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경의 시:선(詩:選)>낙엽 쓸기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서점 앞에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네 그루 있다.
그것들은 여름 내내 잎을 키우다가 가을이 되면 쏟아낸다.
인근 낙엽은 다 저 네 그루 잎일 거야.
우리 가게뿐 아니라 옆 가게들의 잎들까지 남김없이 쓸어놓고 돌아서면, 거리는 다시 낙엽으로 뒤덮여 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노인은 빗자루로 낙엽을 쓸고 있다/ (…)/ 나뭇잎 한 장 떨어지면 달려가서 줍고/ 나뭇잎 두 장 떨어지면 달려가서 줍고/ 동네 입구, 화이트 슈퍼 앞길을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그 짓을 되풀이하고’
- 신성희 ‘당신의 자세’(시집 ‘당신은 오늘도 커다랗게 입을 찢으며 웃고 있습니까’)
내가 운영하고 있는 서점 앞에는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네 그루 있다. 그것들은 여름 내내 잎을 키우다가 가을이 되면 쏟아낸다. 어찌나 양이 많은지 거리가 뒤덮일 정도다. 인근 낙엽은 다 저 네 그루 잎일 거야. 나는 농담을 하곤 한다. 햇빛 잘 들고 바람 많은 곳에서 자라는 덕분일 것이다. 올봄에는 가지치기를 했는데도 어느새 우람해져 쉼 없이 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겨울이 되어서도 다 떨구지 못하겠다 싶게.
매일 점심 싸리비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한때는 생기 넘치는 초록이었으나 어느덧 말라붙은 갈빛이 되어버린 잎들을 구석으로 구석으로 쓸어놓는다. 우리 가게뿐 아니라 옆 가게들의 잎들까지 남김없이 쓸어놓고 돌아서면, 거리는 다시 낙엽으로 뒤덮여 있다. 한때는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 비질을 그만둔 적도 있다. 내버려두면 누가 치우겠지 생각했었다. 다시 비질을 시작한 데에 별다른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심히 쓸어내는 게 좋고 쓸려 나가는 걸 보는 게 좋다. 모든 일에 명확한 결과값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한다.
며칠 전 비질 때는 낙엽이 고맙기도 했다. 순리대로 본연의 역할을 마치고 무사히 땅으로 귀환하는 생의 섭리. 그 당연한 것을 잘 이행해주어서. 그와 같은 이치가 있어 나도 살고 세계도 무사한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울컥 눈물이 났다. 모든 것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마땅히 주어진 만큼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질서고 순리가 아닌가.
시인·서점지기
[ 문화닷컴 | 네이버 뉴스 채널 구독 | 모바일 웹 | 슬기로운 문화생활 ]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m.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풍산개 2마리 이미 양산 떠났다…‘쿨하게 처리’ 밝힌지 하루만
- 김대기 “‘尹 청담동 술자리’ 가짜 뉴스...사무실에 있었다”
- 경호처가 김건희 여사 ‘사적 이사’에 동원? “정당한 업무” 반박
- [속보] 檢, ‘이재명 최측근’ 정진상 자택 압수수색...민주당사 내 사무실은 진입 못해
- 대통령실 참모 ‘웃기고 있네’ 메모에 국감장 술렁…김은혜 “죄송”
- 대출금리 7%시대…120만명 세금 제하면 원리금도 못 갚아
- 일생에 단 한번…국내서 개기월식·천왕성 엄폐 동시 관측
- 무속인과 약혼한 노르웨이 공주, 급기야 ‘왕실 직책 포기’
- 라이언 레이놀즈 “‘복면가왕’ 출연, 지옥 같았다”
- [단독]혜리, ‘놀토’ PD와 재회해 예능 재개…내년 tvN 론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