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용이형 의선이형, ‘X세대 열국지’ 한 판 어때요?
[OSEN=강희수 기자] X세대는 베이비붐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말로 출생 연도로는 1968년 전후를 가리킨다. 한국 프로야구에는 유달리 X세대 구단주가 많다.
NC 다이노스 김택진 구단주가 1967년생이고, SSG 랜더스 정용진 구단주가 1968년생, 기아 타이거즈 정의선 구단주가 1970년생이다. 삼성 라이온즈의 구단주는 아니지만(공식 구단주는 원기찬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다) 사실상의 구단주로 인식되고 있는 이재용 회장도 1968년생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이들의 성과는 독보적이다. 이재용 회장의 삼성전자는 글로벌을 호령하는 초일류 반도체 기업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고,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회장은 현대-기아를 글로벌 톱3 자동차기업 반열에 올렸다. 김택진 대표의 엔씨소프트는 넥슨과 더불어 한국 게임업계 양대산맥으로 우뚝 솟아 있고, 정용진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와 스타필드는 근래 가장 핫한 유통 브랜드가 돼 있다.
본디 ‘X세대’는 그 정체성을 정확히 묘사할 수 없다는 뜻에서 ‘엑스(X)’를 붙였지만 X세대 출신의 구단주 4인방은 기업경영에서는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며 세계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 게임과 유통이라는 각기 다른 영역에서 독보적인 경영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X세대가 사회진출을 시작할 무렵, 그들은 ‘신세대’로 불리며 기성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세계관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X세대 세계관의 자양분은 ‘자유’와 ‘풍요’였다. 산업화의 첫 수혜자로 풍요를 누리던 그들은 개인주의와 향락 문화를 문제 의식없이 받아들였고, 민주화 이후 더 또렷해진 자유주의는 자기 주장을 전통적 규범보다 소중히 여겼으며, 대중문화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밀착 소비하는 특성을 보였다.
그랬던 X세대는 기업 총수가 된 이후에도 뭔가 달랐다.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는 2019년, ‘리니지2M’을 출시하면서 화제의 ‘택진이형’ 광고에 목소리로 출연한다. 대기업 CEO가 ‘택진이형’으로 통하게 된 발단이다. 광고 카피는 “택진이 형 밤새웠어요?” “일찍 일어나 일하고 있어요” “근데 리니지2M 언제 나와요?”로 이어지는데, 이 광고로 이미 화제가 된 리니지2M은 시장에서 초대박을 터트렸다.
‘택진이형’은 이듬에 우리나라 프로야구에도 큰 획을 긋는다. 2020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을 물리치고 창단 9년, 1군 진입 8년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IT 기반의 기업다운 치밀한 데이터 분석과 꾸준한 투자의 결과물이다. NC 다이노스의 우승 세리머니 때는 한국시리즈 우승컵 보다 리니지의 간판 무기 아이템 ‘집행검’이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X세대 다운 발상이었다.
‘택진이형’의 친근함은 2022년 ‘용진이형’으로 이어졌다.
야구단 인수(2021년) 이전에도 SNS 활동을 활발히 하며 대중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 온 정용진 부회장은 야구단 인수를 계기로 아예 ‘용진이형’이 됐다.
선수단과 격의 없이 만났고, 야구장에서는 팬들 앞에 거리낌없이 모습을 노출했다.
창단 이후 팀 재건을 위해 미국 메이저리거 출신 추신수(2021년)와 김광현(2022년)을 영입했다. 2022년에는 주축인 문승원 박종훈 한유섬과 KBO 최초로 비(非) FA 다년계약을 체결했고, 고효준 노경은 두 베테랑 선수도 영입하면서 팀 전력을 다졌다. 2022시즌을 앞두고는 40억 원의 거금을 들여 클럽하우스를 메이저리그식으로 싹 바꾸는 심리전도 썼다. 아낌없는 투자였다. 결단은 신중했겠지만 실행은 빨랐고 과감했다.
경영인으로서 이재용, 정의선 회장의 행보도 선대 총수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권위를 떨치고 구성원들과 소탈하게 어울리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특히 정의선 회장은 2017년 소형 SUV ‘코나’를 출시하면서 국내 미디어 관계자 앞에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등장해 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일문일답에도 참여할 정도로 열린 마인드를 보였다.
다만, 두 회장은 프로야구 무대에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이재용 회장은 2015년을 끝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쏟던 열정을 끊어 버렸다. 이후 방치되다시피 한 삼성 라이온즈는 좀처럼 바닥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의 기아 타이거즈도 2017년 우승 이후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두 구단주가 2022년 한국시리즈를 봤다면 마음에서 모종의 승부욕이 끓어오르는 걸 느끼지 않았을까? 정용진 부회장이 ‘용진이형’으로 불리며 관중들의 환호를 받는 모습에서 ‘재용이형’ ‘의선이형’의 욕구가 일지는 않았을까?
SSG 랜더스의 지난 2년을 보면 프로야구는 더 이상 사회공헌이 아니다. 살벌한 경영 현장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랜더스의 성공신화를 통해 자신의 경영 스타일을 뚜렷이 드러냈다.
선대보다 더 큰 경영 성과를 내고 있는 이재용 회장도, 정의선 회장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정리해 보일 때가 된 건 아닐까? 프로야구단 경영이라는 ‘아바타’를 통해서 말이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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