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감세’ 가로막히나…부자감세 허들 높다
“플랜 B는 없다” 지난 10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 세제 개편안 ‘원안 통과’를 강조하며 한 말이다. 추 부총리의 단언과 달리 상황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5년간 73조원에 이르는 감세(국회 예산정책처 추산)가 될 것으로 보이는 세제개편안은 여야가 강대강으로 맞서면서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첫 경제 정책의 핵심인 감세가 무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도 무리한 감세안을 냈다가 총리 바뀌는 등 큰 정치적 혼란을 맞았다.
민주당 “법인세 인하, 받을 수 없고 협의 여지 없어”
9일 국회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법인세법 개편안은 여야간 간극이 가장 큰 법안이다. 개정안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로 낮추고, 과세표준 구간을 4단계에서 2~3단계로 단순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2020년 기준 전체 83만여 법인 가운데 과세표준 3000억원을 넘어 25%의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기업은 84곳에 불과하다. 삼성, 현대차, SK 등 대기업이 2조5000억원에 이르는 혜택을 볼 것을 추정된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은 신동근 민주당 의원은 “법인세(최고세율)인하는 받을 수 없고 협의 여지도 없다”고 말했다.
가업을 후계자가 승계하는 기업에 세금을 감면해 주는 가업상속공제도 확대도 야당은 반대하고 있다. 지금은 중소기업(매출액 4000억원 미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앞으로는 중견기업(매출액 1조원 미만)도 세제혜택을 준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빙그레 등 규모가 큰 중견기업들도 가업상속대상이 될 수 있다. 공제한도도 2배 가량 확대해 준다.
민주당은 가업상속공제의 새로운 대상이 되는 신규 중견기업수는 313개로 전체 중견기업의 6.3%에 불과하다며 ‘부자감세’라는 입장이다. 또 개편안이 통과되면 지역인재 장기정착을 위한 업종유지 조항이 폐지돼 업종변경과 직원해고가 가능해진다. 고용유지 조항도 전면 삭제됐다.
국회 기재위 여당 간사인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가업승계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중산·서민층을 위한 투자·일자리 확대를 위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금투세 유예 없이 그대로 간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유예를 놓고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금투세는 주식을 비롯한 금융상품 투자로 얻은 수익이 연간 5000만원을 넘으면 수익의 20%(3억원 초과분은 25%)를 세금으로 부과하는 제도다.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투자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연 평균 수익이 5000만원을 초과한 투자자는 1.6%(12만3575명)에 그친다.
민주당 관계자는 “금투세는 유예 없이 가기로 정했다. 금투세는 협의하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기 때문에 유예 없이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만에 하나 보완이 필요하더라도 시행을 한 뒤에 보완 입법을 하는 게 낫다는 게 당의 판단”이라고 했다.
종부세 특별공제 3억원을 도입해 1세대 1주택자의 종부세 비과세 기준을 11억 원에서 14억 원으로 올리는 ‘1세대 1주택자 특별공제 법안’은 이미 무산됐다.
올해 안에 여야가 합의를 한다고 해도 공시가 11억~14억원 주택 보유자 9만3000명에 대한 종부세 감면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향후 국회에서 합의가 이뤄질 경우 내년 환급이 가능하지만 소급 입법이라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민주당은 특별공제 도입 등 종부세 완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최저한도인 60%까지 낮춘데다 일시적 2주택, 상속주택 등에 대한 종부세를 완화한 만큼 추가 혜택은 과도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저가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율 부과에 대해서는 보완 의지를 내비쳤다.
신 의원은 “예컨대 20억원 단독주택에는 중과세를 하지 않고 5억, 6억 빌라 2개 보유자 중과를 하면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그런 경우에는 다주택자 기본 공제액을 상향하는 방식으로 단독주택과 형평성을 맞추는 보완 작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의당 “감세하기 가장 나쁜 때 감행한 74조 감세”
소득세법 개편은 야당도 ‘찬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소득세법 개편안의 핵심은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 조정이다. 2008년 이후 고정됐던 과세표준을 상향조정(1200만원→ 1400만원, 4600만원→5000만원)한다.
다만 정의당은 민주당과 달리 소득세 개편안뿐만 아니라 세제개편안 전반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복합위기 국면에서 감세를 골자로 한 세제개편안은 적합하지 않다”며 “민주당이 부자감세에 반대한다지만 국민의힘 논리에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감세안을 통과시킬까 우려된다”고 했다.
현재 세제개편안은 국회 협상 테이블에 조차 오르지 못하고 있다. 당장 세제개편안을 심의할 조세소위원회 구성도 요원한다. 민주당은 여당이 기재위원장을 맡았으니 조세소위 위원장은 야당이 역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년씩 번갈아 가며 맡자는 제안도 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여당에게 먼저 하라고 양보했지만 그 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협의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하겠지만, 정 안되면 수정안을 제출해서 통과시킬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측은 “우리가 조세소위원장이 된다고 해도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을 것 없고 결과도 달라지지 않는다”며 “다만 조세소위원장은 여당이 맡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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