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개저씨들의 사과와 휘게대한민국!

김은형 2022. 11. 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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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왼쪽은 윤희근 경찰청장.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은형 | 문화부 선임기자

얼마 전 아동 관련 주제로 스웨덴 출장을 갔다가 만난 교수, 공무원들에게 여기 아이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이런 건 안가르치느냐고 했더니 되레 내게 반문했다. “그런 걸 왜 가르치나요?” 인간관계에서는 타인을 괴롭히지 말아라, 남에게 못되게 굴지 말아라, 딱 두가지만 가르치고 어른과의 관계도 그 범주에 포함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윗사람, 아랫사람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것이다.

현지 한국인이 쓴 글에는 아이들과 함께 북유럽에 이민 간 부모들이 그렇게 마음고생을 한다고 적혀있었다. 북유럽 교육을 받으며 아이의 ‘버르장머리’가 흔적기관으로도 남지 않는다는, 끔찍한 이야기였다. 그렇다. 끔찍하다. 아니, 북유럽은 뭔가 살기 좋고, 복지도 잘돼 있고, 편안함, 안락함을 뜻하는 ‘휘게’가 넘치는 곳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른 대접 안하는 사회라니, 꼰대들의 복지, ‘개저씨’들의 휘게는 어디 존재한다는 말인가.

지난번 글에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느니 혀를 깨문다는 ‘개저씨’의 비장미”를 썼는데 어째 예고편이 돼버렸다. 최근 이태원 참사 이후 벌어진 개저씨들의 휘게 퍼레이드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살기좋은 한국사회, 개저씨들의 천국에 대해.

개저씨 ㄱ(`명예 남성'이 있듯 `명예 개저씨'도 있다)은 참사 직후 이런 말을 했다. “영혼 없는 사과보다 블라블라블라”. 결정권자 중에서는 그나마 실무에 가까워서인지 그의 언어는 구체적이다. 사과에 대한 개저씨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영혼 없는’과 ‘사과’는 붙어있는 한 단어다. 사과는 애초에 영혼이 없는 것이다. 사과는 어차피 거짓말이다. 사과하면 지는 거잖아. 내가 제일 높은데 어떻게 내가 질 수 있어. 내가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고개를 숙여. 고개를 숙이는 건 아랫사람이 윗사람한테 하는 거지. 그 머릿속이 너무 투명해서 내 얼굴이 빨개진다.

사실 사과하면 지는 거라고, 어릴 때부터 나도 참 많이 들어왔다. 지금까지도 이 금언을 실천하고 있는 건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을 때다. 사과하면 내 과실을 인정하는 거고 내가 손해 본다는 주입식 교육의 승리다. 이럴 거면 보험사는 왜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물론 찐개저씨들은 이런 상황에서 한술 더 떠 “이 아줌마가~” 높은 데시벨로 상대방의 사과를 끌어내려 한다. 어림없지, 이 사람들아. 한국에서는 사과하면 지는 거라고 내가 오십년을 배우고 익혀 왔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해야 하는 상황이 될 때, 개저씨들은 갑자기 중2병 청소년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개저씨 ㄴ이 참사의 원인을 묻고 답하는 자리에서 영어로 던진 농담 같은 게 그 예다. 내가 영어도 잘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인데 이렇게 분위기 살벌할 때 쿨하게 농담 한번 날려 내 수준을 보여줘야지라고 떠올렸을, 그 마음은 알겠다. 남들 앞에서는 누가 묻지도 않은 앞으로의 학습계획에 관해 막 얘기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포켓몬 카드 안사주면 밥도 안먹겠다고 떼쓰는 우리집 청소년도 그러니까 이해한다. 하지만 애한테는 니 마음 알어, 하지만 지금 그 마음 아냐~, 이렇게 말해줄 수나 있지, 환갑 넘어 중2병에는 증상 완화제도 없다. 사과해야 하는 상황에서 중2병의 자기애가 깊어지면 개 앞에 사과 사진을 놓고 찍는 초2 수준으로까지도 내려갈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개저씨들이 사과를 절대 안하느냐, 그건 아니다. 막을 수 있는 사고가 아니었다고 옆동네 불구경하듯이 이야기했던 개저씨 ㄷ도 사과했다. 그렇다. 윗사람한테 작살나면 사과한다. 야, 이거 자꾸 시끄러워지는데 어떡할거야. 도대체 어떻게 일처리를 했는데 이렇게 시끄러워져. 내가 나가서 사과하리? 너 잘리고 싶냐? 이런 말을 들으면 개저씨들도 진심으로 사과한다. 잘리면 안되니까. 윗사람한테 밉보이면 안되니까. 때로는 목이 메이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사과한다. 심려를 끼쳐 죄송한 윗사람한테.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 개저씨의 사과를 아직 듣지 못했다. 유감, 슬픔, 위로 등 동원 가능한 모든 단어를 쓰면서 사과만 피하는 어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려고 분투하고 있다. 엄하게 지극정성스러운 이 노력을 보니 정말로 사과하느니 혀를 깨물겠다는 각오일지도 모르겠다.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던 체 게바라가 역할모델인 걸까? 더불어 그가 투철한 책임감을 가동하기 시작하면서 잘못은 ‘아랫것들’에게 떠넘기는 유구한 대한민국 개저씨 매뉴얼이 다시 한번 공식화되고 있다. 헬북유럽, 신나는 휘게대한민국이다.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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