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북한, 7차 핵실험 이후에도 한·미와 협상에 나서지 않을 듯" [외교가중계]
상당기간 한·미와 강대강 대치 이어질 것
“韓, 중·러 관계증진 통해 대북 압박 나서야”
북한의 7차 핵실험 이후에도 상당 기간 한국·미국과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 정부는 중단기적으로 실존하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군사적 대처뿐만 아니라 중국·러시아와의 관계증진을 통한 대북 압박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이다.
통일외교 전문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최용환 한반도전략연구실 책임연구위원은 9일 발간된 이슈브리프 ‘북한의 연이은 군사적 도발, 원인과 전망’에서 북한 도발의 ‘정점’이 될 7차 핵실험 실시 이후에도 한반도 상황 변화는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 책임연구위원에 따르면 스텔스 전략폭격기(B-1B)와 핵추진 항모(로널드 레이건호)·잠수함(키 웨스트·애나폴리스함) 등 미국의 전략자산이 대거 참가한 한·미 공중·해상 연합훈련 기간에도 북한이 예년과 다르게 도발을 멈추지 않은 것은 자신들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이른바 ‘전략국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4월 박정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김여정 당 중앙위 부부장 명의 담화에서 ‘핵보유국에 대한 선제타격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김여정은 남한이 군사적 대결을 선택한다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지난 9월8일 한·미·일 등에 대한 선제 핵타격 가능성을 적시한 핵교리를 법제화하면서 자신들 핵무력이 ‘국가의 주권과 영토완정(領土完整·적화통일), 근본이익 수호’ 수단이라고 명기했다. 자신들의 근본이익을 침해하려는 ‘괴뢰도당’은 핵무기를 사용해서라도 굴복을 시키겠다는 위협을 노골화한 것이다.
북한은 평양을 핵타격할 수 있는 미군의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전개해도 상관없다는 분위기다. 최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자신들을 핵보유국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확전우세’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다고 보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국지분쟁이 발생해 확전되더라도 핵무기를 가진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정치·군사적 판단 하에 한·미 연합훈련 기간 수십발의 탄도미사일과 지대공미사일을 발사하고, 심지어 미 항모 전단이 위치한 지역과의 거리를 고려한 듯한 미사일 시험을 실시했다는 설명이다.
전술핵무기를 실전배치하기 위한 군사기술적 수요도 북한 미사일 도발의 한 요인이다. 최 책임연구위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전술핵무기 개발 등을 지시한 지난해 1월) 8차 당대회 이후 북한이 주력하고 있는 전술핵무기의 운용은 아직 초기단계”라며 “군사적 실전성 제고를 위한 훈련 목적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핵무기는 군사적 사용 이외에 정치적 활용도가 매우 높은 독특한 무기체계”라며 “보유 이후에는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거나 공격적으로 운용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위협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7차 핵실험 감행 시기는 김정은 위원장이 군사적 용도 이외에 정치적 용도를 고려해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7차 핵실험으로 자신들 ‘몸값’을 한껏 올린 뒤 경제제재 해제와 불가침 조약 등 체제 보장을 위한 미국과의 협상에 나설 것인가. 최 책임연구위원은 회의적이다. 그는 “현재 북한의 군사적 공세는 협상국면으로의 전환보다는 현재 국면을 고착화하려는 시도의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미·중의 전략경쟁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세계적으로 신냉전 구도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핵과 전략·전술무기를 고도화할수록 한·미로부터 받을 몸값이 더 높아지는데 굳이 협상국면으로의 전환을 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러와의 관계 개선에 상당 부분 공을 들여온 까닭에 추가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적을 뿐더러 이들 나라와의 교역 등을 통해 경제 타격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게 최 책임연구위원의 설명이다.
그는 북한의 추가 핵실험에도 지금의 강대강 대치 국면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최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의 핵실험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어서 미국이나 한국이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별로 없고 북한 역시 핵실험으로 도발의 정점을 찍고 국면전환을 시도할 유인이 많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장기간 계속될 경우다. 북한의 도발이 계속되면 미국의 전략자산 순환배치와 같은 한·미동맹의 강화, 일본의 재무장 가속화 용인 등 한·미·일 안보협력 심화가 이뤄지면 중·러가 반응하는 한반도 주변의 냉전적 갈등구조가 더 공고해지게 된다. 그럴 경우 중·러가 느끼는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 책임연구위원은 “분명한 것은 이제 우리가 핵을 가진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실존하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처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의 전략을 극복할 수 있는 우리의 대응전략이 긴요하다”고 조언했다.
냉전시대와 달리 우리가 중·러와 수교한 상태이고 이들이 우리를 적대시하고 있는 게 아닌 만큼 중·러가 한반도 문제에 있어 최소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만들겠다는 비전과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협상을 통한 북핵 폐기라는 목표를 포기할 수 없다면 군사적 대비 이외에도 외교전략적 수단들을 더욱 다양화·구체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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