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음식물 쓰레기 치운 미화원들, 밥값과 기본급 떼이며 일했다
<40> 울산 환경미화원
3년간 떼인 식대 4억원에 이르고
기본급 월 최대 92만 원 덜 준 의혹
중간착취 막을 법안 국회에서 낮잠
편집자주
간접고용 노동자는 346만 명(2019년). 계속 늘어나고 있죠. 원청이 정한 직접노무비를 용역업체나 파견업체가 노동자에게 다 주지 않고 착복해도 제재할 수 없어서,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습니다. 국회에 발의된 '중간착취 방지 법안들'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단 한번도 논의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는 상황.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중간착취 현실을 꾸준히 고발합니다.
울산 중구에서 2년 6개월째 환경미화 운전원(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있는 허용민(51·가명)씨. 그는 밤 10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7톤 차량을 모는 허씨는 아파트 단지나 빌라에 있는 120리터(L)짜리 큰 음식물 통을 담당하는데, 하루 70~80개를 찾아 털어넣어야 한다.
허씨는 “1톤 차량은 가정용 작은 음식물 통 전용이긴 하지만 하루에 못해도 200군데는 들러야 한다”며 “어느 쪽이나 업무 강도가 강하고 주어진 시간이 빠듯하다”고 토로했다. 중구는 운전원 한 명당 1개 반에서 2개의 동을 맡는다. 늦어도 오전 6시 안에 모든 일을 마쳐야 한다.
허씨는 지난해까지 주 6일 근무(현재는 주 5일)를 했다. 지난해 1월 기준 세전 임금은 278만5,400원. 그런데 그해 울산 중구청의 노무비 산출내역서를 보면, 주 6일 생활폐기물 운전 노동자의 기본급은 355만 원이다. 이와 별도로 중구청은 하루 밥값 7,000원(환경부 고시 기준 수집운반 작업일당 1식 제공 단가)도 용역업체에 제공한다. 하지만 허씨를 비롯해 노동자들은 식대를 받아본 적이 없다.
이처럼 심각한 중간착취를 당하면서도, 올해 5월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에는 전혀 몰랐다.
식대 7,000원의 행방은?
우선 중구와 6개 청소 용역 업체의 3년 치(2019~2021년) 대행 계약에는 밥값으로 3억9,000만 원이 반영돼 있다. 환경부 고시의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대행계약을 위한 원가산정 방법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식대는 기본급과 상관없이 복리후생비로서 별도로 산정·지급돼야 한다.
운전원들이 용역업체로부터 받은 급여 대장에는 급여 세부 항목 중 하나로 '식대' 혹은 '복리후생비(식대)'가 적혀 있긴 하다. 운전원들은 그것만 보고 업체가 식대를 잘 챙겨주고 있는 거라고 철썩같이 믿었다. 하지만 속임수이다. 상당수 업체는 식대를 기본급에 포함시켜 표시함으로써, 주지 않고도 주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기본급과 별도로 분리한 경우에도, 기본급 자체와 식대 금액을 줄여서 사실상 지급하지 않은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11년차 환경미화 운전원 김구현(58)씨는 “다들 일을 빨리 마쳐야 하다 보니 식사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김씨는 이어 “일하다 정 배고프면 편의점에서 커피 한 캔이나 빵 하나 사서 5분 안에 때우는 정도가 전부였다”고 설명했다.
용역 계약 당사자인 관할 구청은 식대가 부적절한 방식으로 지급돼온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중구청 관계자는 “식대를 따로 지급해야 하는데 노무비에 포함하는 등 지난해까지 지급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건 맞다”면서도 “누구라도 문제 제기를 했을 법한데, 지금껏 어떤 노동자도 지적하지 않아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기본급도 어딘가로 사라졌다
노동자들이 받은 임금을 보자. D 용역업체 소속 주 6일 근무 운전원 13명의 급여 대장을 확인해 봤다. 지난해 1월 이들의 공제 전 소득 합계는 각각 331만6,380원(2명), 294만5,030원, 289만6,870원, 350만3,050원, 296만5,090원, 278만5,400원(2명), 355만 원, 268만5,400원, 262만7,130원, 263만5,290원(2명)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중구청에서 내놓은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원가산정 용역’상 주 6일 근무 운전원의 월 기본급은 354만9,443원이다. 만약 업체 주장대로 식대가 제대로 포함됐다면, 운전원 월급은 식대 18만2,000원(7,000원x26일분)을 더해 373만여 원이어야 한다.
