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한강·한기욱, 한국화·사미 랑제라에르 대산문학상 수상

김종목 기자 2022. 11. 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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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집 <가능주의자>와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각각 제30회 대산문학상 시·소설 부문에 뽑혔다. 평론은 한기욱의 <문학의 열린 길>, 번역은 한국화·사미 랑제라에르의 <Cent ombres(백의 그림자, 황정은 원작)>가 선정됐다.

대산문학상 수상자 나희덕·한강·한기욱(왼쪽부터)이 9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라브리에서 열린 기자회견 중 촬영에 응하고 있다. 대산문화재단 제공

대산문화재단은 9일 이 같은 수상 결과를 발표했다. 나희덕의 <가능주의자>를 두고 심사위원단은 “반딧불이처럼 깜빡이며 가닿아도 좋을 빛과 어둠에 대해, 현실 너머를 사유하는 결연한 목소리로 나희덕식 사랑법을 들려준 점”을 평가했다. “시간의 마모에 따라 사라져가는 존재자들과 공동체 안에서 억압받고 지워져 가는 타자들을 불러 세우는 파수꾼이자 증언자로서 이제 나희덕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모성적이고 서정적인 언어에 균열을 내고 그 균열을 극단까지 미학화해간다”고 했다.

나희덕은 수상 소감에서 “기쁘면서도 두렵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며 “세상은 여전히 아비규환인데, 그 고통에 대해 쓴 시집으로 상을 받는다는 것이 스스로의 시를 배반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재난의 나날 속에서, 폭력과 죽음이 넘쳐나는 현실 속에서,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력감을 느낄 때도 많았다”면서도 “그럼에도 시를 내려놓지 않았던 것은 시가 현실을 증언하고 애도하는 간절한 목소리라는 믿음 덕분이었다”고 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뿐 아니라 한 마리의 물고기로서, 한 포기의 풀로서, 한 개의 돌멩이로서, 한 조각의 유리로서 말하는 법을 배워나가겠습니다. 고통받고 사라져가는 존재들의 목소리에 계속 귀 기울이겠습니다. 목소리들의 물질성 속에서 부르고 응답하며 그 메아리를 받아 적겠습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두곤 “<소년이 온다> 이후 소설 속 시간을 작가의 실제 삶 속에서 되살려내는 접신의 환각은 한강 소설의 상수가 되어버린 감도 없지 않은데,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몸의 통증을 이제 독자들의 삶 속으로까지 되돌려보내는 작품이라고 할 만했다”고 소개했다. “광주와 제주 4·3을 잇고 뒤섞으며 지금 이곳의 삶에 내재하는 그 선혈의 시간을 온몸으로 애도하고 ‘작별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 점”을 선정 이유로 꼽았다.

한강은 “수상 소식을 들은 밤, 이상하게도 <작별하지 않는다>를 써갔던 장소들이 차례로 떠올랐다”고 했다. “그 방들, 책상들, 시간과 경험들 사이에서 저는 흔들렸고 때로 부서지기도 했는데, 이 소설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실은 포기한 적도 있지만- 겨우 자신을 지켜낸 듯합니다. 어쩌면 이 소설이 저를 포기하지 않고 지켜준 것 같기도 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진짜 주인공인 강정심의 마음- 작별할 수 없는 마음, 작별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는 마음-이 그 마음 앞에 깊이 머리 숙입니다.” 이어 이렇게 말했다. “논리적으로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때에도 글쓰기는 벼랑 앞 허공에 불가능한 다리를 놓아 제 몸을 한 발 앞으로 옮겨놓습니다. 그렇게 조금 더, 한 걸음씩만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빕니다.”

제30회 대산문학상 수상자. 왼쪽부터 나희덕, 한강((C)김이정), 한기욱, 한국화·사미 랑제라에르. 대산문화재단 제공.

한기욱의 <문학의 열린 길>은 “현실과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리얼리즘의 실천적 사유를 바탕으로 ‘문학의 길’을 탐문한 비평집”이다. 심사위원단은 “동시대 문학 공간과 문제적 문학에 대한 치열한 비평적 대화를 끈질기게 추구한 점”을 꼽아 상을 줬다. 한기욱은 “부제로 단 ‘사유·정동·리얼리즘’을 해도(海圖)와 나침판 삼아 우리 시대 작가들 각각의 문학세계를 깊숙이 탐문하고 작품의 성격과 의의를 섬세하게 논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우연찮게 평론집 표지에 어린 향고래들의 행렬을 그려 넣고 나서,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그 모습이 여태 나로 하여금 문학의 길을 가게 한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며 “<모비 딕>의 한 장면을 상상해서 그린 그 문양은 고래처럼 생명력 넘치는 존재를 우리 문학의 주체로 삼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이라고 했다.

한국화·사미 랑제라에르의 공역 <Cent ombres(백의 그림자)>는 “원문에 얽매이기보다 작가 특유의 울림과 정서가 외국 독자에게도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가독성을 높여 문학성을 살린 점”을 평가했다. “사회적 폭력과 시스템의 비정함을 은교와 무재의 선량하고 꿋꿋한 사랑 이야기를 통해 시적인 문체로 풀어 낸 원작 소설의 문학성과 프랑스 현지에서 까다로운 작품 선정으로 유명한 베르디에(Verdier) 출판사에서 출간된 점, 그리고 르몽드를 위시한 여러 신문과 잡지에서 호의적인 평가를 받은 점 등을 고려하여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알렸다. 랑제라에르는 파리1대학교 철학과 및 파리-세르지 국립예술학교 미술 석사, 파리8대학교 문예창작 석사를 받았다.소설가이자 번역가로 일한다.

한국화는 “모어를 외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저는 외국어 실력에 대한 부족함보다도 그동안 게으르게 모어를 읽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한국어의 특징상 자주 생략된 주어, 상황에 따라서만 이해할 수 있는 다소 모호할 수도 있는 표현, 쓰인 것뿐만 아니라 그 사이의 공백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일이었다. 이 과정을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해 준 공역자 사미 랑제라에르에게 공을 돌린다”고 말했다. 랑제라에르는 “황정은 작가가 구사하는 낯선 언어를 프랑스어로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전자상가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구축된 <백의 그림자>의 정교한 세계를 유럽 문화권에 어떻게 옮겨올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며 “공역자와 저는 언어뿐만이 아니라 세계관의 차이를 서로에게 설명하고 설득했다. 이 과정은 가끔 벅차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소설 속) 은교와 무재가 부르는 ‘구두 발자국’ 노래처럼 한 발짝씩 나아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예심은 김행숙·서효인· 홍용희(이상 시), 김영찬·윤성희 ·이수형 ·임현(이상 소설)이 맡았다. 본심 심사위원은 구모룡 ·김기택 ·김승희 ·신달자· 유성호(이상 시), 권택영· 방현석· 신수정 ·은희경 ·임철우(이상 소설), 고형진 ·김수이 ·서경석· 우찬제· 윤지관(이상 평론), 유석호· 이인숙 ·지영래· 최권행 ·카린 드비용(이상 불어 번역)이다.

부문별 상금은 5000만 원이다. 시상식은 12월 1일 오후 6시 30분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연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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