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낙엽 쓸기

2022. 11. 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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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운영하고 있는 서점 앞에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네 그루 있다.

그것들은 여름 내내 잎을 키우다가 가을이 되면 쏟아낸다.

인근 낙엽은 다 저 네 그루 잎일 거야.

우리 가게뿐 아니라 옆 가게들의 잎들까지 남김없이 쓸어놓고 돌아서면, 거리는 다시 낙엽으로 뒤덮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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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노인은 빗자루로 낙엽을 쓸고 있다/ (…)/ 나뭇잎 한 장 떨어지면 달려가서 줍고/ 나뭇잎 두 장 떨어지면 달려가서 줍고/ 동네 입구, 화이트 슈퍼 앞길을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그 짓을 되풀이하고’

- 신성희 ‘당신의 자세’(시집 ‘당신은 오늘도 커다랗게 입을 찢으며 웃고 있습니까’)

내가 운영하고 있는 서점 앞에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네 그루 있다. 그것들은 여름 내내 잎을 키우다가 가을이 되면 쏟아낸다. 어찌나 양이 많은지 거리가 뒤덮일 정도다. 인근 낙엽은 다 저 네 그루 잎일 거야. 나는 농담을 하곤 한다. 햇빛 잘 들고 바람 많은 곳에서 자라는 덕분일 것이다. 올봄에는 가지치기를 했는데도 어느새 우람해져 쉼 없이 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겨울이 되어서도 다 떨구지 못하겠다 싶게.

매일 점심 싸리비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한때는 생기 넘치는 초록이었으나 어느덧 말라붙은 갈빛이 되어버린 잎들을 구석으로 구석으로 쓸어놓는다. 우리 가게뿐 아니라 옆 가게들의 잎들까지 남김없이 쓸어놓고 돌아서면, 거리는 다시 낙엽으로 뒤덮여 있다. 한때는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비질을 그만둔 적도 있다. 내버려두면 누가 치우겠지 생각했었다. 다시 비질을 시작한 데에 별다른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심히 쓸어내는 게 좋고 쓸려 나가는 걸 보는 게 좋다. 모든 일에 명확한 결과값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한다.

며칠 전 비질 때는 낙엽이 고맙기도 했다. 순리대로 본연의 역할을 마치고 무사히 땅으로 귀환하는 생의 섭리. 그 당연한 것을 잘 이행해주어서. 그와 같은 이치가 있어 나도 살고 세계도 무사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울컥 눈물이 났다. 모든 것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마땅히 주어진 만큼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질서고 순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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