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인가 여행예능인가 먹방인가’ <푸드 크로니클> 이욱정 PD[인터뷰]
‘다큐멘터리인가, 여행 예능인가. 리얼리티 ‘먹방’ 프로그램일까, 아니면 문화 인류학을 담은 교양 프로그램일까.’
지난달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푸드 크로니클(음식 연대기)>을 두고 하는 말이다. <누들로드> 등 푸드 다큐멘터리의 ‘장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욱정 PD가 이번에는 음식의 디자인에 주목했다. ‘감싸거나(랩·Wrap)’ ‘둥글고 납작하거나(원형·Flat)’ ‘쌓아 올리거나(레이어·Layer)’ 3가지 형태로 나누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만두, 쌈, 타코, 피자, 팬케이크, 샌드위치, 스시, 케이크 등 8가지 음식을 소개한다. ‘이 음식이 왜 이런 형태로 만들어졌고, 어떻게 지금까지 유지됐을까’라는 질문이 이 PD의 출발점이었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퇴계로 이 PD의 개인 스튜디오에서 <푸드 크로니클>과 그의 다큐관을 들어봤다.
느린 다큐에서 빠른 다큐로…회당 에피소드 7~8개 채워
한때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창사 특선’과 같은 거창한 타이틀을 붙여가며 다큐멘터리를 제작·방송했다. 언제부턴가 지상파 방송에서는 공들여 잘 만든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 PD도 티빙 공개 소식을 듣고 처음엔 큰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는 “OTT에서는 정보성 프로그램에도 유명 연예인이 나온다. 99%가 드라마와 예능인 OTT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다”고 했다. 그는 나름의 전략을 세웠다. “한 회차 안에 7~8개의 스토리를 담고 그 이야기들을 엄청 빠르게 회전시켰어요. OTT에 익숙한 젊은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전략이라고 생각했죠. 한 가지 음식을 보면서 전 세계를 한 바퀴 도는 체험을 하도록 말이에요. 기존 다큐와는 다르죠.”
1화 만두편을 보면, 찾아간 나라만 해도 베트남, 네팔, 티베트, 중국, 일본, 한국, 이탈리아 등 7곳이다. 한 나라에서도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부터 굽이굽이 걸어 들어가야 하는 허름한 골목길에 있는 노포 맛집까지, 같은 음식을 두고도 다양한 층위의 음식을 비춘다. 등장인물 숫자도 10명이 넘는다.
<푸드 크로니클>은 회차당 분량이 70분 안팎이다. 최근 OTT 프로그램의 한 회 분량이 30분까지 짧아졌다는 점과 비교하면 상당히 긴 편이다. 그러나 속도감 있는 전개와 다채로운 색감, 다양한 카메라 시선은 지루함을 잊게 해준다. 마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클로즈업 음식 사진과 여행 욕구 자극하는 이국적 사진을 빠르게 돌려보는 느낌이다. 일본 고베의 차이나타운에서 야키교자 70년 장인인 고로스에 도오루 요리사는 쌍절곤을 휘두르며 등장한다. 소리를 끄고 화면만 본다면 예능이 따로 없다. 요즘 세대 ‘취향 저격’인 셈이다.
이 PD 스스로도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영상미를 내세웠다. 그는 “푸드 다큐멘터리에 요리 신은 액션영화의 액션 신과도 같다”며 “굉장히 스피드하면서도 조리 단계를 자세하게 보여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보성도 담았다고 ‘깨알같이’ 자랑했다. 그는 “동시에 자막과 내레이션을 통해 일반 시청자들이 필요한 것 이상의 정보를 넣었다”고 말했다. 보통 다큐멘터리에서 ‘온갖 야채와 향신료를 넣었다’고 넘어가는 대목을 <푸드 크로니클>에서는 ‘고기 잡내를 제거하는 데 쓰이는 아치오테, 멕시코 향신료’ 등으로 요리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몰라도 될 것만 같은 식재료 이름을 꼭 짚어 알려준다. 이 PD는 “<푸드 크로니클>은 기본 3번은 봐야 한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맛있겠다 하면서 보고 두번째는 저런 재료가 들어갔구나, 세번째는 더 깊은 메시지도 새겨 들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달콤하지만 사실은 약인 당의정 같은 프로그램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흥미를 느끼고 시각적으로 끌리면서도 알게 모르게 정보가 머릿 속에 전달되는 프로그램 말이다.
