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유동성이 끌어올린 자산 버블 정상화 과정··· 금리 더 올려야”

한기석 논설위원 2022. 11. 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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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기 한국국제경제학회장(한남대 경제학과 교수)
美 수준만큼 기준금리 올리지 않으면 더 많은 비용 들어
경기 침체 막겠다고 섣부른 재정 지출 확대 시도는 금물
가치공유 국가라도 국익 같지 않아···산업정책 새로 짜야
잠재성장률 제고 위해 모방형 대신 창조적 인재 육성을
한국국제경제학회장인 김홍기 한남대 교수가 9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해외 자본 유출을 방지하려면 우리나라의 기준금리를 최소한 미국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권욱 기자
[서울경제]

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다. 10월 소비자물가는 5.7% 올라 상승률이 3개월 만에 다시 커졌다. 한국국제경제학회장인 김홍기 한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9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지금보다 훨씬 더 빨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며 “기준금리를 최소한 미국 수준만큼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리가 오를수록 1900조 원에 달하는 가계 부채의 연착륙은 어려워진다. 그는 “가계 부채의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물가를 잡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많은 사람들이 요즘 경제가 위기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외환 위기와 금융 위기 등 크게 두 번의 경제 위기를 겪었다. 당시와 비교해 지금의 경제 상황은 어떤가.

△외환 위기 때는 기업의 과잉 투자 탓에 기업은 물론 금융기관도 부실해졌다. 그로 인해 국내에 들어와 있던 해외 자본이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외환에 문제가 생겼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많은 기업들이 망하고 엄청난 실업이 발생했다. 금융 위기는 미국 금융기관들이 주택담보대출 자산을 기초로 발행한 파생금융 상품들이 부동산 버블 붕괴로 부실해지면서 발생했다. 이 상품에 투자한 전 세계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파산하면서 금융 시스템이 붕괴된 것이다.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때에 비하면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다.

-지금의 경제를 진단한다면 어떤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

△코로나19 위기에서 대대적으로 풀린 유동성이 자산 시장의 버블을 초래했다. 이 버블이 꺼지고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성장률이나 고용 사정 등을 고려할 때 실물이 심각하게 나쁜 상태는 아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로 인한 문제는 있다.

-버블의 정상화라면 지금의 어려움은 거쳐야 할 과정인가.

△코로나19 국면에서 정부와 통화 당국은 취약 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고 통화량을 증가시켰다. 그 결과 자산 가격이 폭등했고 그에 따른 과실은 자산을 가진 사람들에게 돌아갔다. 이를 되돌려놓는 과정이 필요하다. 경제는 급히 변할수록 충격이 크다. 속도를 조절하는 능력이 그래서 중요하다. 지금이 정책 당국과 중앙은행이 실력을 보여줄 때다.

-정부는 그동안 물가가 조만간 안정을 찾을 것처럼 얘기했지만 현실을 보면 잡힐 듯하던 물가가 다시 오르고 있다. 물가가 이렇게 크게 오르는 이유는 뭔가.

△코로나19로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고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겹치며 공급 측면에서 문제가 생겼다. 돈이 많이 풀려 수요가 늘어난 탓도 있다. 특히 지난해 이후 억압된 수요가 폭발했다. 물가가 오른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문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물가는 이미 지난해부터 올랐다. 이때 미국에서는 물가 상승이 일시적인지 여부를 놓고 논쟁이 있었는데 연준은 일시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금리를 올리지 않았는데 이는 엄청난 판단 미스였다. 결국 뒤늦게 금리를 급격히 인상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한 강달러가 수입 가격을 올려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고물가를 겪고 있다.

-연준이 최근 4연속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 금리 인상)’을 밟았다. 추가 기준금리 인상도 예고했다. 미국 기준금리가 얼마나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가.

△잘은 모르지만 최소한 기대 인플레이션이 진정될 때까지는 금리를 올릴 것이다. 과거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은 기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지금보다 훨씬 더 급격하게 올렸다. 그는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준이 자이언트스텝보다 더 큰 스텝을 밟은 적이 있었나.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는 지금보다 물가가 훨씬 더 많이 올랐다. 연준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렸고 그 영향으로 고용 등 거시 지표에 문제가 생겼다. 연준은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금리를 더 이상 올리지 않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줬다. 그러자 시장은 물가가 더 인상될 것으로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기대 인플레이션이 더 높아졌다. 볼커 전 의장은 취임 이후 한 번에 금리를 4%포인트 이상 올릴 정도로 극약 처방을 내렸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기대 인플레이션이 잡혔고 이후 굉장히 오랜 기간 물가가 안정됐다. 제롬 파월 의장도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 인플레이션이 커질수록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논리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물가 상승의 가장 큰 이유는 공급이 줄어든 데 있다. 공급을 늘려야 물가가 잡힐텐데 반대로 수요를 축소하는 금리 인상으로 대처하는 것이 맞는 처방인가.

