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가리려는 말, 망인을 모욕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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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참사로 인해 고인이 되신 분들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참사 이후 행정'안전'부 장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무책임한 말들과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경찰청장의 대응은 현수막에 적힌 저 문구와 이렇게 조응한다.
행정과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 관료들이 수많은 상황과 복잡한 맥락을 무시해서 벌어진 사건이고 결과는 156명이 압사당하는 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책임을 가리려는 저 말은 결국 이번 참사로 망인이 되신 분들을 모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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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왜냐면] 이세주 | 서울 광성고 국어교사
먼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참사로 인해 고인이 되신 분들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지난달 29일 토요일 밤, 이태원 거리에 수많은 시민이 모였다. 3년 만에 마스크 없이 벌어지는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비좁은 골목길에서 많은 사람이 압사돼 현재까지 156명이 숨졌다. 이 거대한 참사를 추모하는 문구가 대로변에 나란히 붙었다.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는 동일하다. ‘이태원 참사’와 ‘핼러윈 사고’가 대조를 이룬다. ‘이태원’과 ‘핼러윈’이 맞서고 ‘참사’와 ‘사고’가 부딪히는 모양새다. 나는 이 문구를 내건 정당의 이름은 가리고, 맞서고 있는 두 말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태원’은 행정구역이다. 용산구에 속해 있고 서울시에 위치하며 대한민국이 관할하는 지역이다. 행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예컨대 용산구청장, 서울시장,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 구역을 안전하게 관리할 의무가 있다. 이 지역에 있는 시민들의 생명을 보호할 책무가 있다. 이는 헌법과 법률로 부여된 임무다. 그 일을 올바르고 정확하게, 최선을 다해서 하라고 시민들이 투표해서 뽑아 줬다. 위험한 상황을 예방하고 위험한 사태가 발생하면 모든 공권력과 행정력을 총동원해 시민의 안전을 지키라고 막강한 권력을 안겨줬다.
이번 참사는 행정과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자기 책임을 방기해 벌어졌다. 그들은 이를 은폐하기 위해 ‘이태원’을 가리고 ‘핼러윈’을 내세운다. 행사 주체가 없는 핼러윈 파티에 자발적으로 걸어 나온 시민들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의도다. 참사 이후 행정‘안전’부 장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무책임한 말들과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경찰청장의 대응은 현수막에 적힌 저 문구와 이렇게 조응한다.
사고는 영어로 ‘accident’, 이 단어에는 ‘우연’이란 뜻도 있다. 어떤 의도도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연히 일어난 일이 바로 사고다. 상황이나 맥락과 무관하게, 우연히 벌어진 일이 바로 사고다. 외국 언론과 인터뷰하는 국무총리의 뒤편에는 ‘incident’라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사전을 찾아보니 “(특히 특이하거나 불쾌한) 일”이다. “(범죄·사고 등의) 사건”이다. 하지만 이태원에서 일어난 일은 절대로 사고가 될 수 없다. 행정과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 관료들이 수많은 상황과 복잡한 맥락을 무시해서 벌어진 사건이고 결과는 156명이 압사당하는 참사로 이어지고 말았다. 외국 언론은 이번 일을 ‘disaster’로 보도한다. 재앙에 가까운 참사라는 말이다.
책임을 가리려는 저 말은 결국 이번 참사로 망인이 되신 분들을 모욕한다. 정치의 언어가 편향되고 정치인의 언사가 졸렬한 걸 내 모르지 않았으나, 저 현수막이 보여주는 정치의 뻔뻔함에 분노가 치민다. 성찰하지 않는 뻔뻔한 권력의 최후를 우리 국민은 모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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