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웨이브’는 없었지만…하원 내준 바이든 앞엔 ‘험로’

이본영 2022. 11. 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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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접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 상원 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존 페터먼 부지사가 9일(현지시각) 새벽 지지자들을 상대로 연설하고 있다. 피츠버그/AP 연합뉴스

8일(현지시각)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4년 만에 하원 다수당으로 올라설 것으로 유력시된다. 그러나 하원에서 기대만큼 의석수를 벌리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데다, 상원 개표 상황이 초박빙으로 전개되고 있어 공화당의 압승을 뜻하는 ‘레드 웨이브’는 무산된 모양새다.

9일 아침 7시30분 현재 <시엔엔>(CNN)이 집계한 개표 상황을 보면, 공화당은 하원 435석 중 199석, 민주당은 178석을 확보했다. 미국 언론들은 공화당이 기존 의석(민주 220석, 공화 212석, 공석 3석) 차이를 뒤집고 다수당으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차기 하원의장으로 유력시되는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개표가 진행 중인 가운데 “우리가 하원을 되찾는 게 확실하다”며 사실상 승리 선언을 했다.

하지만 공화당은 40년 만에 미국을 강타한 심각한 인플레이션 등 경제에 대한 불만을 발판으로 많게는 20~30석까지 의석수 차이를 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이던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신승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엔비시>(NBC)는 공화당은 과반 기준보다 불과 2석 많은 220석, 민주당은 215석을 얻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상원 선거 개표 추이는 더 팽팽한 양상을 띠어 다수당 확정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날 새벽 현재 총 100석 중 35석을 대상으로 치른 선거를 통해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각 48석씩 확보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민주당의 존 페터먼 후보는 대표 격전지 펜실베이니아(개표율 93%)에서 50.0%를 득표해 47.5%에 그친 공화당 후보를 누르고 기존 공화당 의석을 뺏어왔다. 다른 초접전지 조지아주에서 민주당의 래피얼 워녹 의원은 96% 개표 상황에서 49.2%를 얻어 공화당 후보를 0.5%포인트 앞섰다. 그러나 조지아주는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다음달 6일에 결선을 치러야 한다. 승부가 확정되지 않은 나머지 다른 접전지들에서 이날 새벽 개표 추이가 결과로 이어진다면 결국 조지아주 결선투표가 상원 다수당을 결정하게 된다. 조지아주는 2020년 선거에서도 결선투표로 민주당을 상원 다수당으로 만든 곳이다.

<뉴욕 타임스>는 상당히 유리한 입지를 확보한 듯하던 공화당이 예상을 밑도는 성적을 받은 것에 대해 “레드 웨이브는 없었다”고 표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등이 공화당의 상징색을 거론하며 ‘붉은 물결’을 일으키자고 했지만 결과는 그에 못 미쳤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이번 성적은 2010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첫 임기 때 공화당이 63석, 2018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임기 때 민주당이 41석을 추가하며 하원을 탈환한 것에 크게 못 미친다. 통상 중간선거에는 정권 심판론이 강하게 작동하지만 이번에는 미풍에 그친 셈이다.

선거 결과가 박빙으로 나타난 것은 공화당이 강조한 기록적 인플레이션 등 경제 이슈에 못지않게 임신중지권 문제 등에 유권자들의 경각심도 상당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방송사들의 의뢰로 에디슨리서치가 실시한 출구조사에서 응답자 32%는 투표에 영향을 미친 핵심 요인으로 인플레이션, 27%는 임신중지권 문제를 꼽았다.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판례를 폐기하고, 공화당이 이에 동조하는 등 퇴행적 모습을 보인 것이 유권자들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엿보게 하는 조사 결과다. 또 민주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결과를 부정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 후보들을 겨냥하며 “민주주의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1월 의사당 난동 때 ‘의사당을 불태우자’고 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극단적 행태가 공화당의 발목을 잡은 요인들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7명 이상이 미국이 나아가는 방향에 ‘만족하지 않는다’라고 답했고,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 역시 45%로 낮게 나타났다.

어쨌든 공화당의 하원 장악이 확정되면 행정 권력과 입법 권력의 한 축이 분리되면서 2024년 11월 대선 때까지 미국 정치는 극심한 갈등에 빠져들 것으로 예상된다.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공화당은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복지나 기후변화 등에 대한 법률과 정책을 무효화하려고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임신중지권과 총기 문제 등에서 잇따라 퇴행적 판결을 내놓은 연방대법원의 강경 보수 기조와 공화당의 이런 흐름이 상승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도 크다.

공화당 쪽은 이미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주장까지 하고 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헌터가 아버지가 부통령일 때 우크라이나 에너지기업에서 거액의 급여를 받았다는 논란에 대해 본격적으로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매카시 원내대표는 7일 <시엔엔> 인터뷰에서 “우리는 탄핵을 절대로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만약 그래야 할 경우가 생기더라도 언제나 그것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불법 월경자 단속 강화 법안을 우선 추진하고,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혼란스러운 철군 상황을 조사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원도 조사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하원을 장악하더라도 민주당과 의석수 차이가 미미할 것으로 보여 공화당의 독주가 쉽지만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정치는 이제 빠르게 대선 준비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의지를 밝힌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15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것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난 두번 대선에 출마해 모두 이겼다”며 2020년 대선을 여전히 부정선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동조하는 공화당 후보들이 의회와 주정부에 다수 진출하며 미국을 양분하는 정치적 긴장은 크게 높아지게 됐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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