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로 보낸 해고 통보, 법적효력 있을까
“You are fired.”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apprentice'라는 취업 리얼리티 쇼에서 유행시킨 말로, 일반적으로 미국에서 사용되는 “당신은 해고야”라는 말이다. 해고의 통지요건에 대하여 법적으로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 이것이 가능한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근로기준법에서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의 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하게 되면, 설령 해고의 정당한 사유가 있더라도, 해고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다.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자를 해고하는 데 신중을 기하게 함과 아울러, 사후 분쟁이 생길 경우 적정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에게 해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규정이다.
그런데 ‘서면’이 전통적인 의미의 종이문서만 의미할까? 아니면 이메일, 카카오톡 메시지, 문자메시지 등 전자문서도 포함할까? 근로기준법은 종이문서를 예정한 것으로 보이나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그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생겼고, 판례도 상당수 축적되어 왔다. 최근 각 기업은 원격으로 체결될 수 있고, 송수신 시점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으며, 보관과 관리가 쉬운 장점을 가진 전자문서를 폭넓게 받아들이면서 페이퍼리스를 지향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재택 및 원격 근무의 일상화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메일 등 전자문서로 보낸 해고 통지가 유효한 서면에 해당하는지 관심이다.
이에 대해 과거 대법원은 이메일 등 전자문서는 본래 의미의 문서와는 구별된다고 하면서도, 일정한 범위에서 이메일에 의한 해고 통지도 유효하다고 보아 왔다(2015두41401 판결 등). 출력이 가능하다면 사실상 종이 문서와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지극히 타당한 결론이다. 즉, 이메일의 형식과 작성 경위에 비추어 사용자의 해고 의사가 명확하게 확인되고, 이메일에 해고 사유와 시기가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근로자가 그 이메일을 수신하여 내용을 알고 있고 향후 해고에 적절히 대응하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면. 서면 인정 범위를 넓혀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2020년 6월 9일 일부 개정돼 같은 해 12월 10일부터 시행 중인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기본법(이하 ‘전자문서법’) 제4조가 이와 관련되어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정 전부터 이미 전자문서법은 “전자문서도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서로서의 효력이 부인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었으나,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라는 단서마저 삭제되면서, 전자문서가 종이 문서와 동등하고 확실한 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법제처는 최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에 따라 종이문서 대신 전자문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개정 이유를 밝히고 있다.
나아가, 고용노동부도 <전자근로계약서 활성화를 위한 가이드라인>를 마련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전자문서의 활용 범위 확장에 긍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인사관리의 전체 프로세스에 있어 전자시스템을 도입하는 전자인사관리시스템이 앞다투어 채택되고 있는 시점에 반가운 진전이다.
전자문서의 지위와 효력을 강화하는 위 전자문서법의 개정에 따라 해고에 있어서의 서면 통지의무 해석도 달라져야 한다. 즉, 해고 통지에 있어서도 전자문서법에 따라 이메일 등 전자문서에 의한 해고 통지가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해고 사유와 해고 시기가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근로자가 해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하려는 근로기준법의 취지가 훼손될 우려가 없는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해고 통지에 있어서의 이메일 등 전자문서를 활용할 수 있다면, 언제 이메일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송신하고 수신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 민법의 도달주의 원칙에 따라, 문서에 표현된 의사표시는 작성자가 발신한 시점이 아니라, 상대방에 도달된 시점에 효력이 발생한다. 전자문서법은 제6조에서 송수신의 시기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송신의 경우, 작성자가 해당 전자문서를 송신할 수 있는 정보처리시스템에 입력한 후 해당 전자문서를 수신할 수 있는 정보처리시스템으로 전송한 때 송신된 것으로 본다(동조 제1항). 수신의 경우, 수신자가 전자문서를 수신할 정보처리시스템을 지정하였다면 지정된 정보처리시스템에 입력되기만 해도 수신자가 수신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지정된 정보처리시스템이 아닌 다른 정보처리시스템에 입력된 경우에는 수신자가 이를 검색 또는 출력한 때에 수신된 것으로 추정한다(동조 제2항 제1호). 만약 수신자가 전자문서를 수신할 정보처리시스템을 아예 지정하지 않았다면 “수신자”가 관리하는 정보처리시스템에 입력된 때 수신된 것으로 추정한다(동조 제2항 제2호).
이때 ‘정보처리시스템’이란 회사에서 사용하는 전자문서 관리시스템이나 이메일이 해당될 것이다. 이메일을 예로 들자면, 사용자가 이메일 형태의 해고 통지를 보낸 것으로 보게 되는 시점은 사용자가 인터넷을 활용하여 근로자의 이메일 주소로 전송할 때일 것이다. 근로자가 이를 수신한 것으로 보게 되는 시점은, 근로자가 해고 통지를 받기 위한 이메일 주소를 미리 지정하였고 이 이메일 주소로 전송되었다면, 해당 주소로 이메일이 도달한 때 수신된 것으로 추정될 것이다. 지정된 이메일이 아닌 다른 이메일로 전송된 경우라면 근로자가 적극적으로 이메일을 검색 또는 출력한 때에 비로소 수신되었다고 할 것이다. 만약 근로자가 이메일 주소를 지정하지 않았다면 근로자가 평소 관리하는 이메일 주소로 해고 통지가 도달하였을 때 수신된 것으로 추정된다.
해고 통지를 받을 이메일에 관하여 노사가 사전 합의를 하는 경우는 상정하기 쉽지 않으므로, 해고 통지에 있어 전자문서의 수신은 주로 근로자가 통상 관리하는 이메일함에 도달하였을 때 수신된 것으로 추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용자는 평소 업무 내용, 근로조건 등에 관하여 상호 소통하기 위해 근로자가 수시로 활용하고 관리하는 이메일 주소, 메신저 계정 등을 명확히 파악해 둘 필요가 있다.
종이서면을 통해 해고 통지를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유실의 위험성, 타인이 볼 수 있는 위험성, 보관의 어려움, 배달의 어려움 등은 전자문서의 활용으로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근로기준법이 해고의 서면 통지를 규정하고 있는 본연의 취지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전자문서의 활용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전자문서의 유형과 활용방법은 무엇인지, 오류없이 전자문서를 송·수신하고 내용을 확인하여 근로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호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미리 고민하고, 필요하다면 노사 간 협의할 필요가 있다.
미래 경영 환경에서 전자문서를 어떤 목적과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함께 고민하고, 더욱 효과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하여 노력한다면 근로자와 사용자 모두 보다 선진적인 인사관리 시스템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은지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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