식대 포함은 고사하고 기본급만 봐도 최대 92만여 원 모자라다. 김인수 전국민주연합노조 조직국장은 "명절을 포함해 100여만 원씩 상여금이 들어오는 달도 있긴 하지만, 그것까지 다 합해도 기본급에 한참 못 미치는 걸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즉 용역업체들이 식대뿐만 아니라 기본급도 상당히 착복한 것으로 보인다. 김 조직국장은 “업체들이 허위로 만든 노동자 앞으로 급여를 받아 챙기고 실제 노동자의 기본급은 깎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D 업체가 허위 인력의 급여를 챙긴 정황이 있어, D 업체를 급여 부당 취득 혐의로 경찰에 고발한 상태다.
또 다른 용역 업체인 Y, E사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이들도 급여대장에는 ‘식대’ ‘복리후생비(식대)’라고 꼬박꼬박 표기하면서도, 실제 금액은 기본급에 준하거나 못 미치는 수준을 지급해 왔다.
구청은 "개입 의무 없다"
용역업체들은 급여 총액을 속여 중구청에 제출한 의혹도 나온다. 애초 중구청은 "용역 업체로부터 급여 지급 관련 자료를 받아보니, 6개 업체 중 4개 업체가 노무비 관련 계약금 총액을 초과했다"며 "노동자들이 계약 내용 이상의 급여를 받았을 수 있어 환수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한국일보 기자가 급여대장으로 파악한 내용을 설명하자, 중구청 관계자는 “올해 급여대장에 한해 오는 12월까지 정확히 정산해서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못한 몫이 있다면 제대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중구청은 실제 노동자들이 받은 급여대장까지는 파악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중구청은 지난해까지의 계약에 대해서는 손쓸 방법도, 의무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중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계약은 이미 만료됐기 때문에 구청에서 더 이상 시정할 권한이 없다"며 "애초에 도급 계약인지라 환경 미화가 제대로 됐는지 결과만 확인할 뿐, 용역업체와 노동자 간에 생기는 일에는 개입할 의무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 이런 중간착취를 막을 수 있는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의원들은 논의를 하지 않고 있다. 용역 노동자의 임금을 원청이 임금전용계좌로 지급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과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 등이다.
Y 업체 측은 "지난해까지 규정을 잘 몰라서 식대를 급여에 포함해 지급했지만 올해부터는 식대를 노동자들 통장에 따로 입금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식대를 포함했다는 실제 급여가 원가산정 용역 기본급에도 못 미치는 데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D 업체 역시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유령 노동자 고용은 수사의뢰
실제 울산 동구의 청소용역업체의 급여대장에서 존재하지 않는 ‘유령 인력’이 등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은 9월 울산 동구 청소용역업체 P사가 유령직원 임금으로 3억3,000만 원을 지급했다고 폭로한 데 이어, 지난달 27일에는 "동구가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3개 사의 급여대장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3년간 총 6억5,000만 원이 15명의 유령 인력에 지급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위 3개 사 A, B, C 업체는 각각 한 가족의 아버지, 딸, 아들이 사장으로 있다.
노조 설명에 따르면, 2020년 9월 A 업체의 급여대장에는 8명의 환경미화원과 사무실 직원 J씨, 사장 L씨 등 총 10명의 이름이 있다. 그런데 10~12월 급여대장에는 J씨를 포함해 세 명만 기재돼 있다. 사라진 7명 중 5명은 B 업체 급여대장에서, 1명은 C 업체 급여대장에서 발견됐다.
C 업체도 비슷했다. 같은 해 9월 C 업체 급여대장에는 12명의 환경미화원과 사장 L씨 등 총 13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러다 10~12월 급여대장에는 6명이 사라지는데, 이 중 5명 이름이 B 업체 급여대장에서 나왔다.
유령 인력이라고 지목된 이름이 실제로 일한 이들이 맞다면, 동료들이 모를 리 없다는 게 현장 운전원들의 설명이다. 운전원 김씨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는 아무리 구역이 나뉘어져 있어도 오가며 마주치니 알 수밖에 없다"며 "(유령 인력 이름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동구청 측은 “A, B, C 업체가 허위 인력으로 부당 급여를 챙긴 정황을 파악했다”며 “지난 26일 동부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고, 향후 수사를 통해 부당 행위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유령인력 고용을 통한 임금 빼돌리기는 횡령 등의 혐의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노동자에게 원청이 정한 인건비를 다 주지 않고 착복하는 중간착취 행위는 현행법상 제재할 수 없어서 입법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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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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