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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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이태원에서 사람이 깔려 죽었댄다. 너 다시는 그런데 가지 마라."
사고 당일인 29일 나도 잠시 머물렀던 그 공간에서 믿을 수 없는 숫자의 사람이 죽었다는 게 곱씹을수록 참담하다.
조금만 더 늦게 빠져나왔다면 그 156이라는 숫자 중 하나를 채우는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과 아침이 돼도 돌아오지 않는 내 또래 아이들을 기다렸을 부모님들이 떠오른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PTSD)의 위험이 정말 클 것 같아 매우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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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왜냐면] 양서영 | 중앙대 간호학과 1학년
“어제 이태원에서 사람이 깔려 죽었댄다. 너 다시는 그런데 가지 마라.”
지난달 30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엄마한테 들은 말이다. 그땐 얼떨떨해서 대충 대꾸하고 끝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적으로 힘들어졌다. 타인의 죽음이 피부로 느껴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156명. 사고 당일인 29일 나도 잠시 머물렀던 그 공간에서 믿을 수 없는 숫자의 사람이 죽었다는 게 곱씹을수록 참담하다. 조금만 더 늦게 빠져나왔다면 그 156이라는 숫자 중 하나를 채우는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과 아침이 돼도 돌아오지 않는 내 또래 아이들을 기다렸을 부모님들이 떠오른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목격담, 사망자들을 욕하거나 추모하는 글, 응급실 마비 소식, 지인들을 찾아 초조하게 연락하는 사람들…. 금방 빠져나와 당시 현장을 보지 못한 나 또한 정신적으로 타격이 컸다. 이태원 사망 사건 생각이 기저에 깔려 종일 멍하게 우울하고, 글을 쓰며 되뇌는 지금은 꼭 울음이 나올 것 같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PTSD)의 위험이 정말 클 것 같아 매우 걱정된다.
인터넷에는 ‘그러게 그런 데는 왜 갔냐’는 식의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이는 피해자들을 무시하는 사고가 깔린 말이라고 생각한다. 청춘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 어딘가로 놀러 간 것은 비난받을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었고, 그 죽음은 ‘죽어도 싸다’라는 말이 얹어질 만한 것이 아니다.
사전 대처가 아쉬웠다. 내가 있었던 저녁 7시쯤에는 경찰이 배치되거나 인파가 통제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에야 인터넷 기사를 보고 경찰이 200명 투입됐었다는 것을 알았다. 10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도 했었다는데, 인력을 보강하고 통제 가이드라인을 확실하게 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슬픈 나날들이다. 한없이 안타깝고 속상하다. 사건 당일 개인 에스엔에스(SNS)에 이태원에 왔다는 게시물을 올렸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아침부터 ‘너는 괜찮냐?’고 물어보는 연락이 가득했다. 만약 내가 잘못됐다면 친구들과 부모님은 얼마나 마음앓이를 했을까 하는 생각에 미안함이 몰려왔다. 이태원 인명사고 사망자와 부상자들을 진심으로 추모하는 마음으로, 정부의 후속 대처와 이 사고를 계기로 만들어질 안전가이드라인에 끝까지 관심을 가져야겠다.
전공이 간호학이다 보니 현장에서 CPR(심폐소생술)을 진행하셨을 구조대원분들, 간호사분들 생각도 많이 났다. 내가 현장에 간호사로 있었다면 패닉에 빠지지 않고 인명구조를 진행할 수 있었을까. 최선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했어도 살리지 못한 사람이 있었을 텐데, 구조대원과 간호사, 의사 등 의료진들의 충격과 정신건강이 걱정된다. 새벽엔 심정지 환자를 받느라 병원이 마비됐다고 한다. 심폐소생술은 교대로 진행하는 거라 의료진이 많이 필요하다 보니 인력 부족으로 다른 응급환자들을 받지 못한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바쁠 의료진분들에게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보내고,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나중에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때는 나도 한명의 간호사로서 최선을 다해 뛰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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