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로 ‘기본’부터 다시 돌아봐야 하는 정부[윤석열 정부 6개월]

유정인 기자 2022. 11. 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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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의 정부 책임론 속에 10일 취임 6개월을 맞는다. 5년 임기 중 10분의 1에 해당하지만 국정 동력이 집중된 첫 6개월임을 고려하면 의미는 그 이상이다. 이 기간 정부는 ‘글로벌 복합위기’를 내세워 경제·안보 위기 돌파를 강조했다. 가시적 성과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각 분야 위기 신호는 심화했고, 국정 운영 동력은 내부발 위기로 종종 훼손됐다.

뚜렷한 국정 어젠다를 각인하지 못한 상황에서 156명이 사망한 참사로 정부의 기본 책무부터 돌아봐야 할 상황이 됐다. ‘복합 위기’ 속에 물리적 안전을 넘어 사회 전반의 안전을 강화하는 전환의 리더십을 보여줄지가 정부 성패를 결정할 잣대로 부상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 정부인가”…빈 공간으로 남은 결정적 6개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돌출 무대로 나와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취임 후 첫 6개월은 전체 정부 5년을 결정지을 시간으로 여겨진다. 각종 위기를 전임 정부와 외부 요인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시점을 맞는 때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의 도드라진 문제로는 지난 6개월간 정부의 지향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점이 꼽힌다. 대선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거칠 당시부터 지적된 ‘어젠다 부재’ 상황이 정부 출범 뒤에도 반복됐다.

이를 두고 정치력의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 입법을 통해 제도적 변화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국회 ‘협치의 공간’은 협소해지는 분위기다. 야당 대표들과 대통령의 만남은 6개월간 열리지 못했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본격화 등과 맞물려 파행으로 진행됐다. 당분간 협치의 길이 열리기 어려울 거란 전망이 많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결국 정부가 하고자 하는 것을 실현하려면 국회를 통해야 하는데 협치를 위해 그동안 필요한 일들을 해 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여소야대 상황이 전환되길 바라며 마냥 기다릴 수 없지 않은가”라며 “가장 중요한 취임 첫 6개월간 이룬 게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9일 기자들과 만나 “물론 부족한 점도 많고, 아쉬운 부분을 저희가 다 충족시켜 드리지 못했던 6개월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지만, 앞으로 남은 4년6개월은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고,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드리고, 대외적으로도 국가와 국민을 보위할 수 있는 윤석열 정부의 비전과 정치적인 지향점을 보여드릴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참사가 드러낸 민낯, ‘기본’ 무너진 정부

윤 대통령은 그간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국가의 제1 책무로 강조했다. 대선 후보 당시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첫째 임무이기 때문에 국가를 끌고 가는 사람은 밤잠 안 자고 이걸 고민해야 된다”(지난 2월17일)고 말했다. 지난 10월21일 경찰의날 기념사에선 “국민의 안전은 우리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자유’의 기본 바탕”이라고 했다.

취임 6개월 직전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는 윤석열 정부가 국정의 기본을 이행했는지 되묻고 있다. 사전 대비는 없었고, 대응은 늦었다.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이어졌던 112 신고, 뒤엉킨 보고체계 등 부실대응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가의 부재’가 참사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코로나19 이후 첫 ‘노 마스크’ 핼러윈이었지만 ‘위드 코로나’ 정부로서의 선제적 대응은 이뤄지지 못했다.

수습 과정은 성찰과 반성이 아닌 논쟁의 영역이 됐다. 정부 부실대응 인정에 기반한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시기, 정부 실패에 따른 인적 책임 범위 등을 두고 참사 이후의 혼란상이 계속되는 중이다. 윤 대통령은 ‘선 진상규명, 후 엄정처벌’ 기조를 거듭 밝혔지만 책임 축소 우려가 제기된다.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난 7일)라는 윤 대통령 발언 뒤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등은 국회에서 즉각적 사퇴에 선을 그었다. ‘엄정한 조치’의 수위가 이번 참사에 대응하는 윤석열 정부 책임성의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리적 위험을 넘어 사회 전반의 안정성을 높여나가는 큰 틀의 전환에 나서는 일도 과제로 꼽힌다.

심화한 안보·경제 위기, 불투명한 성과

지난 6개월간 대·내외적 환경은 녹록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후반부터 심화해 온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해 각종 탄도미사일 도발이 이어졌다. 9·19 군사합의를 위반해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수위는 높아졌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6개월간 남북관계 개선 신호는 없었다. 윤 대통령이 지난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밝힌 북한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은 시작부터 ‘설익은 구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7차 핵실험이 현실화하면 한·미 확장억제강화의 구체적 방안 등 윤석열 정부의 대북·안보 정책 전반이 평가대에 오르게 된다.

경제 위기의 돌파 능력도 시험대에 서 있다. 글로벌 경제 위기 속에 윤 대통령은 비상경제민생회의, 거시경제금융회의 등을 잇따라 열면서 경제 이슈를 챙기는 데 주력했다. 민간 주도의 경제를 내걸고 ‘규제 완화’의 큰 방향을 제시했다. 여론의 평가는 높지 않은 편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1~3일 전국 성인 1001명에게 취임 6개월 분야별 정책 평가를 물은 결과 경제 분야를 ‘잘하고 있다’는 답변은 21%에 그쳤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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