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 등, 국내 자생식물서 항바이러스 물질 발견...'코로나 감염 차단'
우리 자생식물인 벌개미취(고려쑥부쟁이)와 더덕의 항바이러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차단 효과가 확인됐다.
기초과학연구원(IBS·원장 노도영)은 이창준 생명과학 연구클러스터 소장(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 단장)팀이 벌개미취에 함유된 '아스터사포닌 I'과 더덕에 함유된 '란세마사이드 A' 사포닌이 코로나바이러스 세포 내 침입 경로인 세포막 융합을 막아 감염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규명했다고 9일 밝혔다.
코로나바이러스 입자는 엔도좀(물질 이동에 관여하는 세포 내 소낭)이나 세포 표면 형질막과 융합한 형태로 인체 세포 내로 들어온다. 이 두 경로는 공통으로 코로나바이러스 외피막과 인체 세포 세포막 사이 '막 융합'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친다. 연구진은 아스터사포닌 I과 란세마사이드 A가 이런 코로나바이러스와 인체 세포 간 막 융합을 막아 코로나바이러스 세포 감염경로를 모두 차단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진은 코로나바이러스 스파이크 단백질을 표면에 발현한 슈도바이러스(병원성을 제거한 유사 바이러스)와 인간 폐세포를 이용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모델을 만들고, 아스터사포닌 I과 란세마사이드 A를 처리해 바이러스 세포 침임 억제 효과를 확인했다.
실험 결과 아스터사포닌 I과 란세마사이드 A 모두 코로나바이러스 세포 진입 경로를 효과적으로 억제했다. 살아있는 감염성 코로나바이러스 이용 실험에서도 동일한 결과를 확인했다. 초기 코로나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오미크론 등 변이 코로나바이러스에도 거의 동일한 효율로 감염을 억제했다.
아스터사포닌 I과 란세마사이드 A는 중앙골격구조가 세포막 주요 구성물질인 콜레스테롤과 매우 유사하고 한쪽에 길게 당이 붙어 있는 구조다. 세포막이 콜레스테롤과 유사한 이들 사포닌 중앙부를 세포막 안으로 받아들이고 당 부위가 세포막 밖으로 돌출되면, 이 돌출 부분이 코로나바이러스 외피막과의 막융합을 가로막는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세포 내로 들어올 수 없다. 바이러스와 세포수용체 결합력에 상관없이 감염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항바이러스 연구' 10월 온라인판 및 '항균제 및 화학요법' 11월 온라인판에 각각 게재됐다. 해당 연구에는 장대식 경희대 약학대 교수 및 김승택 한국 파스퇴르 연구소 박사팀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또 연구진은 이번 연구에 앞서 김승택 박사팀과 도라지 사포닌인 '플라티코딘 D'의 항 코로나 활성을 규명한 바 있다.
흥미로운 것은 아스터사포닌 I, 란세마사이드 A 및 플라티코딘 D 모두 '트라이터페노이드 사포닌'에 속하며, 한쪽에 길게 당이 붙어 있는 비슷한 화학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은 트라이터페노이드 사포닌에 붙어 있는 당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억제 활성에 중요하다는 결과에 착안, 한순규 KAIST 화학과 교수팀과 함께 당의 길이와 종류를 달리하는 10여종의 서로 다른 사포닌을 합성했다. 그 결과 자연에서 발견한 트라이터페노이드 사포닌인 플라티코딘 D보다 활성이 2배 높은 신규물질 합성에 성공했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생유기화학' 10월호에 게재됐다.
이창준 소장은 “벌개미취, 더덕, 도라지에 포함된 트라이터페노이드 사포닌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식품 및 생약의 주요성분으로, 섭취 시 상기도 상피세포에 고농도로 노출될 수 있어 무증상환자나 초기 환자에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아직 세포실험 단계의 연구 결과이지만 동물실험에서도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임상실험도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대식 경희대 교수는 “중국의 경우, 중국전통의학연구원 투유유의 교수가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제인 아르테미시닌을 개발한 공로로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이후 정부차원에서 중의약 연구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오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며, “이번 연구 결과 발표가 국내 자생 혹은 재배 식물을 활용한 의약품 개발 연구 분야의 활성화에 기여하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IBS 김태영 선임연구원은 “천연물 유래 약재는 쉽게 구할 수 있고 오랫동안 사용되어 안정성이 입증된 장점이 있다. 역사적으로 페니실린, 아스피린, 말라리아 치료제 성분인 아르테미시닌 등이 천연물질에서 유래됐다”며 “막 융합 저해제는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외피막 바이러스의 감염을 범용적으로 차단할 수 있으므로, 범용 항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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