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노인과 바다와 작은 배
이광수 | 어부
나는 서울 태생이지만 일찌감치 도시 생활을 정리한 뒤 산 좋고 바다 좋은 강원도 고성에 홀로 자리를 잡았다. 산불 감시인, 관광해설사, 지역 대학 기숙사 사감 등 여러 일을 했고 현재는 예전부터 꿈꿔왔던 선장이 돼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초보 어부로는 다소 늦은 65세에 고성의 작은 항구인 교암항에 닻을 내린 것이다.
소형 어선의 선장이 되려면 해기사 시험에 합격한 뒤 60일 이상 실제 승선하고 해경에서 출항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어느덧 3년이 지나 요즘은 바람과 구름을 보고 날씨의 변화를 얼추 짐작할 수 있지만 평생 고기를 잡았던 선배 어부들에게는 여전히 핀잔을 들으며 배워가는 처지다.
처음에는 날마다 펼쳐질 동해의 일출, 수면 위로 쏟아지는 햇살과 미풍 속에 바다를 자유로이 떠다니는 그림을 기대하며 2.99톤짜리 작은 어선을 샀다. 공교롭게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말이었는데 찬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어오며 파도가 거칠어지고 예고 없이 큰바람이 터지기도 해 경험 많은 어부들도 긴장하는 시기다. 거친 파도 속에서 엔진 고장으로 다른 어선에 예인되고, 배 스크루가 정치망 그물에 걸리는 등 생각지 못했던 고생을 하며 겨울을 났다. 봄에는 몇m 앞도 분간할 수 없는 해무에 고립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너무 늦게 무작정 도전한 게 아닐까 고민하면서도 좋은 날이 더 많았기에 매일 씩씩하게 바다로 나갔고 그렇게 점점 어부가 돼갔다.
어선으로 고기를 잡으려면 분야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내 배는 그물의 한 종류인 자망과 낚시를 할 수 있는 연승까지 복합면허가 있다. 숙련이 필요한 그물은 초보에게 위험해서 처음에는 낚시로 대구잡이에 도전했다. 항구에서 20여분 나가면 수심이 90~150m 사이인 대구를 잡는 포인트가 나온다. 300g 정도 나가는 인조미끼인 메탈 지그를 내려서 아래위로 고패질하다 보면 무엇인가 턱하고 무게가 느껴진다. 미끼를 내릴 때 무는 경우가 많다. 동트기 직전 출항해 너덧시간 조업하고 귀항한다.
큰 걱정거리 중 하나는 해마다 늘어나는 불가사리다. 기후위기 때문인데, 해마다 조업일수가 줄고 물고기들 서식 상태도 혼란스럽다. 물이 너무 탁해져 어부들끼리는 똥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높아진 수온 탓에 바다생태계가 변해 고기가 사라지니 어부들은 걱정이 많다. 성게도 8월 중순까지는 산란해야 하는데 올해는 10월에도 알을 몸속에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다들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바다를 되살릴지 몰라 답답할 뿐이다.
고기들도 환경 좋고 먹이가 풍부한 곳을 좋아한다. 육지에 산과 계곡이 있듯 바닷속에도 봉우리와 계곡이 있는데 계곡을 따라 흐르는 해류가 해조류를 키워 물고기들을 모은다. 바다 밑 평지는 대부분 모래밭으로 광어나 가자미가 서식하기 좋다.
암초나 바위계곡 등 물고기가 많은 어장은 어부들끼리 자리다툼을 하기 마련이다. 넓은 바다지만 한정된 좋은 포인트를 차지하기 위해 어부들은 이른 새벽부터 출항에 바쁘다. 낚시뿐 아니라 그물도 마찬가지여서 그물 줄이 서로 엉키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그물 줄을 끊는 일도 있어 가끔 무전을 통해 욕이 넘나든다. 그렇게 싸우던 사이라도 기상특보가 내려지면 서로를 챙겨 항구로 돌아와 함께 바다 걱정을 한다.
겨울에는 도루묵과 도치가 흔한데 몇년 새 들쭉날쭉하다가 올해는 그마저 힘들 것 같다고 어부들 걱정이 많다. 사시사철 잡히던 가자미도 줄었고 참가자미는 귀한 생선이 된 지 오래다. 그러다 보니 고기나는 데 인심 난다고, 목 좋은 포인트 잡기는 전쟁에 가깝고 레저용 배낚시도 늘어나 어민들과 자리다툼이 일어난다. 돈벌이가 좋아 레저낚시 쪽으로 뱃머리를 돌리는 어민도 늘어나는 형편이다.
배는 많고 고기는 줄어드니 바다를 보고 사는 이들에겐 걱정과 불만이 많다. 눈앞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깊은 고민도 함께하면 좋겠다. 욕심이 분수를 넘으면 갈등이 시작된다. 갈등이 변화를 부르기도 하지만, 사람 사는 세상만큼은 더불어 사는 지혜가 발현돼 약육강식의 세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거칠게 급변하는 자연환경에 순응해 살기도 벅찬데 가까운 이웃만큼은 서로가 힘이 돼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은밀했던 자연의 변화가 피부로 와 닿을 만큼 극단적이 됐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들의 탐욕과 이기심이 생명의 근원인 바다까지 망가뜨렸고 그로 인해 불행한 변화가 해일처럼 다가오고 있다. 선장이 되기 전에는 동해를 보며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늦게 시작한 만큼 앞으로 길지 않을 어부 생활, 아침마다 행복하게 바다로 나가고 싶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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