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부잡]'급매 거래'로 만들어진 집값, 믿어도 될까요?
부동산원 "급매에서 추가로 내려도 거래 안 돼"
"가격 착시?…추세적 하락 흐름에는 변함없어"
최근 집값 하락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주간 아파트값 변동률이 매주 역대 최대 낙폭 기록을 세우고 있는데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 주택 시장이 침체기에 빠졌던 2010년대 초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집값이 빠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이번 하락기가 역대급 거래절벽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거래가 드문 속에서 이른바 '사연 있는' 매물들이 급매로 나와 매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건데요. 급매 외에는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기도 하고요.
이런 거래를 '정상 거래'로 보기 어려우니 시장에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실제 많은 집주인이 호가를 내리지 않고 버티기에 나서는 경우가 많아 실제 거래 가격과 비교하면 집값이 확실히 떨어지고 있다는 체감이 안 든다는 여론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런 해석에 유의할 점도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빠른 집값 하락세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마지막 주(31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32% 하락했습니다. 이는 부동산원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최대 낙폭인데요. 최근 들어 매주 기록을 경신하고 있습니다.
2010년대 초는 우리나라 주택 시장이 긴 침체기를 맞았을 시기인데요. 주간 변동률로만 따지면 그때보다 최근의 하락세가 더 가파른 셈입니다.
다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흐름과 다른 점이 있는데요. 당시에는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전 세계 경제가 크게 휘청였던 2008년 말을 제외하고는 거래량이 적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1년 내내 거래가 잘 이뤄지고 않고 있는데요.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611건으로 역대 최저치를 찍었습니다. 지난 2월(817건) 기록을 경신한 데 이어 7월(644건)과 9월에 새 기록을 만들면서 그야말로 역대급 거래절벽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매수 수요가 크게 위축한 데다가 관련 규제가 여전한 영향으로 풀이되는데요. 이에 따라 가격을 크게 낮춘 급매 위주의 거래만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부동산원 역시 최근의 집값 하락세와 관련, "급매물에서 추가적으로 가격을 내려도 거래 성립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하락 폭이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급매 위주라 착시?…갭투자 급증 등 구조적 영향도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최근의 하락세를 있는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일상적인 거래가 아닌 급매 위주의 거래만 나타나니 통계가 왜곡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현실'보다 가격 하락세가 더 가팔라 보인다는 건데요.
특히 최근에는 가족 간 특수거래를 포함한 직거래 비중도 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 역시 흐름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전문가들은 일부 거래의 경우 이런 지적처럼 과하게 낮은 가격에 이뤄지면 착시를 줄 수 있다는 데 대체로 동의합니다. 거래 절벽으로 통계가 매우 적은 가운데 이른바 '사연 있는' 매물이 과하게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니 수치가 왜곡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급매 거래를 단순히 '착시'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급매물 역시 추세적인 하락세에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로 봐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예를 들어 10억원에 팔리던 아파트가 급매로 6억원에 팔렸다고 가정해볼까요. 이 거래가 정말 '비정상 거래'가 되려면 다음 매물이 다시 10억원 정도에 팔려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른 거래 역시 9억원, 8억원 등 지속해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급매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지난 수년간 이른바 갭투자로 집을 산 사람들이 급증했는데요. 요즘 매매가격은 물론 전셋값도 떨어지면서 이런 분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기존 세입자가 나가게 되면 집주인이 돈을 더 마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급하게 집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기겠고요.
이는 '개인적인 사연'이라기보다는 갭투자가 급증한 데 따른 구조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급매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직거래에 대한 오해도 있습니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직거래의 경우 조사원이 해당 거래를 가격 변동률에 반영할지 여부를 구분해서 판단한다고 합니다. 지인 간에 '반값 거래'를 한 게 무조건 집값에 반영돼 통계를 왜곡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결국 최근 집값이 급매 위주로 이뤄지면서 하락 폭이 다소 과해 보이는 건 사실인 것 같은데요.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전반적으로 집값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급매 거래가 가격적인 면에서 100% 신뢰를 준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최근 시세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최근에는 급매 외에도 하락 거래가 지속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집값 흐름의 추세는 완연하게 꺾였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나원식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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