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의 트렌드 인사이트] 제초작업의 비밀병기, 염소들

2022. 11. 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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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권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일본의 도쿄도(東京都) 서쪽 위성도시인 조후시(調布市)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2800년 전 조몬(繩文)시대 말기의 유적 '시모후다(下布田) 유적'이 있다. 약 1만2000㎡의 매우 넓은 장소이지만, 그 크기 때문에 부지 내에 무성하게 퍼져 있는 잡초 베는 일이 가장 고된 큰일이다. 그런 가운데 지난 10월 한정적 기간으로 초식동물인 염소를 대여받아 제초 작업을 시키는 이른바 '시대 착오적' 테스트가 시행돼 화제다.

시모후다 유적이 있는 지역은 옛부터 풀과 나무가 워낙 많다. 봄부터 가을까지 무성해진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을 지자체 직원들이 직접 진행하기에는 업무적으로나 육체적으로도 부담이 큰 탓에 전문회사에 위탁해 왔었다. 이번에 대표적 초식동물의 하나인 염소들을 제초 요원으로 '임시 채용'하게 된 것이다.

다소 생소하지만 얼핏 들여다보면 여러가지 면에서 이해가 되는 프로젝트다. 우선 염소는 제초기와는 달리 시끄러운 소음도 전혀 일어나지 않고 기름 한 방울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적 '특수 장비'라는 측면에서 담당 직원들이 눈독을 들여왔다. 전국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문업체를 직접 찾아서 진행했다고 한다.

시모후다 유적 주변 주민들은 이전부터 "풀들이 집안에 들어온다", "꽃가루가 심하게 날아드는 바람에 화분증(꽃가루 알러지)에 시달린다" 등의 민원을 쏟아내 왔다. 그래서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 주요 업무인데, 그 양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였다. 때문에 제초 전문업체에 의뢰해 왔으나 기계 가동에 의한 연료 소비, 깎은 풀을 태우면서 배출되는 CO2, 그리고 제초기 소음 등 여러가지 부작용이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체중 50㎏급의 염소들은 한 마리당 하루에 중량 5㎏, 면적 기준 15.6㎡의 풀을 '묵묵히' 먹어 치우지만 CO2나 소음은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비용 면에서도 같은 면적당 기계로 제초 업체에 부탁하면 100만엔(약 950만원) 이상 지출됐으나, 염소를 임시로 대여받아 시행되는 제초 작업의 경비는 약 30만엔(약 285만원)으로 3분의 1로 절감됐다.

이 독특한 염소 파견업을 실행하고 있는 곳은 '알파 그린'이라는 유한회사다. 원래 산의 표면 등 급경사지에 도로를 만들 때 산을 녹색으로 만들고 유지시켜 주는 작업이 주요 업무다. 녹색 산을 정기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급경사지에서의 제초 작업은 사람이 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작업이기도 하다. 산업 전반적으로 대기 환경보호를 위한 이산화탄소 절감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경사면 작업에 최적인 염소에게 제초작업을 맡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마침내 염소 제초가 시작됐다. 앞서 소나 말 등 여러 종류의 동물을 검토했으나 염소가 원래 산악지대 등에 서식하는 동물이니 위험한 경사지에서도 무리 없이 잡초제거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해 투입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요코하마의 지역기업인 '알파 그린'은 도쿄도와 전국 여섯 곳의 현에 아파트 단지내 녹지, 대학, 병원, 공장을 대상으로 염소 대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공장 내부와 같이 외부인들에게 유출되면 안 되는 장소 같은 곳에서의 제초 작업은 사람을 투입하는 것과 비교해 염소는 기밀 누설 걱정이 전혀 없다는 점도 강점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그런 요구가 종종 있다고 한다. 다만 염소를 대여할 때의 주의점이라고 한다면 염소는 무리로 생활하는 동물이라 2마리 이상 대여받게 되어 있는데 실제로 한 마리만 있을 때는 식욕도 꽤 줄어든다.

이번에 실험에 참여한 시모후다 지역 주민들의 부정적인 불만은 전혀 없다. 오히려 지역의 어린이와 가족들이 염소들을 지켜보며 정서적으로 치유가 됐다고 하는 호의적인 반응이 많다. 풀이 무성했던 시기에 비해 불법 투기나 플라스틱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경우도 상당수 감소했다. 이에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염소 돌보기를 직접 하면서 앞으로도 계속합시다"라는 서명 운동까지 펼치고 있다. 지구 환경보호를 위해 거대담론을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해결책은 멀리 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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