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보는 세상] 유전자 '조작'의 명과 암...어디까지 허용될까
“나는 유전자 조작 식품이 싫어.”
유전자를 조작해 식재료의 형질을 바꿔 놓은 음식에 혐오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유전자를 조작한 음식을 전혀 먹지 않고 현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만큼 유전자 조작 식품이 우리 사회에 널러 퍼져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 식품이 싫다면 유전자 변형 식품, 유전자 재조합 식품은 어떤가. 유전자 변형을 일으키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해야 하므로 유전자 조작 식품과 유전자 변형 식품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유전자를 조작하고, 변형을 일으키기 위해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이 재조합 기술이므로 유전자 재조합 식품도 거의 같은 뜻이다. 유전자 재조합을 일으키지 않고도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변형시킬 수 있기는 하지만 의도한 대로 조작을 하고 변형을 일으키려면 재조합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유전자 조작 식품을 피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식물을 재배하기 위해 사용하는 종자가 지닌 유전자가 이미 변형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1997년 말 전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로 한국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돈을 빌려와야 했다. IMF 외환위기다.
이 때 IMF의 요구사항을 따르다 보니 수많은 회사가 문을 닫고,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는 일이 발생했다. 다행히 수년이 지나지 않아 빌린 돈을 갚고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기는 했지만 평생 직장인줄 알고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나야 했던 충격은 의과대학의 인기를 높이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당시 종자를 취급하는 외국의 거대 회사들이 국내 종자 회사들을 합병했다. 그 바람에 우리나라 종자회사들은 사라지다시피 했고, 농민들은 외국 회사로부터 종자를 구입하게 되었다. 문제는 다국적 외국기업은 유전자가 변형된 종자를 많이 공급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유전자가 변형되지 않은 우리 고유의 콩이나 두부를 찾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을 싫어하는 건 자유지만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다는 점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유전자를 조작하는 방법
자외선이 유전자를 변형시킨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여름에 햇빛이 강한 날 침구를 햇빛에 노출시켜 소독하는 것은 미생물이 열에 의해 사멸되는 효과와 함께 자외선에 의해 미생물의 DNA가 변형되는 것도 한몫을 한다. 미생물은 단세포이므로 DNA가 변형되면 더 이상 증식을 못하기 때문이다.
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에 피부암 환자가 많은 것은 남극 상공의 오존층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오존층은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오존층이 파괴된 결과 지구표면에 도착하는 자외선의 양은 전보다 훨씬 많아져서 햇빛에 노출된 사람세포에 들어 있는 DNA를 파괴해 변형시킬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DNA에 들어 있는 유전자가 자외선에 의해 파괴되면 세포는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암 발생과 관련있는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경우는 피부암 발생빈도를 높이게 된다. 그런데 자외선에 의한 유전자 변형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우연히 유전자에 변형이 일어나는 것일 뿐 어떤 유전자를 어떻게 변형시킬 것인지 계획하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정 유전자를 실험자가 계획한 대로 조작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부위를 자르고 붙이는 일이 가능해야 한다. DNA를 붙이는 효소(DNA ligase, DNA 리가아제)는 1967년에 처음 발견됐고 DNA를 자르는 효소(restriction enzyme, 제한효소)는 1970년에 발견됐다.
1972년 하와이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만난 코헨(Stanley Norman Cohen)과 보이어(Herbert Wayne Boyer)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토론했다. 코헨은 염색체 밖에 존재하는 플라즈미드를 연구하고 있었고, 보이어는 제한효소의 하나인 EcoRI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들은 포도알균(Staphylococcus)의 DNA와 대장균의 플라즈미드를 EcoRI으로 처리해 자란 DNA의 끝부분이 일치하도록 한 후 포도알균에서 얻은 DNA 조각을 대장균의 플라즈미드 안에 삽입함으로써 포도알균의 유전자를 대장균에 집어넣으려는 생각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어서 포도알균 유전자를 받아들인 대장균이 포도알균이 합성하는 단백질을 성공적으로 생산했다.
1973년 11월에 발표된 이들의 논문은 유전자 재조합기술이 정립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이 기술을 이용해 유전자를 조작하고, 변형시키는 일이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실험실에서 기본적인 기술이라 할 정도로 널리 이용되기 시작했다.
유전자 재조합에 의한 약이 발전시킨 현대의학
20대의 스완슨(Robert A. Swanson)이 코헨과 보이어가 유전자 재조합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잠시 쉬고 있던 중이었다. 벤처투자 회사에서 일을 하다 쉬던 중에 우연히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장차 의학과 생명과학 연구에 널리 이용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스완슨은 회사를 세우자고 했고, 보이어가 적극적으로 반응함으로써 투자유치에 나섰다. 그리하여 유전자(gene) 와(and) 기술(technology)을 합친 제넨테크(Genentech) 회사가 창립됐다. 제넨테크는 유전자를 다루는 기술을 이용하여 의약품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다. 이들이 처음으로 생산하고자 한 약은 인슐린이었다.
