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엔저 지속에 美 국채 내다 파는 日…월가 불안 가중

일본 정부가 자국 통화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단기 미국 채권을 팔고 있는 징후가 포착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엔화가 약세를 보인데다, 일본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살 때 환율 변동에 대비하는 환헤지 비용이 더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WSJ는 이와 관련해 일본 기관과 투자자들이 미 국채 보유량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국채 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일본의 매수세가 엔화 약세로 인해 흔들리면서 월가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의 미국 국채 선호는 오랫동안 경제와 금융시장에 중요한 위치를 점해왔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8월 기준 1조2000억달러(약 1650조원) 규모의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수요가 감소하면서 미 국채시장 투자자들은 더 이상 일본 투자자들의 미 국채 수요에 의존하기 어려워졌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일본 투자자들이 미 국채 매수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WSJ는 이미 많은 일본 기관투자자들이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철수했다고 설명했다. 수년 동안 미국의 낮은 단기 금리로 달러를 빌린 다음 수익률이 높은 장기 국채를 매수해 수익을 얻을 수 있었지만, 현재 미 국채 단기 금리가 장기 금리를 넘으면서 해당 거래를 통해 수익을 얻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 엑상트 데이터에 따르면 일본 생명보험사와 연기금의 해외채권 보유액은 4월~9월 사이 400억 달러(약 54조5000억원) 가량 줄었다. 일본 국채는 40년 만기 채권 금리가 1.85%로 낮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지만 헤지 비용 없이 매입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 내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일본의 매수세가 부진해지면서 미 국채 금리는 더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에서는 일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 9월22일 일본 정부가 1990년대 이후 처음으로 외환보유액에서 달러를 매도하고 엔화를 매수하는 개입을 한다고 밝힌 후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올해 두 번째로 큰 폭으로 상승했다.

달러 대비 30년 만에 약세를 보이는 엔화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계속 매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이 단기 국채로 부족할 경우 결국 장기 국채를 매도할 수 있다는 불안감도 여전하다. 엔화 약세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여 문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금리 인상에 지속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일본은행(BOJ)은 금리를 인상할 계획이 없다고 거듭 밝힌 바 있다.

다만, 인플레이션이 BOJ의 예상보다 심각해지고 연준이 기준 금리를 끌어올려 엔화에 대한 압박이 지속될 경우 BOJ도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경우 일본의 기관투자자들이 미 국채를 더 팔아 치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