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휴대폰을 들지 않았다”…‘그래미 12관왕’ 전설의 연주에 관객들 몰입
김재희 기자 2022. 11. 9. 14:20
“어제 야구 경기(한국시리즈 5차전)를 보러 갔어요. 아무도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지 않더군요. 모두 경기에 몰입한 모습이 정말 멋졌어요. 미국인도 그런 열정을 배워야 해요.”
미국 그래미 12관왕, 롤링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70위에 이름을 올린 파란 머리의 뮤지션 잭 화이트(47)가 공연시작 1시간 후 관객에게 처음 건넨 인사말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채 경기를 즐긴 한국 관중들을 향한 감동어린 찬사였다. 모든 콘서트마다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엄격히 금하는 화이트의 첫인사다웠다.
8일 오후 8시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그의 첫 내한공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연 전 “사진 및 영상 촬영 시 삭제조치 후 퇴장시킨다”는 경고성 안내가 있었고, 105분 동안 1300명이 가득 찬 객석에선 단 한 줌의 휴대폰 불빛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그의 콘서트 사진이나 동영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 부모님 밑에서 자라 신부가 되려했던 화이트는 신학교 입학도 마쳤던 14살 여름, “우리 세대를 위한 목소리는 누가 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 뒤 아버지가 사준 피아노를 독학하며 가수를 꿈꿨고, 밴드활동을 거쳐 스물 두 살 되던 해인 1997년, 전 아내 멕 화이트와 듀오 록 밴드 ‘화이트 스트라이프스’를 결성한다. 1996년 결혼한 두 사람은 2000년 이혼했다.
정규 3집 ‘White Blood Cells’(2001년)로 처음 빌보드에 입성하며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이들의 대표곡 ‘Seven Nation Army’가 수록된 정규 4집 ‘Elephant’(2003년)로 두 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멕 화이트의 무대공포증으로 2011년 팀 해체 후 솔로활동을 시작한 화이트는 두 번째 솔로 앨범 ‘Lazaretto’(2014년)로 그래미 ‘베스트 록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하면서 과거의 명성에 머무르지 않는 현시대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기타와 물아일체 된 현시대의 전설에 관객들 전율
“한국에 처음 와 기쁘다”거나 내한한 해외스타들의 필수 코스가 된 ‘볼 하트’도 없었다. 3월 발매한 네 번째 솔로앨범 ‘Fear Of The Dawn’의 수록곡 ‘Taking Me Back’의 전주와 함께 무대에 등장한 화이트는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How are you doing, Korea?”라는 짤막한 인사를 제외하고 단 한번의 쉼도 없이 계속해서 노래를 이어나갔다.
매 공연마다 정해진 세트리스트 없이 즉흥적으로 원하는 곡을 연주하는 탓에 관객들은 다음에 어떤 곡이 나올지 예상하지 못한 채 기타와 물아일체가 된 화이트의 본능과 호흡에 몸을 맡겼다. 통상 해외 아티스트는 앵콜곡까지 똑같은 순서로 공연을 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미리 세트리스트를 숙지한 채 공연장을 찾는다.
숨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그의 연주에 1층 스탠딩석 관객들은 박수로 박자를 맞추거나 손을 위 아래로 흔들며 열광했고, 2층 지정석 관객들 중 일부는 접신한 듯한 그의 퍼포먼스에 고개를 좌우로 내젓기도 했다.
화이트는 겉핥기식의 인사치레 대신 음악으로 관객과 소통했다. 끓어오르는 흥을 주체하지 못한 채 한쪽 다리로 방방 뛰며 무대 좌우를 오간 탓에 그의 정체성과도 같은 파란색 머리는 잔뜩 헝클어졌고, 파란색 반짝이가 달린 자켓은 공연 중간에 벗어 던졌으며, 곡이 끝날 때마다 격렬한 연주를 견디지 못한 기타 피크를 허공에 그대로 날렸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붙는 화이트에 관객도 동화됐다.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에 이마가 부딪힐 듯 격렬하게 머리를 흔들며 ‘You Don‘t Understand Me’의 간주 부분을 연주하는 그의 선명한 타건에 관객은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자신이 죽은 뒤 남겨진 이들을 부탁하는 노래 ‘If I Die Tomorrow’를 부를 땐 관객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후레쉬를 켜고 공중에 흔들었다. 이날 공연에서 유일하게 스마트폰 불빛이 객석에서 새 나온 순간이었다.
공연은 매 순간이 클라이막스였다.
마지막 곡 후 밴드가 퇴장한 뒤 무대 불이 꺼지자 Seven Nation Army의 멜로디를 힘껏 외치며 앵콜을 성원했다. 검정색 반팔티를 입은 채 무대에 다시 등장한 화이트는 앵콜곡 ‘Steady As She Goes’을 부를 때 “내가 ‘Steady as she goes’를 부르면 ‘Are you steady now’를 불러달라”며 관객들과 함께 노래했다.
마지막 앵콜곡 Seven Nation Army를 부를 때엔 2절 초반 갑작스럽게 관객에 마이크를 넘겼음에도 주저하지 않고 정확히 가사를 읊으며 떼창하는 관객에 ‘That‘s Right!’이라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화이트는 4월 영국 타블로이드 매체 더선과의 인터뷰에서 “(팬데믹으로) 투어 공연을 못 하는데 앨범을 만드는 건 이상하게 느껴졌다. 안개가 돼 사라져버릴 것을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았다”며 2020년 한 해 동안 음악에서 손을 뗐던 이유를 밝혔다.
은둔과 단절의 시간동안 느꼈던 생경한 감정을 음악으로 표출했고, 올해 4월과 7월 솔로 앨범 두 장을 연거푸 발매했다. 무대에서 연주하지 못할 곡은 공기 중에서 사라지는 안개와도 같다던 본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그는 4집이 발매된 4월 그의 고향 디트로이트에서 세계 투어의 스타트를 끊었다.
무대에 서야 비로소 음악이 완성된다고 믿지만 온라인상 ‘되감기’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그 날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만 느낄 수 있는 음악이다. 몰입과 전율, 화이트가 관객에게 남긴 선물이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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