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인생은 마라톤, 자랑스런 꼴찌가 되자

박영서 2022. 11. 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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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아리랑' '개똥벌레' '꼴찌를 위하여' 등을 만든 한돌(본명 이흥건)의 수필집이다.

'개똥벌레'는 영세공장의 형광등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껌벅거리는 것을 보고 쓴 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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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늦지 않았어 한돌 지음 / 열림원 펴냄

'홀로아리랑' '개똥벌레' '꼴찌를 위하여' 등을 만든 한돌(본명 이흥건)의 수필집이다. 한돌은 '작은 돌멩이 하나'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 이름이다. 저자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고통받았던 학창시절, 청년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그런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노래들의 탄생 비화도 들려준다. 노래를 함부로 대했던 과거를 반성하는 등 스스로의 성찰도 담았다.

햇살 소리를 들었던 강원도 봄내(春川)에서의 유년기, 초등학교 3학년때 전국 스케이트 대회에서 일등으로 달리다가 넘어져 여덟 명 중 꼴찌를 했지만 "잘했어, 넌 꼴찌를 한 게 아니라 팔등을 한 거야"라고 격려해주셨던 선생님, 부모님이 서울역 앞 양동에서 식당을 했을 때 만났던 '박꽃' 같았던 창녀 누나, 경복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떨어지고 방황했던 시기, 부정과 폭력이 판쳤던 신병 훈련소 생활, 군 휴가 기간 중 극장에 갔다가 그 곳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있던 아가씨를 구해낸 이야기, 분단민족의 슬픔을 노래말로 만들기위해 백두산·한라산 등을 올랐던 일, 독도에 가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고기잡이배에 탄 일화 등이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저자의 삶은 우울하고 희망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으나 그 밑 바탕에는 꿈이 흐르고 있었다. 그 세월 속에서 사회성과 일상 속 메시지를 잘 버무린 우리말 가사와 서정적인 운율을 건져내어 대중에게서 사랑받는 많은 노래를 만들어 냈다. '개똥벌레'는 영세공장의 형광등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껌벅거리는 것을 보고 쓴 곡이었다. 공장 근로자들은 껌벅거리는 형광등 아래서 열심히 일하는 개똥벌레였고, 자신은 외로움 타령만 하는 '귀족' 개똥벌레였던 것을 깨닫고 만든 노래였다. '꼴찌를 위하여'는 "팔등도 괜찮다"는 선생님에게 바치는 곡이었다.

저자는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시작하지 않은 사람이고,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미 시작한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늦지 않았다면서 '천천히'도 괜찮다는 이 책으로부터 독자들은 충분한 위로를 받을 것 같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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