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영 시간 3시간 10분”…‘쇼트폼’ 대세 역행하는 ‘길고 긴 영화’들이 온다

손효주 기자 2022. 11. 9.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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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이 길게는 3시간이 넘는 ‘길고 긴 영화’가 올해 막바지 잇달아 개봉한다.

쇼트폼 콘텐츠(짧은 분량의 영상)가 각광받으며 콘텐츠 소비 형태가 점점 더 짧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보란 듯 역행하는 영화들이다. 문제의 이 긴 영화들이 긴 영상 시청을 주저하는 MZ세대를 대거 극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긴 영화 개봉의 포문을 연 건 9일 개봉한 마블 영화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2018년 개봉한 ‘블랙 팬서’ 후속편으로 러닝타임은 161분이다. 9일 현재를 기준으로 올해 국내에서 개봉한 국내외 상업영화 중엔 재개봉작을 제외하면 ‘시맨틱 에러: 더 무비’(177분) ‘더 배트맨’(176분) 이후 러닝타임이 가장 길다.

9일 개봉한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 러닝타임이 2시간 41분에 달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16일엔 ‘한산: 리덕스’가 개봉한다. 올 7월 개봉해 관객 726만 명을 모은 ‘한산: 용의 출현’을 감독 확장판으로 재편집한 것으로 2시간 30분 분량이다. 임진왜란 당시인 1592년 7월 벌어진 한산대첩을 다룬 ‘한산: 용의 출현’보다 21분 늘어났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대작 중에선 단연 가장 길다.

김한민 감독은 분량을 늘린 이유에 대해 최근 “‘한산: 용의 출현’보다 깊이 있는 시각을 담았다. 조선 수군과 왜군의 대치 상황을 더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이순신의 고뇌도 더 담고 싶었다”고 했다.

16일 개봉하는 ‘한산: 용의 출현’의 감독판 ‘한산 리덕스’. ‘한산: 용의 출현’보다 러닝타임이 21분 늘어 150분에 달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긴 영화’계의 끝판왕은 다음 달 중순 개봉하는 올해 최고 기대작 ‘아바타: 물의 길’이다. 할리우드 리포트 등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아바타’(2009년) 이후 13년 만에 나오는 후속편인 이 영화는 무려 3시간 10분에 이른다.

지난달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주요 장면을 18분 분량으로 편집한 영상이 공개된 이후 스케일이 압도적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영화팬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관람 팁이 공유되고 있다. 콜라 등 음료 섭취는 최대한 자제하고 팝콘만 먹으라는 등의 팁이다. 개봉하자마자 영화를 본 뒤 상영 중 화장실에 다녀와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는 시간대를 알려주겠다는 글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다.

다음 달 개봉 예정인 ‘아바타: 물의 길’ 포스터. 러닝타임이 무려 3시간 10분에 달해 올해 국내에서 개봉한 국내외 영화 중 가장 길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제공
문제는 이런 긴 영화들이 짧은 영상이 대세인 시대에 흥행할 수 있느냐는 것. 실제로 올해 3월 개봉한 2시간 56분 분량의 ‘더 배트맨’은 국내에선 관객 90만 명을 모으며 흥행에 참패했다.

유튜브나 틱톡 등을 통한 쇼트폼 콘텐츠가 확산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인기로 영상을 10초씩 빠르게 건너뛰며 혼자 보는 문화가 퍼지는 등 팬데믹 기간 급변한 콘텐츠 소비 방식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긴 러닝타임을 내세우다가 참패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 때문에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긴 러닝타임이 흥행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9년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3시간 1분에 달하는 분량에도 1397만 관객을 모으며 역대 국내 박스오피스 5위까지 올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팬데믹 이전이어서 가능했던 이야기라는 것.

정반대로 혼자 보는 짧은 영상이 대세가 된 시대에 여럿이 어우러져 보는 긴 러닝타임의 극장용 영상이 오히려 흥행으로 가는 차별화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왕 오를 대로 오른 영화 관람료(주말 일반관 기준 1만5000원)를 내고 영화관에 갈 거면 볼거리가 가득한데다 러닝타임까지 길어 영화관을 찾은 김에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똘똘한 한 편’을 보러 가려는 관객들이 많을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캐릭터별로 뚜렷한 서사와 심해와 지상, 공중을 넘나드는 화려한 액션과 인간 상상력의 절정을 보여주는 압도적인 볼거리, 개성 넘치는 캐릭터, 보는 재미와 몰입감을 끌어올리는 예술적 경지의 음악, 중간중간 녹인 개그 등이 어우러지면서 2시간 41분이 1시간 반처럼 지나간다. 볼거리와 서사의 대향연 덕분에 상영시간 내내 마스크 속 입을 벌리게 된다.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금속인 비브라늄을 유일하게 보유한 최강국 와칸다가 비밀의 수중 국가 탈로칸과 전면전을 치르는 내용을 중심으로 한 이 영화는 OTT 전성시대에도 극장이 필요한 이유를 제대로 보여준다.

‘아바타: 물의 길’을 연출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긴 러닝타임이 흥행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번 자신해왔다. 그는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화상을 통해 한국 관객들을 만나 “영화적 경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쉽게 볼 수 있다면 더 이상 특별함은 사라진다. 쉽게 보지 못하기에 손꼽아 기다리고 친구와 함께 가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여정을 떠날 수 있는 그런 영화가 있다”며 “아바타가 바로 그런 영화”라고 자신했다. 국내 관객 중엔 ‘아바타: 물의 길’을 보며 영화적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10월 11월엔 영화관 방문을 아껴둔다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기대가 높다.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OTT의 확산은 짧은 콘텐츠를 더 빠르게 소비하도록 만들었지만, 정반대로 시리즈 10편을 한자리에서 몰아보게 하는 등 러닝타임이 매우 긴 영화나 마찬가지인 긴 시리즈에 익숙하게 만든 부분도 있다”며 “빈틈없이 꽉 채운 영화라면 러닝타임이 아무리 길어도 흥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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