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Mania] 최순우 옛집…작은 한옥, 그 안의 한국미
성북동은 참 매력적인 곳이다. 한성대역에서 성북동주민센터 방면으로 발길을 돌리면 많은 역사적 자취를 만날 수 있다. 한용운의 심우장, 이태준의 수연산방, 이승만의 돈암장, 간송미술관, 그리고 길상사이다. 그중에서도 정갈한 한옥에 유독 마음이 간다. 이 집은 1930년 근대 한옥이다. 집은 혜곡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거처했다.
집은 우선 돌계단 정문이 객을 맞는다. 들어서면 초록빛 정원, 우물 그리고 향나무와 수국이 핀 작은 물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집은 ‘ㄱ’자 모양의 바깥채, ‘ㄴ’자 모양의 안채가 서로 맞물린 ‘ㅁ’자 모양이다. 집은 안채, 사랑방, 안방, 건넌방 구조이고 사랑방은 선생의 집필공간이다. 사랑방에는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 문을 걸어 잠그니 바로 이곳이 산중 깊은 곳’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랑방 문에는 ‘오수당午睡堂, 낮잠 자는 방’이라는 현판은 평소 낮잠을 좋아했다고 말하는 선생이 김홍도의 화첩에서 따왔다. 이 집의 진짜 매력은 뒤뜰이다. 비밀정원 같은 뜰에는 온갖 나무들이 어우러진 한 폭의 정원이다. 게다가 청죽은 묘하게 단풍나무, 감나무, 소나무, 산갈나무 등과 특히 옹기와 잘 어울린다. 선생은 평소 이 뒤뜰에 하얀 달항아리를 놓고 감상을 하셨다고 한다.
건넌방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매심사梅心舍, 매화의 마음을 가진 방’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쪽마루, 무심히 앉아 마침 비라도 내리시면 그 운치는 더할 나위 없다. 매심사 아래 쪽마루에는 최순우 선생의 저서 중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가 놓여 있다. 이 책은 우리 문화와 예술품을 사랑했던 선생의 마음이 담겨 있는 역저이다.
최순우 선생은 1916년 개성에서 태어나 개성박물관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고유섭 관장의 권유로 한국미술사를 공부했다. 해방 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무했고 1974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에 취임했다. 원래 선생의 본명은 희순, 순우는 다른 이명이며 필명이다. 호는 혜곡인데 간송 선생께서 지어주셨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는 1994년 선생의 생전글을 모은 책으로 당시 5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중심으로 자연 그대로일 때 가장 한국적이고 아름답다는 선생의 예술지론이 담겨 있다. 선생은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서서히 해가 떨어지고 날이 저무는 소백산의 정취에 흠뻑 빠졌고 또한 조상들의 자연과 조화되는 예술적 안목에 탄복하셨다. 특히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문,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는 글은 더 이상의 수사를 필요 없는 명문이다. 선생은 한국 미술이 자연에 순종하며 어울려 살아간 우리의 지혜가 묻어 있다고 말한다. 이런 선생의 우리 미술과 문화에 대한 사랑이 집약된 곳이 최순우 옛집이다. 그 안에서 작은 배흘림 기둥, 숲과 돌과 흙이 어우러지고 나무가 생명을 내리고 인간은 그저 문을 열고 그 자연의 일부가 되어 같이하는 공간이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문화재청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53호 (22.11.0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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