△당장 공급을 늘리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금리 인상으로 수요를 낮춰 공급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라도 물가를 잡아야 장기적인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한은도 그렇게 해야 하는가.

△우리나라는 미국과 비교할 때 ‘컨트리리스크’를 비롯해 여러 가지 리스크가 있다. 당연히 우리 금리가 미국보다 높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금리가 미국보다 낮다. 이대로 가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해외 자본이 빠져나갈 것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한은은 기준금리를 최소한 미국 수준에는 맞춰놓아야 한다. 금리 인상 속도를 지금보다 훨씬 더 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가계 부채는 1900조 원에 이른다.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해도 가계 부채 폭탄이 터지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나.

△당연히 가계 부채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이 있는데 전환에 필요한 자격 조건이 까다롭다. 정부는 이런 제도를 손질하는 것을 포함해 가계 부채 연착륙을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금리 인상으로 인한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고물가와 고환율·고금리까지도 우리 손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우리가 세계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금리만 놓고 봐도 외국은 금리를 올리는데 우리만 내리면 큰 일이 생길 것이다. 우리보다 큰 나라인 영국도 최근 섣부른 감세를 추진했다가 시장이 요동친 것을 유념해야 한다. 영국은 감세를 하겠다면서 지출을 줄이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뭔가를 하겠다고 섣불리 달려들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 가령 경제가 좋지 않다고 해서 재정 지출을 늘리려는 시도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재정 정책은 어떻게 펴야 하나.

△재정 정책은 통화정책과 달리 대상을 선택할 수 있다. 지금 통화정책은 엄청난 긴축 기조여서 취약 계층이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재정 정책은 이들을 보살피는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통화정책과 재정 정책의 콤비네이션이 중요하다.

-가계 부채만큼 문제가 많은 기업 부채 대책도 중요할 텐데.

△정부가 코로나19 상황에서 기업들에 대출해준 자금의 원리금 상환을 계속 유예하고 있다. 그대로 두면 결국 문제가 커진다. 내년에는 대출을 회수해야 한다. 그때가 오기 전 한계 기업들에 대한 구조 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한계 기업 구조 조정 얘기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있었다. 구조 조정이 지연될수록 성장성 있는 신생 기업의 탄생이 늦춰진다. 정상 기업들의 피해도 커진다. 한계 기업 구조 조정과 더불어 산업 정책을 다시 세워야 한다.

-어떤 산업 정책이 필요한가.

△오랜 기간 세계는 비용이 싼 곳에서 물품을 생산하고 이를 수입해 쓰는 산업 구조를 만들어왔다. 그러다가 미중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위주로 뭉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미국의 ‘반도체와 과학법’ ‘인플레이션감축법’ 등에서 보듯이 이제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사이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치를 공유한다고 해서 이해와 이득이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달라진 환경에 맞는 새로운 산업 정책을 국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

-산업 정책을 세울 때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도 연구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수출의 25%를 중국이 받아준다. 최근 수출 증가세가 둔화하고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경기 침체다. 분명히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의존을 줄이는 데 따른 전환 비용을 염두에 둬야 한다. 중소기업은 전환 비용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10년 이상 관계를 유지하며 확보해놓은 판매망을 갑자기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부는 이런 부분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지원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의존을 낮춰야 하는 국가가 꼭 중국만은 아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소재·부품·장비 업계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모든 분야에서 특정 국가에 의존할 때 생기는 위험을 인식하고 그런 품목을 국가 차원에서 모니터링하고 관리해야 한다.

-2% 수준까지 떨어진 잠재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일부 학자들은 잠재성장률이 이미 0%에 가까워졌다고 얘기한다.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존의 모방형 인재 대신 창조적 인재를 양성해 초격차 기술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인재 양성은 기대할 수 없다. 14년간 대학 등록금을 동결한 채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교육은 공짜로 되는 것이 아니다.

◆He is···

1960년 충북 현도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남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한국국제경제학회장을 맡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자체평가위원장, 규제개혁심의 위원장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장, 재정정책자문위원회 위원,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 한국개발정책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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