연출을 넘어 이야기꾼으로
이 PD는 <푸드 크로니클>에서 연출자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직접 출연하고 내레이션까지 맡았다. 갓 튀긴 메뚜기를 올린 타코를 한 입에 넣는 장면에서 그는 ‘백종원’이 된다. 타코의 기본인 토르티야 기원을 찾아가며 마야 문명의 흥망성쇠를 설명할 때는 인류학 강사 분위기를 풍긴다. 그는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오디세이, 지적 탐험이다. 탐험에는 여행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 사람이 이야기꾼”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내가 직접 본 그 느낌을 살려서 내 관점을 엮은 것”이라며 “다큐멘터리에서 프리젠터의 역할은 중요하다. 이야기의 중심 화자가 없으면 아마 그냥 해외에서 사온 다큐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음식을 디자인으로 분류한 아이디어는 독특하다. 한국에서 ‘쌈’은 잎채소에 고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를 싸먹는 형태다. 이 PD는 쌈에서는 ‘무궁무진한 개방성’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찾아보면 라이스 페이퍼에 다양한 야채와 고기, 해산물을 싸먹는 베트남의 월남쌈, 짜조도 쌈의 형태를 가진 요리다. 프랑스에서는 돔 형태의 양배추 요리가 등장한다. 프랑스에서는 사보이 양배추 위에 푸아그라와 다진 고기를 얹고 소스 얹기를 반복해 보자기 모양을 잡고 마지막은 크레핀이라고 하는 돼지의 복막으로 랩을 싸듯 감싸준다. 요리사는 레스토랑 인근 성당의 고딕 건축 양식에서 영감을 얻었단다.
왜 하필 8가지 음식일까. 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식을 골랐다. 만두도 타코도 피자도 한국의 전도 모두 빨리 만들고 빨리 먹으면서도 다양한 맛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이라며 “인류는 편리와 효율성을 추구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음식의 형태라는 독특한 시각을 통하되, 그 안에서는 인류가 가지고 있는 아주 다양한 정신세계와 상징성에 대한 인류학적인 성찰을 담아보자는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곧 방송될 스시편을 예로 들었다. 그는 “스시에는 보이지 않는 레이어(층)가 있다”면서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그 안에 굉장히 복잡한 방정식이 숨어 있고 스시를 통해서 신뢰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 사회의 인간관계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 프로그램은 코로나19가 가라앉지 않은 지난 1년간 10개국을 돌아다니며 촬영됐다. 계속 이동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는 상황에서 코로나 위험은 상당했다. 해외 요리사를 만날 때나 식당에서도 제작진은 경계의 대상이 됐다. 섭외도 쉽지 않았다. 이 PD는 “정말 노심초사했는데 촬영 기간 동안 한 명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다행히 한국 돌아와서 코로나에 걸렸다”면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PCR 검사를 하도 하다보니 이젠 나라별 PCR 숙련도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라며 웃어보였다.
이 PD는 “70분을 보더라도 지루할 틈이 없도록 했다. 특히 밤에 퇴근하고 와서 새로운 드라마 시리즈를 보기엔 시간이 마땅치 않을 때, <푸드 크로니클>을 틀어놓고 야식을 드시면 아주 좋다”고 강조했다.
9일까지 만두, 쌈, 타코 등 3편이 방송됐다. 매주 목요일 새 회차가 공개된다. 총 9회차로 구성됐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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