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광부들 괴롭히는 PTSD “늦지 않게 약물·상담치료 필요해”…칠레 교훈 잊지 말아야

최정석 기자 2022. 11. 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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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증, 불안증 시달리는 광산사고 생존자들
PTSD 증상, 폐소공포증 유발 사례
제때 치료 못 받으면 고통 길어져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 매몰 사고로 고립됐던 광부 2명이 10일 만인 4일 오후 11시3분쯤 무사히 구조되고 있다. /뉴스1

경북 봉화군 소천면 한 아연 광산에서 발생한 갱도 붕괴 사고로 고립됐던 작업자 2명이 기적처럼 생환했다. 지난달 26일 갱도가 붕괴된 지 9일 만, 고립된 지 221시간 만이다.

지하 190m 지점에서 고립된 조장 박씨와 보조작업자 박씨는 발견 당시 작업 지점 부근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건강한 상태로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구조 당국을 전했다.

두 사람은 구조 직후 부축을 받으며 직접 걸어나왔고 건강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체적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정신적 심리적인 상처가 남았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두 작업자가 입원 중인 안동병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PTSD는 전쟁이나 큰 사고를 겪은 인간의 뇌가 극단적 긴장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생기는 병이다. PTSD 환자는 조울증을 겪어나 집중력 장애, 수면 장애를 겪는다.

정신심리 전문가들은 두 사람이 좁고 어두운 갱도 안에서 일주일 넘게 갇힌 채 신체적, 정신적으로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식량은 작업에 들어갈 때 가지고 간 물과 커피믹스가 전부였다. 두 사람은 이마저 떨어진 이후에는 갱도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마시며 버텼다고 말했다. 보조작업자 박씨는 석회질이 섞인 지하수를 마시고 구토를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북 봉화 광산 매몰 사고 10일째인 지난 4일 오후 광산구조대와 소방구조대가 고립된 광부 2명을 구조하기 위해 갱도 내부에 쌓인 암석을 제거하고 있다. /경북소방본부 제공

시간이 흐르면서 안전모에 달린 안전등 배터리도 바닥나면서 불빛도 약해졌다. 깊고 고립된 지하 공간에서 이동하는데 필요한 전등마저 쓰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면서 두 사람은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실제로 조장 박씨는 구조된 직후 인터뷰에서 “안전등이 꺼지면 완전히 암흑이라 한 발짝도 못 움직인다”며 “굉장한 두려움을 느꼈고, 같이 있던 동료에게 희망이 없어진 것 같다고 말하며 엉엉 울었다”고 말했다.

의료진에 따르면 현재 두 사람은 자다가 악몽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깨거나 경련을 일으키는 증상을 보이고 있다. 보호자 없이 혼자 있으면 불안 증세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PTSD의 전형적 증상이다.

이런 증상이 지속되면 폐소공포증까지 유발할 수 있다. 폐소공포증은 엘리베이터, 비행기, 갱도 등 밀폐된 장소나 상황에 있을 때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정신질환으로 PTSD의 대표적인 후유증 중 하나다. 좁은 공간에 갇혔을 때 느낀 공포를 뇌가 후천적으로 학습한 상태에서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똑같은 공포반응을 보이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건강을 회복해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지원과 치료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환자가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신건강과 심리치료를 멈추면 PTSD 증상이 계속 길어지면서 나중에는 아예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0년 칠레 코피아포 인근의 산호세 광산 붕괴사고로 지하 700m 갱도에 갇힌 광부 33명 중 한 명이 구출된 후 당시 칠레 대통령인 세바스티안 피녜라(중앙에서 오른쪽)와 포옹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0년 있었던 칠레 산호세 광산 붕괴 사고는 타산지석과 같은 사례로 손꼽힌다. 지하 갱도에 갇힌 광부 33명이 69일 만에 전원 생환하면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각종 방송 인터뷰는 물론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과 영화까지 나왔다.

하지만 생존 광부들은 전문적인 정신 건강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세간의 관심이 식은 뒤엔 극도의 공허함과 트라우마, 질병을 겪고 있는 것으로 외신은 전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당시 생존 광부 대부분은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사고로 얻은 트라우마에 빠져있다. 밖에 나가 일을 하기도 어려워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태에 놓여있다. 갱도에 대한 PTSD가 생기면서 다시 채굴 일을 시작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 텍사스대 의대 셰릴 비숍 교수는 “큰 사고에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이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하기 전에 지역사회와 정부가 관심과 지원을 끊어서 치료가 중단되는 사례가 많다”며 “이는 경우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사고보다 더 큰 충격과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봉화 광산 사고를 겪은 두 작업자의 경우 경우 경북 소방당국이 심리 치료를 지원하겠다 약속했다. 다만 정신과 약물만 처방받았고 심리상담가를 직접 만나지는 못한 상태다. 경북 소방당국 관계자는 “(두 광부가) 퇴원한 뒤에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두 사람이 이미 PTSD 증상을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며 “곧바로 심리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평범한 일상에서는 절대 겪을 수 없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기 때문에 PTSD를 비롯한 정신적 후유증이 상당히 오래 갈 수 있다”며 “대화를 통한 심리 치료와 약물 치료를 초기부터 병행해야 원활한 일상 복귀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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