' 자본 사용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거액의 준비금을 확보하라"는 것을 꼽았다.
■유동성에 날아간 신뢰…레고랜드, 흥국생명 이번엔 'FTX'
FTX가 단 며칠만에 매각을 결정하게 된 것에는 글로벌 유동성 위기가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선언,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 여부 번복 등 유동성 위기로 인한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이다. 금융 시장이 유동성 위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면서, FTT '뱅크런'도 급속히 나타나게 됐다.
정지열 프로비트 자금세탁방지(AML) 담당 이사는 "정상적인 경제 상황에선 레버리지로 이익을 더 추구하는 것에 문제가 따르지 않지만, 전세계적으로 경제가 악화되고 유동성이 긴축되는 상황이 도래하면서 시장 불안이 심화돼 나타난 결과"라며 "FTX의 적극적인 대응이 이뤄졌으면 시장 신뢰를 재건할 수 있었겠지만 취약한 재무 구조 때문에 그러지 못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 이사는 "금융은 신뢰가 무너지면 큰 타격을 입게 된다"며 "설령 재무제표, 계약서 측면에서 문제가 없더라도 시장에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조심해야 하는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이미선 빗썸경제연구소 센터장은 "FTT 가격이 급락하면서 FTT 담보로 대출을 제공한 기관들은 담보 가치가 하락하면서 손실을 떠안게 됐다"며 "이렇게 손실을 본 기관들이 또 자산을 매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봤다.
■국내 거래소는 해당 無…코인 시장 침체는 피하기 어려워
FTT 폭락이 테라-루나처럼 국내 가상자산 업계에도 큰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옵션, 선물 등 파생 상품 판매가 허용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선 센터장은 "개정 특정금융정보법이 도입되면서 거래소가 자체 토큰을 상장 및 발행할 수 없게 되고, 파생 상품을 판매하지도 않기 때문에 FTX와 유사한 이슈가 발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정건전성을 증명하려는 노력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 센터장은 "가상자산사업자들이 제3자한테 회계 감사를 받고, 그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는 등 신뢰를 쌓기 위한 노력을 더 많이 공표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에선 관련 규제를 위한 명분도 더 강력히 생긴 셈"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순위권 거래소에서 발행하는 가상자산조차도 시세가 폭락할 수 있다는 사례가 나옴에 따라,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는 당분간 냉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낸스가 FTX를 무사히 인수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글로벌 순위권인 거래소 간 합병인 만큼, 각국 경쟁 당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도 충분하다. 미국 사업장은 이번 인수합병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각국 당국이 바이낸스의 FTX 인수를 승인하지 않는다 해도 유효한 제재 수단이 마땅치 않다"며 "그 동안의 사업 과정에서도 각국 당국이 문제 행위를 제대로 규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윤희 기자(kyh@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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