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권의 뒤땅 담화] 라인 읽기에 도 통한 파3홀 전담 캐디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 2022. 11. 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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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경기도 이천에 소재한 회원제 골프장에서 전반 라운드를 1시간 40분 만에 끝냈다. 동반자들 구력이 오래됐고 노련한 캐디 덕분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우리 팀도 지연 플레이 없이 빠른데 앞 팀이 워낙 빨리 홀을 빠져나가니 할 수 없이 속도를 냈다면서 캐디가 양해를 구했다. 일찍 골프를 끝내면 좋겠다고 다들 생각했는데 후반 라운드에 들어가기 전에 무려 40분을 기다려야 했다.

이러려고 캐디의 빠른 진행에 동참해 빛의 속도로 달려왔나 싶어 허탈했다. 지루한 시간을 보내느라 막걸리를 두 통이나 마시고 끊긴 리듬으로 시작된 후반에 스코어가 잘 나올 리 없었다.

“지연 플레이로 같은 팀 동반자나 다른 팀에 민폐를 끼치는 것도 문제이지만 골프장도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어요. 무조건 느리다고 골퍼만 나무랄 일은 아니라고 봐요.”

후반 첫 홀 아너(honour)로 나선 동반자가 바로 OB(Out of Bounds)를 내고는 억울한 듯 중얼거렸다. 동반자들이 위로하며 멀리건을 줬지만 손사래를 치며 극구 사양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필자도 평소 신속한 진행을 예찬하지만 느린 진행 원인이 골퍼 개인에게 있을 때 한해서다. 골프장이 세팅한 진행속도가 골퍼들 플레이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면 상황이 다르다.

소몰이하듯 골퍼들을 밀어붙이곤 진행이 느리다고 고객을 다그치면 정상 골프장이 아니다. 2등 성적을 받은 학생에게 1등 못 했다고 진상 학생이라고 낙인을 찍는 거나 다름없다.

골프장이 진행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장치는 다양하다. 유독 한국 골프장에 많이 존재한다.

티잉 구역에 시니어 티와 레이디 티를 따로 만들어 놓은 것도 실은 진행을 빠르게 하려는 의도다. 동반자들이 함께 레귤러 티를 사용하면 비거리가 짧아 경기 시간이 더 소요된다.

비거리와 실력에서 차이가 나면 동반자들이 같은 티를 사용해도 핸디를 주면서 조절하면 되는데 아예 티를 따로 사용하게 만든다. 골퍼를 배려하기보다는 진행속도를 내려는 골프장 의도가 더 크다.

요즘은 화이트 티도 같은 티잉 구역 안에 앞뒤로 두 개를 만들기도 한다. 시니어용 화이트 티와 레귤러 화이트 가운데 어디서 쳐야 할지 종종 헷갈린다.

카트도 골퍼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진행을 빠르게 하려는 골프장의 의도가 더 짙다. 속도를 내서 홀을 빨리 빠져나가라는 것이다.

티샷을 하고 클럽 두 개 정도를 들고 코스로 걸어 들어가서 다음 샷을 해도 진행에 아무 문제가 없다. 이동과 스윙 과정에서 군더더기 동작만 없어도 정상적인 진행을 하기에 충분하다.

요즘은 골퍼들이 거리측정기로 핀까지 거리를 알아서 재기 때문에 굳이 캐디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린피에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푹신한 잔디를 걷는 간접비용도 포함돼 있다.

새벽에 서둘러 공사판 인력을 태우고 가듯 카트에 급하게 골퍼들을 실어 몰고 가는 것도 정상이 아니다. 여유로움과 품위와는 아예 거리가 멀다.

코스에서 스윙을 하는 도중 마셜 캐디가 카트를 타고 나타나면 캐디는 물론 골퍼들마저 긴장한다. 요즘은 캐디가 가지고 있는 패드에 진행을 재촉하는 문자가 뜬다.

파3 쇼트 홀에서 뒤 팀에 웨이브(사인)를 주는 것도 진행속도 때문이다. 그린에 마크를 하고 잠시 빠져나오면 기다리던 뒤 팀이 티샷을 끝낸 다음 그린에 다시 올라가 퍼트를 한다.

골퍼들이 경기를 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그린이다. 이를 감안해 골프장들이 고안해낸 묘수가 바로 웨이브다.

어떤 골프장은 핀 주변으로 동그란 원을 그려 컨시드 존을 만들어 놓았다. 컨시드 여부로 골퍼들이 옥신각신하지 말고 그려놓은 원을 기준으로 지체 없이 공을 집든지 마크를 하란 뜻이다. 컨시드 존으로 특허를 낸 골프장 오너도 있다.

어떤 골프장은 아예 파3홀에 그린 전속 캐디를 배치해 놓고 있다. 언덕으로 약간 가려진 파3홀에서 우드로 티샷을 하고 그린에 갔더니 나의 공 라인을 벌써 다 읽었다며 바로 퍼트를 하라는 게 아닌가.

하루 종일 그 홀에 대기하면서 라인 읽기에 도가 통한 캐디가 공을 놨다며 믿고 그대로 퍼트 하라고 떠밀었다. 혼자 마크하고 라인을 읽는 필자로선 황당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풍경이다.

레귤러 홀이나 롱 홀에서의 티샷에도 웨이브를 주는 골프장이 있다는 기상천외의 이야기도 들었다. 봄가을 성수기에 팀을 하도 많이 받아 무리하게 진행을 감행하는 골프장이 만든 꼼수다.

두 번째 샷을 앞둔 팀이 티잉 구역에서 대기하는 뒤 팀에게 티샷을 하라며 일단 페어웨이에서 빠져나온다. 위험할뿐더러 세상에 이런 골프장이 있나 싶었다.

해당 골프장은 워낙 골프 수요가 많다 보니 이렇게 해서라도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말이 해명이지 돈벌이에 급급하다.

골프장 코스에 닭장 속의 닭처럼 골퍼들로 빽빽이 붐빈다. 그린 안팎에 앞 팀과 뒤 팀이 섞여 바글바글하다.

골프장 팀당 간격은 9분에서 최소 8분 정도는 둬야 한다. 골퍼들을 가두리 양식장에 가둬놓고 탈탈 털어대면 곤란하다. 이런 곳에 골프장 이름을 갖다 붙여선 안 된다.

“골퍼들도 동반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매너를 지켜야 하지만 골프장도 상응하는 진행매너를 지켜야 합니다. 속도를 내려고 무리하게 고객들을 몰아붙이면 곤란합니다.”

김태영 한국대중골프장협회 부회장은 골퍼와 골프장 간 진행보조를 맞추되 고객인 골퍼의 리듬을 깨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으로 운영하면 결국 삼류 골프장으로 소문나 모든 골퍼가 발을 끊는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6호 (2022년 1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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