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보호법과 코다

한겨레 2022. 11. 9.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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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지난달 25일 일본 도쿄에서 옛 우생보호법 문제의 전면 해결을 목표로 하는 전국 집회에 참가한 피해자와 지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영화사 고래 제공

[숨&결] 이길보라 | 영화감독·작가

“결혼하기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남편 직장에 아버지가 와서는 사장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갑자기 병원에 끌려갔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어 건강검진일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곧바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의사는 물론이고 아버지, 회사 사장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아이를 좋아해서 어서 임신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해서도 아이가 생기지 않더군요. 이상했습니다. 남편이 종종 사타구니 부근을 긁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제야 남편은 불임수술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길로 집을 나왔습니다. 이혼할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아이 둘을 낳아 기르고 싶었거든요. 친정어머니는 본인 의지로 수술을 받은 것이 아니라며 불쌍하고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니 그냥 살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찾아와서 사과하더군요. 고민 끝에 다시 집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은 죽을 때까지 말하지 못할,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결혼한 지 51년이 지난 2018년이었습니다. 신문을 읽고 있었는데요, 일본 미야기현에서 우생보호법에 의해 강제 불임수술을 받았던 여성이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때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수술이 무엇이었는지, 남편은 왜 수술을 받아야 했는지, 우리는 왜 아이를 가지지 못했는지에 대해서요.”

1942년에 태어난 농인 아사쿠라 노리코(가명·80)의 말이다. 아사쿠라 부부는 “본인 또는 배우자가 유전성 정신질환, 유전성 신체질환 또는 유전성 기형을 가진 경우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우생수술 혹은 임신중절 수술을 할 수 있다”라는 법에 따라 재생산의 권리를 빼앗겼다. 1948년 제정돼 1996년에 폐지된 일본 우생보호법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일본은 전후 식민지에서 귀환한 이들과 베이비붐에 따른 출생아 급증 등으로 극심한 식량난과 주택난에 부딪혔다. 이에 “급속한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해 선천성 유전병자의 출생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근거한 우생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좋은’ 일본인을 양성한다는 우생 사상에 기반해 오랫동안 존속해왔던 법의 피해자들이 전국적으로 들고일어났다. 후쿠오카현도 마찬가지였다. 농인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우생보호법에 관해 수어로 설명해줬다. 그제야 둘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했던 이들이 전국적으로 아주 많다는 걸 알게 됐다.

2019년 12월24일 아사쿠라 부부는 후쿠오카지방법원에 옛 우생보호법에 의한 강제 불임수술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진행하던 2021년 5월 남편이 병으로 숨졌고 현재 아사쿠라 노리코는 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판사는 피해 사실을 알았음에도 바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아사쿠라는 “농인은 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인의 말을 따르라고만 견디라고만 배웠다”며 “국가를 상대로 재판하는 일이 장애인인 주제에 너무 건방진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고 말한다.

옛 우생보호법이 시행된 48년 동안 2만5000여명이 불임수술을 받았다. 전일본농아연맹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농인 피해자 170명이 존재한다. 전국 9개 법원에서 피해자 25명이 소송을 진행 중이며 이 중 11명이 농인이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볼 때마다 부러웠다고 손으로 말하고 입으로 데프 보이스를 내는 아사쿠라 노리코를 본다. 일본 수어와 한국 수어가 비슷한 까닭에 어느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다. 꼭 나의 농인 부모 같다는 기시감이 든다. 나의 부모에게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청인 자녀로 태어난 내게 사람들은 들리는 세상과 들리지 않는 세상을 연결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생보호법 아래 나는 태어나면 안 될 존재가 되고 농인 부모는 아이를 가질 권리를 박탈당한다. 도래했고 도래하지 않았을 시공간에서 아사쿠라 노리코를 카메라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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