1921년 캐나다의 밴팅(Frederick Banting)이 발견한 혈당조절물질 인슐린은 20세기 후반에 당뇨병 환자가 증가하면서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 밴팅은 개를 이용해 췌장(이자)의 베타세포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을 분리했으며, 그 후로 돼지 등 다른 동물에서도 인슐린을 분리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1978년에 일라이릴리(Eli Lilly)사가 인슐린을 얻기 위해 필요로 하는 동물수가 1년에 5000만 마리가 넘는 상태였다. 동물로부터 인슐린을 얻으려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바이러스와 같이 동물이 가진 병원체가 사람에게 옮겨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1978년 4월 18일 제넨테크는 사람 유전자를 주입한 대장균을 이용해 사람 인슐린을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인슐린 생산비와 병원체의 오염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 방법은 오늘날 분자생물학 연구자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며 제넨테크는 그 후로 성장호르몬을 비롯해 수많은 유전자 재조합 약을 생산했다.
생명과학 연구에서 해결해야 할 오묘한 점은 아무리 이론적으로 타당하다 해도 실제로 시험해 보기 전까지는 효과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똑같은 병에 걸린 사람이 똑같은 약을 처방받아도 누구는 금방 낫고, 누구는 낫지 않는 것에서 이런 예를 쉽게 볼 수 있다. 유전자를 재조합해 변형된 유전자를 얻은 다음 대장균에 집어넣으면 어떤 유전자는 쉽게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지만 유전자 중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따라서 학자들은 더 많은 단백질을 쉽게 얻기 위해 계속해서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제넨테크가 처음 생산한 인슐린도 초기에는 생산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거듭된 연구를 통해 1983년부터 유전자재조합 인슐린이 시판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수많은 당뇨병 환자들이 이 기술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당뇨병 환자가 증가된 것을 감안하면 유전자재조합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을 경우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현재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예견할 수 있다.
유전자 조작에 대한 윤리적 합의를 본 1975년 아실로마 컨퍼런스
필자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1980년대 초부터 유전공학'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관련 학과도 생겨났다. 중고등학교 생물학(요즘의 생명과학) 교과서에서 멘델의 유전법칙을 공부한 이들은 유전학이 뭔지는 알고 있었지만 유전공학은 익숙한 용어가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대량생산’을 의미하는 '공'이 삽입된 '유전공학'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유전공학과의 신입생 모집 광고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쥐보다 훨씬 큰 쥐를 만들 수 있고, 젖소의 우유 생산량을 크게 증가시키는 방법을 공부하는 내용을 볼 수 있기도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환상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덩치가 큰 쥐라니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생각을 가질 수도 있는 일이다.
자연의 섭리라 할 수 있는 생명현상을 인간의 마음대로 조작해도 되는 것일까. 사람의 유전자를 쥐에게 삽입하거나 쥐의 유전자를 사람에게 삽입하면 어떻게 될까.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발전은 자연스레 이와 같은 질문과 마주쳐야 했다. 생명과학 연구에서 인간에게 허용되는 범위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안전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해야 했다.
1975년 2월 아실로마(Asilomar)에서 열린 컨퍼런스는 재조합 DNA를 주제로 학자들의 의견교환을 위해 개최되었다. 참석자 대부분은 생물학자였고, 변호사 등 다른 전문가도 포함해 약 140명이 참석한 컨퍼런스에서 재조합 DNA 기술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한 지침(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 컨퍼런스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 내용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는 실험에 대해 위험도와 격리 수준을 제시하고 어떤 연구를 할 때 어느 정도 수준으로 격리를 한 다음 실험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를 보는 것이었다.
법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학자들이 자체적으로 허용범위에 대한 기준을 정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 지침에서는 고병원성 유기체에서 유래한 재조합 DNA 복제, 독소 유전자 등 사람과 동식물에 잠재적으로 유해할 수 있는 재조합 DNA를 사용하는 대규모 실험 등은 위험하므로 아예 금지하기로 했다.
무작위로 실험을 시행하면 영화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끔찍한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안전을 우선시하여 학자들이 스스로 연구범위를 결정했다는 점에서 1975년 아실로마 컨퍼펀스는 지금까지도 연구윤리의 기준을 보여 준 훌륭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 참고문헌
1. 제넨테크 홈페이지. www.gene.com
2. Paul Berg, David Baltimore, Sydney Brenner, Richard O. Roblin, Maxime F. Singer. Asilomar Conference on Recombinant DNA Molecules. Science. Vol 18(4192), 991-994
3. Sally Smith Hughes, Herbert Wayne Boyer. Recombinant DNA Research at UCSF and Commercial Application at Genentech. Andesite Press, 2015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대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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