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로 시작한 강하늘의 연기는 어떻게 진심으로 바뀔까('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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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어릴 때라 그런지 그것은 기억에 없습니다. 근데 고거 하나는 기억이 납니다. 무서웠습니다. 할머니 손잡고 있을 땐 몰랐는데 그 손을 놓고 나니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데 그 사람들이 너무 큰 겁니다. 나는 그 때 요만치 했으니까. 그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저기 멀어지는 할머니 뒷모습 보면서 내 손을 다시 잡아 줬으면... 하지만 그 말을 못했죠. 고거 하나는 기억이 납니다."
KBS 월화드라마 <커튼콜> 에서 자금순(고두심)이 이산가족상봉 때 헤어지면서 했던 말을 기억하냐고 묻자 유재헌(강하늘)은 그렇게 답했다. 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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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미디어=정덕현] "내가 너무 어릴 때라 그런지 그것은 기억에 없습니다. 근데 고거 하나는 기억이 납니다. 무서웠습니다. 할머니 손잡고 있을 땐 몰랐는데 그 손을 놓고 나니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데 그 사람들이 너무 큰 겁니다. 나는 그 때 요만치 했으니까. 그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저기 멀어지는 할머니 뒷모습 보면서 내 손을 다시 잡아 줬으면... 하지만 그 말을 못했죠. 고거 하나는 기억이 납니다."
KBS 월화드라마 <커튼콜>에서 자금순(고두심)이 이산가족상봉 때 헤어지면서 했던 말을 기억하냐고 묻자 유재헌(강하늘)은 그렇게 답했다. 가짜로 손자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 유재헌으로서는 당시 자금순이 어린 손자를 만나 나눴던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 유재헌은 즉흥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풀어놨다. 할머니의 손을 놓고 헤어질 때 너무 무서웠다고. 그 말에 자금순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마치 그 때 놓았던 손자의 손을 잡아주듯 유재헌의 손을 꼭 잡았다.
연기로 보면 모두가 감동할만한 그런 연기였다. 유재헌에게 억대의 돈을 주고 손자 역할 연기를 시킨 정상철(성동일)도 그 연기에 뿌듯해했다. "첫날 치고는 괜찮았어. 뭐 회장님이나 나도 진짜 이산가족 현장에 있는 것처럼 믿을 뻔 했으니까." 정상철의 칭찬에 유재헌은 자신도 그렇게 한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듯 말한다. "왜 그랬지? 진심이라 그런가?"
그런데 유재헌이 즉흥적으로 자금순에게 했던 그 말은, 어려서 엄마에게 버림받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한 말이었다. 놀이공원에 자신만 놔두고 가버렸던 엄마. 어린 유재헌은 지나는 사람들 속에서 엄마를 부르며 한없이 울었다. "그 때 그 감정이 어린 리문성이 느꼈던 감정하고 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 때의 진심을 담았기 때문에 유재헌의 그 말은 자금순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것이었다.
<커튼콜>은 이제 삶이 몇 달도 남지 않은 자금순을 위해 정상철과 유재헌이 벌이는 사기극이다. 가짜지만 탈북해 내려온 손자인 척 함으로써 자금순의 남은 나날들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사기극. 하지만 연기란 그저 흉내 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 상황에 몰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감정을 자신이 겪었던 경험들 속에서 끌어와야 한다.
유재헌이 자금순에게 둘러대기 위해 하는 즉흥 연기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 자신의 아픈 과거들을 들춰보게 만든다. 엄마에게 버려진 기억이 잊지 못할 아픔임에도 꽤 담담하게 엄마에겐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말하는 유재헌이지만, 그게 어찌 담담하기만 한 일일까. 오히려 애써 담담한 척 하는 그 모습에서 유재헌의 그늘이 슬쩍 비춰진다.
알고 보면 유재헌은 정상철이 후원해온 보육원에서 자란 인물이다. 이 가짜 손자 역할을 연기하면서 받은 돈의 일부를 그 보육원에 후원금으로 보내기도 한 인물. 정상철이 유재헌을 캐스팅한 것이 그저 연극을 보고서만은 아니라는 것. 이미 유재헌이 그 보육원에서 지내며 연기의 꿈을 갖고 있었다는 걸 정상철은 알고 있었다.
결국 연기는 연기자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걸 보는 이들이나 합을 맞추는 인물들이 함께 주고받는 것. 그래서 유재헌의 연기는 자금순과 주고받으며 자기 자신이 겪은 일들의 진심이 얹어지기 마련이다. 자금순을 위한 사기극으로 시작한 연기지만, 어쩌면 어느 순간 이 연극이 유재헌 자신의 그늘진 과거를 위로해주는 무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커튼콜>이 보여줄 연기가 진심이 되어 서로에게 위로를 주는 그 순간이 기대되는 이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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